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는 K리그 현장으로 직접 달려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캐내고 가공해 '케시경'을 통해 독자와 만난다. 1편 주인공은 승격 후 K리그1 4연승을 달린 경남FC다.<편집자주>

[풋볼리스트=함안] 김정용 기자= 김종부 경남FC 감독은 4라운드에서 강원FC를 꺾은 뒤 관중석에서 조용히 승리 세리머니를 했다. 주먹을 살짝 쥐고 호성원 피지컬 코치에게 몇 번 흔들어보였다. 이 모습이 귀엽다고 K리그 애호가들 사이에서 작은 화제를 모았다.

김 감독은 거칠고 우악스런 K리그에서 약간 이질적인 존재다. 그는 월드컵 본선에서 골을 넣은 스타 선수 출신인데다, ‘교수님’ 최순호 포항스틸러스 감독보다 겨우 세 살 어린 53세로 나이도 많은 편이다. 그러나 김 감독을 무서워하는 선수들은 거의 없다. 권위보다 친근함으로 선수들에게 다가가는 편이다. 김 감독의 권위는 감독이라는 직업이 아니라 그의 능력에서 나온다. '김종부 매직'이 반복되면서 선수들은 김 감독의 지시를 신뢰하게 된다.

눌변에 가까운 김 감독에게 경남 돌풍의 비결을 듣는 건 쉽지 않았다. 김 감독의 말은 자주 빙빙 돌았다. 글로 써보니 문장 하나가 원고지 6매를 넘어갔다. 그는 이야기 중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멋진 표현이 나왔다고 느끼면 갑자기 “크으~”라고 추임새를 넣었고, “강등만 면하는 게 목표죠”라고 할 때는 당연히 거짓말이라는 듯 실룩실룩 웃으면서 말했다.

김 감독에게서 어떻게든 캐낸 경남 돌풍의 비결들을 정리했다. 김 감독에 따르면, 프로 선수들의 기술은 이미 완성된 상태다. 그들의 기술이 더 빛나게 만들려면 시야, 체력, 분위기 세 가지를 개선해야 한다. 그중 분위기를 제외한 시야와 체력에 대해 주로 물었다. 김 감독은 “이거, 비밀을 너무 많이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라면서도 질문에 열심히 답했다.

 

김종부의 디테일 1번 : 시야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시야를 강조한다. 이재명 등 올해 경남에서 기량 향상을 이룬 선수들은 한때 뛰어난 기술과 신체 능력을 가졌으나 경기 운영이 아쉽다는 평가를 듣곤 했다. 지금 경남 선수들은 대체로 판단력이 좋은 편이다. 판단력은 경남이 높은 확률로 공격을 성공시키는 비결 중 하나다. 해외에서는 종목을 막론하고 스포츠 선수들의 핵심 능력으로 떠올랐지만, 국내에선 아직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의사결정(decision making)에서 경남 선수들이 강점을 보인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어떤 플레이를 해야 할지 빠르고 정확하게 결정하는 능력이다.

김 감독은 “기본적으로 시야를 강조한다. 공이 없을 때가 중요하다. 공을 잡고 나서 플레이하면 이미 늦는다. 공을 받았을 때는 이미 상대 수비의 압박이 시작된 뒤다. 그러므로 1초 먼저 준비해야 한다. 1초면 축구선수가 4m를 움직일 수 있다. 마크를 단 1m만 떼어놓기 위해 엄청난 움직임을 보여야 하는 게 축구 아닌가. 4m는 엄청난 차이다. 여유 있는 플레이를 하려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준비된 자만이 성공할 수 있다.”

마지막 말을 하면서 자신의 명언에 “크으~”라고 감탄한 김 감독에게 더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사실 공을 받기 전에 주위를 둘러보라는 건 수많은 감독들이 강조하는 플레이다. 김 감독의 이야기에 특별한 것은 딱히 없다. 그러나 김 감독이 선수들의 시야를 넓히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는 건 사실로 보인다. 한때 판단력이 약점이었다가 올해 27세 나이로 기량 발전을 이룬 이재명을 비롯해 경남 선수들 다수는 김 감독 아래서 플레이가 빨라졌다고 증언했다.

“다른 곳에서도 시야를 강조하지만 다른 팀보다 우리가 조오금 더 집중적으로, 개선될 때까지, 훈련에서 또 경기에서 계속 주입을 시킨다.” 선수들의 시야를 개선시키는 구체적인 방법이 있냐고 묻자 “그건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라고 했다.

그의 비법을 짐작할 수 있는 한 가지 힌트는 아마추어 축구부터 밟고 올라온 감독이라는 점이다. 김 감독은 국가대표 선수 출신이지만 축구계에서 아웃사이더에 가깝다. 선수 시절 프로 입단 파동을 겪는 등 우여곡절이 컸고, 어느 팀과도 인맥을 만들지 못한 인물이다. 그래서 고등학교와 대학교 팀을 거쳐 양주시민축구단, 화성FC 등 아마추어 팀에서 활동하다가 18년 만인 2015년부터 프로팀 경남을 이끌기 시작했다. 김 감독은 “아마추어는 기술적, 전술적으로 모든 다 만들어줘야 했다. 여기선 집중적으로 단 몇 가지만 주입시키는 걸 선수들이 잘 따라와 줘서 좋은 결과가 났다”고 했다. 훈련의 핵심을 선수들에게 더 쉽게 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오래 고민해야 했던 환경이다.

 

김종부의 디테일 2번 : 5m 순발력

그동안 경남 훈련을 틈틈이 도왔던 호 피지컬 코치가 이번 시즌 정식 채용돼 동계훈련부터 선수들의 체력 관리를 주도했다. 경남 훈련을 다른 팀보다 혹독하게 만든 공포의 인물이다. (호 코치가 직접 말하는 훈련관은 추후 공개될 인터뷰를 통해 소개할 예정이다.)

