[풋볼리스트] 선수는 성장하고 진화한다. 한결 같은 패턴으로 경기하는 이도 있지만, 주어진 상황이나 포지션에 따라 경기 방식을 바꾸는 이도 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프란체스코 토티 같은 선수들이 대표적이다. '풋볼리스트'는 진화하고 변화한 선수 이야기를 모았다.

스티븐 제라드, 프랭크 램파드, 데이비드 베컴이 뭘 잘하는지는 하이라이트만 봐도 안다. 반면 폴 스콜스는 하이라이트 영상이 더 짧은 선수다. 네 선수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잉글랜드 축구를 지탱한 미드필더 황금세대였다. 스콜스는 그 중에서 유독 작았다. 나머지 세 명의 프로필상 신장이 모두 183cm인 것과 달리 스콜스는 170cm에 불과했다. 제라드의 뜨거움, 램파드의 기계처럼 정확한 득점 감각, 베컴의 마법 같은 프리킥처럼 확고한 무기가 없었다. 그러나 동시대 선수들은 스콜스를 높게 평가했다.

타국의 테크니션들에게 ‘좋아하는 잉글랜드 선수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스콜스의 이름이 자주 나오곤 했다. 2011년 차비 에르난데스가 영국 ‘가디언’지와 가진 인터뷰가 대표적이다. “폴 스콜스! 본받을 만한 선수다. 지난 15, 20년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중앙 미드필더다. 스콜스의 플레이는 장관이다. 그는 모든 걸 갖췄다. 마지막 패스 능력, 득점 능력, 강인함, 공을 잃지 않는 능력, 시야. 스페인 선수라면 더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선수들이 사랑하는 선수다.”

‘스페인 선수라면 더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는 말은, 바꿔 말하면 영국 축구계가 스콜스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콜스는 거친 사나이들의 축구를 표방하는 잉글랜드의 미드필더 싸움을 소화하기엔 너무 소심하고 조그마한 선수였다. 대신 스콜스에겐 빠른 두뇌 회전, 발끝의 남다른 감각이 있었다. 이 능력을 바탕으로 팀이 어떤 역할을 주든 무난하게 소화했다. 스콜스는 가장 세련된 잉글랜드 선수였다.

 

1기: 최전방 공격수로 시작된 맨유 경력(1995~1997, 2001~2003)

“브라질에서 뛰어도 될 정도로 잘한다. 스콜스의 축구, 그의 패스를 보는 걸 좋아한다.” (소크라테스)

스콜스는 어린 시절 공격수였다. 그러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92년 세대’를 길러낸 에릭 해리슨 유소년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패스에 눈을 떴다. 해리슨은 스콜스가 패스에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공을 받기 전 어깨 너머의 동료를 흘끗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콜스는 미드필드부터 공격까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전술적인 감각을 갖추게 된다.

프로 데뷔 시절엔 다시 공격수로 돌아갔다. 1994/1995시즌 데뷔했고, 1995/1996시즌 주전으로 발돋움했다. 마크 휴즈가 첼시로 이적하며 공격진에 공백이 생겼다. 에릭 칸토나가 앞선 시즌 ‘쿵푸 킥’으로 받은 징계에서 돌아올 때까지 2개월 동안 스콜스와 앤디 콜이 투톱을 맡아야 했다. 스콜스는 2라운드에 데뷔골을 넣었고, 전반기에만 7골을 터뜨렸다. 리그 10골을 터뜨렸는데, 선발 출장이 단 16회였던 것에 비하면 훌륭한 득점력이었다.

스콜스는 곧 미드필더로 정착하지만, 2000년대 초반에 다시 공격진으로 올라간다. 2001년 후안 베론이 맨유에 합류하면서 스콜스와 자리가 겹쳤고, 뛰어난 원톱 뤼트 판니스텔로이도 합류했다. 스콜스는 2002/2003시즌 섀도 스트라이커로서 리그 14골을 터뜨렸고, 판니스텔로이는 스콜스의 보좌를 받으며 25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스콜스는 드리블이 뛰어난 선수가 아니지만 공간을 활용하는 지능과 기본기가 뛰어났기 때문에 원터치 패스에 능숙했다. 잉글랜드 팀 중 일찍 ‘패스 앤드 무브’ 부분전술을 받아들인 맨유는 스콜스에게 잘 맞는 팀이었다. 특히 판니스텔로이와 호흡을 맞출 땐 두 선수 모두 능숙한 리턴 패스를 주고받으며 별다른 드리블 없이 수비수들을 괴롭힐 수 있었다. 스콜스는 뉴캐슬전에서 해트트릭 세 골을 모두 원터치 슛으로 마무리했다.

