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 신태용입니다.”

거침없는 스타일의 신태용 감독 목소리에 떨림이 있었다. 6일 오전 10시. 대한축구협회가 자리를 잡고 있는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2층에서 신태용 감독의 축구국가대표팀 취임 기자회견이 있었다. 정각이 되자 신 감독은 자신있게 걸어들어와 단상 위에서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신 감독은 이런 취임 회견을 지난해와 그 전해에도 겪었다. 올림픽대표팀과 U-20 대표팀에서 모두 중도 부임해 소방수 역할을 맡았다. 

그동안 회견에서 모두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던 신 감독은 이날 긴장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인사를 나누고 말을 꺼내는 과정에서 평소보다는 경직된 모습이었다. 마침내 대한민국 축구 지도자로 정점에 오른 이날을, 신 감독은 무척 고대했을 것이다. 

성남일화에서 AFC챔피언스리그를 정복했던 신 감독은 국가대표팀 감독대행 및 코치에서 U-23 대표팀 감독, U-20 대표팀을 감독을 차례로 맡았다. 신 감독은 “남들은 아래에서 위로 가는 데, 난 위에서 밑으로 내려온다”고 우스갯소리를 했었다. 역순으로 이어지던 그의 감독 경력은 마침내 성인 대표팀 감독, 그것도 월드컵을 준비하는 감독으로 부임해 정점에 도달했다.

“우리나라가 상당히 힘든 시기인데 이렇게 대표팀을 맡게 되어서 저한테는 영광이다. 우리나라가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할 수 있게끔 내 한 몸 불사르겠다.”

신 감독에게 국가대표팀 감독직은 꿈이 이루어진 순간이다. 후보군에 올라있다는 이야기가 돌때는 “제안 받지 않은 일을 생각할 필요없다”고 손사레를 쳤으나, 내심 기대했다고 솔직히 말했다. 

“축구에선 감독으로 국가대표팀을 맡는 것이 마지막 꽃이라고 생각한다. 안기헌 전무님께 오후 1시 30분경 전화가 왔다. '신 감독 좀 만나야겠다'고 얘기해서 느낌이 왔다. 사실 김호곤 부회장님의 전화가 올줄 알았는데 안 와서 내가 안됐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기술위가 열리면 12시 정도에 전화가 오겠지 생각했는데, 1시간이 지나도 안와서 안됐구나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있었다. 그러다 1시 반 정도에 전무님의 전화가 와서 만났다.”

신 감독은 솔직한 사람이다. “개인적으로는 ‘신태용 파이팅, 잘했어.’ 속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했다”며 웃었다. 딱딱할 수 있고, 어떻게 보면 경건할 수 있고, 무거울 수 있는 시점의 대표팀 선임이었지만 신 감독은 특유의 화법으로 현장의 긴장감을 누그러뜨렸다. 

신 감독에게 대표팀 감독직은 꽃길이라고 보기 어렵다. 단 2경기 만에 월드컵 본선의 꿈이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다. 계약기간도 이전 감독들보다 짧다.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까지로 간신히 1년이다. 예선 탈락시 그대로 계약해지다. 독이든 성배라는 얘기가 그래서 나왔다. 

신 감독은 “계약기간이 상당히 중요하지만, 우선 2경기에 올인한다. 월드컵에 나가게 되면, 성과를 내면 좋은 계약이 따라올 것”이라며 좋지 않은 조건이지만, 스스로 좋은 조건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국가대표팀 감독직 자체도 목표였지만, 화려한 성공을 거둔 선수 시절 이루지 못한 월드컵 본선 출전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라는 점 역시 신 감독에겐 매우 큰 목표다. 

“제가 50세가 다 되어 가는데, 월드컵을 못 나간 것이 평생의 한이었다. 이런 생각을 했다. 선수로 월드컵 에 못 나간 것을 감독으로 나가서 더 높은 곳으로 가자. 선수로는 못 나갔지만 2002년에 우리 홈에서 4강까지 갔다. 원정에선 허정무 감독이 16강까지 갔다. 난 원정 월드컵에서 그 이상의 성적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선수 때 못한 월드컵에서 감독으로 비상하고 싶다.” 

신 감독의 지도자 인생은 2008년 12월 성남일화 감독 대행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내년이면 감독 경력 10년차다. 감독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 가장 큰 도전을 마주했다. 그래서 더 신중하고, 더 조심스럽게 임하고 있다. 코칭스태프 인선과 선수 선발 원칙 설정 등 하나부터 열까지 돌다리를 두드리고 있다. 

“1골만 넣고 무실점해서 무조건 이기는 경기를 하겠다”며 자신의 철학적 고집도 숙였고, “경기에 못 뛰더라도 신태용 축구에 맞으면 뽑는다”며 기존 원칙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했다. 더불어 기자회견 말미에 취재진을 향해 부탁의 메시지도 남겼다. 힘을 실어주고, 응원을 해달라고 솔직한 마음을 꺼내보였다.

지금까지 대표팀이 겪어온 위기와 불안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싶은 신 감독의 의중이 보였다. 소통 능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신 감독은 언론과 소통에 있어서도 탁월한 감독이다. 협회 언론담당관은 "앞으로 대표팀 운영으로 가까이서 접촉할 일이 없으니 오늘 궁금하신 것을 다 물어보라"고 했다. 그 뒤로 더 활발하게 인터뷰가 진행됐다. 30여분의 회견이 진행되고, 신 감독은 언론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을 남겼다. 

“지금 축구가 위기라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있고, 물론 위기가 맞다. 나도 절체절명의 위기라고 생각한다. 여기 와 계신 분들이 축구장에 가장 많이 오시는 분들이다. 위기보다 희망을 볼 수 있다고 응원을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 미디어가 글을 써서 보여주는 일은 쉽지만, 당사자인 선수들에겐 힘든 부분이 많다. 앞으로 2경기에 많은 힘을 줬으면 좋겠다. 나도 감독을 처음 맡아서 이제 출발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처음부터 저를 까지 말고 희망을 주셨으면 좋겠다. 대표팀에 뽑힌 선수들에게도 같이 뭔가 할 수 있다는 느낌을 줬으면 고맙겠다.” 

“우리 선수들이 개인적으로 아시아에선 절대 뒤지지 않는 선수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선수들이 실수 하나에 의기소침한다. 그런 부분에서 힘을 얻게 되면 우리가 갖고 있는 원동력이 훨씬 크다. 만약 이란전, 우즈벡전에서 지고 잘못 되면 질타하고 욕을 해도 달게 받겠다. 그러나 그 경기 전까지 힘을 주시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게끔 응원해주시기 바란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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