“더 전방에서 뛸 때는 공을 다른 위치에서 받아야 하고, 언제나 골을 의식해야 한다. 연계 플레이가 뛰어난 판니스텔로이와 뛴 건 행운이었다. 난 절대 빠르지 않지만, 젊을 땐 그 역할을 맡기 충분한 날카로움이 있었다. 나이가 들고 나서 그 포지션이 편안하지 않았다. 수비수와의 일대일 대결이 점점 힘들어졌다. 난 뛰어난 드리블러가 아니기 때문이다. 원투 패스로 수비를 제치는 걸 더 좋아한다.“

2기: 머리로 승부하는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1997~2006)

“가장 까다로웠던 상대는 스콜스였다. 완벽하다. 의심의 여지없이 그 세대에서 가장 위대한 미드필더다.” (지네딘 지단)

로이 킨이 부상당한 1997년, 스콜스는 주전급 중앙 미드필더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더 수비적인 옵션으로 니키 버트가 있었고, 2001년 후안 베론이 합류하게 되지만 주전 라인업은 로이 킨과 스콜스였다. 1998/1999시즌 3관왕을 달성할 때도 스콜스가 주전으로 활약했다. 리그와 컵대회를 통틀어 11골을 넣었고, 그 중엔 FA컵 결승전 득점이 포함돼 있었다.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경고누적으로 불참했다.

잉글랜드식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는 공수 양면에 모두 재능이 있어야 하고, 90분 내내 상대 선수와 싸우는 투쟁심이 필요하다. 작고 음흉한 스콜스는 독특한 미드필더였다. 스콜스의 가장 큰 특징은 그리 화려하지 않지만 적재적소로 배급되는 패스였다. 스콜스는 동료를 찾아내는 속도가 빠르고, 수비수 머리 위로 넘겨주는 패스가 정확했다. 패스를 받기 좋은 위치로 침투하는 감각도 기민했다.

받는 상대에 따라 스콜스의 패스 방식도 달라졌다. 콜, 판니스텔로이 등 전형적인 스트라이커는 스콜스가 공을 잡자마자 늘 침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스콜스는 이들을 향해 스루 패스를 즐겨 보냈다. 때론 낮게 깔렸고, 때론 수비수 위를 넘어갔다. 반면 테디 셰링엄, 드와이트 요크 등 섀도 스트라이커 성향의 동료가 눈에 띄면 짧은 패스를 주고받으며 함께 상대 수비를 혼란시켰다.

이 시기 스콜스의 대표적인 득점 장면은 상대 페널티 지역으로 은근슬쩍 침투한 뒤 원터치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스콜스는 수비수의 견제를 받지 않는 타이밍에 크로스의 낙하지점을 포착했다. 중거리슛은 힘들여 차지 않아도 빠르고 정확하게 날아갔다. 힘보다 감각으로 날리는 스콜스 특유의 중거리슛은 코너킥 상황에서 베컴의 패스를 발리슛으로 연결할 때 단적으로 드러났다.

스콜스는 전술적인 가치가 높은 선수였다. 상황에 따라 스콜스의 활용법이 달라졌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베론이 영입된 뒤 상대 수준에 따라 스콜스의 위치를 바꿨다. 비교적 수월한 상대를 만나면 스콜스를 공격수로 썼고, 미드필드 싸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스콜스를 중원으로 내려 킨, 베론과 함께 중원 숫자를 늘렸다. 특히 로이 킨의 활동량이 떨어진 2002년부터 공격을 판니스텔로이 원톱으로 줄이고 중앙 미드필더 성향의 선수를 잔뜩 투입해 힘 싸움 먼저 신경 쓰는 경기가 잦았다. 아스널을 괴롭힐 때 자주 쓴 방식이었다.

맨유는 2003/2004시즌부터 과도기를 겪었고, 세 시즌 동안 우승을 놓쳤다. 퍼거슨 감독은 한계에 봉착한 4-4-2를 버리고 새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마다 스콜스가 팀을 지탱했다. 유럽의 주류 포메이션이었던 4-2-3-1을 도입하려 할 때는 스콜스가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됐다. 카를로스 케이로스(현 이란 감독) 코치의 조언대로 대런 플레처, 앨런 스미스 등을 미드필더로 기용해 4-3-3을 시도할 때도 스콜스가 미드필드의 중심을 잡았다. 두 시도 모두 소기의 성과는 있었지만 미드필더들의 기량 미달로 완성되지 못했다. 스콜스는 2005/2006시즌 후반기 시력에 문제가 생겨 전력에서 이탈했다. 은퇴까지 거론된 부상이었다.

“패스는 내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 아래서 뛴 건 행운이었다. 감독은 늘 전진 패스를 할 수 있게 했다. 내가 공을 잡고 여유가 있을 때 하는 첫 번째 생각은 두톱 혹은 측면의 동료에게 패스하는 것이다. 횡패스와 백패스는 마지막에 생각한다.”

3기: 장거리 패스로 장관을 만드는 후방 플레이메이커(2006~2013)

“우리 팀 역사상 최고 선수를 꼽는다면 스콜스다. 다른 선수는 못 하는 플레이를 해내는 걸 보곤 했다. 경기 템포를 조절하는 방식, 패스의 거리 모두 놀랍다. 스콜스에게 근접한 선수조차 수년 간 보지 못했다. 그의 득점 역시 잊으면 안 된다.” (라이언 긱스)

퍼거슨 감독이 킨 이후 영입한 미드필더 중 유일한 성공작, 마이클 캐릭이 2006년 합류했다. 이때 맨유는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고 잉글랜드 정상에 복귀했다. 맨유의 포메이션은 4-4-2로 돌아갔지만 경기 내용은 과거와 달랐다. 양 쪽 미드필더들이 뒤엉켜 난투극을 벌이는 옛 영국 스타일이 아니라 차분하고 조직적인 축구를 했다. 수비 라인을 뒤로 물리고, 상대 공격을 저지하면 속공으로 득점했다. 최전방의 웨인 루니, 윙어 자리에서 출발해 순식간에 상대 골문을 위협하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공격의 핵심이었다.

맨유 미드필드는 스콜스, 캐릭, 플레처 세 명 중 두 명이 출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스콜스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후방 플레이메이커로 역할을 바꿨다. 32세로 노장 반열에 들자 운동 능력이 떨어졌고, 눈 부상의 여파도 있었다. 덜 역동적인 대신 특유의 시야와 패스 정확도를 극대화할 수 있는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캐릭과 스콜스를 동시에 중앙 미드필더로 배치하면 수비력이 부족해질 거라는 우려도 있지만, 실제 맨유의 수비는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 최상급이었다. 스콜스는 끔찍한 태클 실력, 나중에 고백했듯 종종 시치미 떼고 저지른 더티 플레이 때문에 수비력이 나쁘다는 선입견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스콜스의 수비적인 기여도는 다른 선수들보다 부족하지 않았다. 수비형 미드필더에게 가장 중요한 수비력은 슬라이딩 태클이 아니라 포백 앞의 좋은 위치를 선점하고 상대의 플레이를 적당히 방해하는 지능이다. 스콜스와 캐릭 모두 이 능력이 충분히 뛰어난 선수들이었다. 상대가 함부로 덤벼들지 못하는 자리를 스콜스가 먼저 지키고 있었다. 미드필드의 부족한 역동성은 아직 팔팔하던 시절의 루니나 박지성이 보완했다.

그때까지 공격수와 호흡을 맞춰 온 스콜스는 센터백들과 경기 내내 소통해야 하는 새로운 역할을 즐겼다. 포지션을 바꾼 직후엔 너무 뒤로 내려가다가 센터백들이 수비해야 하는 영역을 침범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스콜스가 1차 저지선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수비진이 바로 위험에 노출됐다. 센터백 리오 퍼디난드는 스콜스에게 “내가 막아야 하는 공간에서 나가”라고 말하곤 했다. 스콜스는 새 임무에 순조롭게 적응했다.

이때부터 스콜스의 패스는 맨유의 새로운 볼거리로 정착했다. 스콜스는 10년 전부터 맨유의 전진 패스 담당이었다. 킨이 직접 공을 주고받으며 전방으로 올라가는 플레이를 즐겼기 때문에, 2대 1 패스의 기점 역할을 하며 전진 패스를 하는 건 스콜스의 역할일 때가 많았다. 아예 후방 플레이메이커로 자리 잡은 뒤에는 롱 패스의 빈도가 늘어났다. 스콜스는 공을 잡기 전부터 좌우 미드필더와 공격수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가, 공을 받자마자 몸을 돌려 경기장을 가로지르는 롱 패스를 날렸다.

스콜스는 2011년 성대한 은퇴 경기를 치르며 그라운드를 떠났다. 그러나 반년 뒤, 미드필더들이 단체로 부상을 당하자 퍼거슨 감독은 스콜스를 은퇴 번복시켜 선발 라인업에 세웠다. 스콜스의 대체자는 없었다. 스콜스는 2012/2013시즌 마지막 우승에 기여한 뒤 두 번째로 은퇴했다. 맨유는 스콜스와 동시에 퍼거슨 감독이 떠난 뒤로 한 번도 3위 이내에 들지 못했다.

“공이 50야드(약 46m) 바깥에 있을 때도 어깨 너머를 흘끗 보라고 배웠다. 중앙 미드필더는 언제나 자신이 축구장 어디에 있는지 그림을 그리고 있어야 한다고 배웠다. 이 점을 명심한다면, 공을 받기 전에 이미 어디로 패스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내가 왼쪽에서 공을 잡으면, 베컴이 오른쪽으로 넓게 벌려 서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으므로 보지 않고도 몸을 돌려 공을 찰 수 있었다. 주력도 신체 능력도 뛰어나지 않았지만 내 두뇌는 날카로웠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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