육상 선수 출신인 호 코치를 영입한 결과, 경남은 단거리 순발력에서 경쟁력을 높였다. “큰 근력은 선수들이 늘 훈련해 왔지만 순간적으로 보조 역할을 하는 작은 근육들은 더 단련할 여지가 있었다. 그걸 강화했을 때 순간적인 파워가 더 늘어난다. 동계훈련 내내 쿠퍼 테스트 등 여러 방법을 쓰면서 심폐, 파워, 지구력 등을 강화하려 했다. 선수들에겐 힘든 과정이었을 거다.”

경남은 공을 완벽히 통제하고 주도하려는 축구를 하진 않는다. 그런 축구를 할 정도로 압도적인 기술을 가진 팀도 아니다. 경남의 경기에서는 공이 그라운드 어딘가에 떨어지고, 먼저 달려가 차지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일어난다. 그럴 때 5m 거리를 먼저 뛸 수 있는 순간 가속력이 중요하다는 것이 김 감독의 설명이다. 호 코치는 단거리 육상 선수 출신답게 스타트에 대한 노하우가 있다.

“프로는 연봉이 선수의 능력을 반영한다. 우리 예산을 볼 때 다른 팀에 비해 좋은 스쿼드는 아니다. 그러나 운동장에서 많이 일어나는 몸싸움, 볼 다툼, 순간적인 침투를 수행하는 능력은 다른 팀보다 조금 낫다고 생각한다. 호 코치는 태릉선수촌에서 축구와 육상 대표로 만나 인연이 생겼다. 순발력은 전문적으로 세밀하게 접근해야 발전시킬 수 있다. 그래서 전문성 있는 코치가 필요했다.“

김종부의 디테일 3번 : 맞춤 전술

지난해부터 경남은 새로운 '재활 공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영입된 배기종을 비롯해 권용현, 이재명, 김신 등 경력이 한풀 꺾였던 선수들이 경남에서 K리그 선두 팀의 주축 멤버로 발돋움했다. 우주성, 최영준, FC서울로 이적한 정현철 등은 그리 유명한 선수가 아니었으나 김 감독과 함께 생활하며 기량이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감독은 지난해부터 “나도 하고 싶은 전술이 있지만”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도 축구의 이상향을 갖고 있지만, 경남을 이상적으로 만들려 시도한 적은 없다. 실제로 경남에서 시도한 전술은 대부분 선수 특성에 최대한 맞춘 것이다. 그래서 김 감독은 훈련 시간에 거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매일 비슷하게 진행되는 전술 훈련을 이영익 코치가, 신체 강화 훈련은 호 코치가 맡는다. 김 감독은 훈련을 관찰하며 각 경기에 필요한 세부 전술을 구상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경남 전술은 팀에서 가장 중요한 공격수가 누군지, 그 선수의 장점이 뭔지 고민하는 대목에서 시작된다. “2016년에는 크리스티안이었다. 작년부터는 말컹이었다. 그 선수들의 장점이 뭔지 먼저 고민한다. 말컹은 높이가 있고 존재감이 크다. 그래서 크로스를 많이 했다. 우리 나름대로 크로스는 세트 플레이 이상으로 많은 훈련을 해서 높이에서 나오는 득점을 팀의 기본으로 삼았다. 그래서 측면 돌파가 가능한 배기종, 다음에 권용현을 영입했다. 올해 영입한 네게바를 통해 상대 수비를 분산시키면서 매 경기 득점할 수 있는 능력을 추가했다. 그래서 경기가 완벽해 보이지 않아도 득점을 늘리고 실점을 줄일 수 있었다. 공격수가 가진 능력에 따라 패턴을 만드는 것이다.”

경남은 가장 뛰어난 선수를 영입할 수는 없는 팀이다. 경남에 오는 선수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김 감독은 모든 능력이 중간인 선수보다 특징이 확실한 선수를 선호한다. 그 선수들을 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건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단점이 많아도 장점이 한두 가지 있으면 발히하게 해 주고 싶다. 스타일이 다른 선수를 다 좋아한다. 그들을 복합적으로 활용하려고 한다.”

김종부의 디테일 4번 : 말컹, 살을 빼라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여느 팀처럼 훈련은 코치들이 주도하고, 김 감독은 멀리서 훈련 모습을 지켜보다가 종종 다가가 신경써야 할 점을 짚어줄 뿐이다.

때론 김 감독이 달라붙어 처음부터 지도해줘야 하는 선수도 있다. 말컹이 대표적이다. 말컹은 완성되지 않은 선수였지만, 김 감독은 몸값이 싸고 키가 큰 선수가 있다는 걸 우연히 안 뒤 모험적으로 영입을 결정했다. 브라질 선수답지 않게 슛 동작이 크고 경기 요령이 부족했던 말컹은 김 감독에게 기술부터 차근차근 배웠다. 브라질 선수가 한국 감독에게 기술 지도를 받는 건 드문 일이다. 왕년에 천재 소리를 들었던 한국인 감독, 탁월한 신체 조건을 가졌지만 기술이 부족했던 브라질 선수의 만남이 만든 진풍경이다. 김 감독은 “말컹의 슛 모션이 짧아졌고 상대 진영으로 파고드는 움직임도 좋아졌다”고 만족해한다.

그러나 함안에서 말컹 이야기가 나왔을 때 김 감독은 한숨을 먼저 쉬었다. “살을 빼야 한다. 내가 보기에 10kg 정도는 더 빼야 적정 체중이다. 지금도 좋은 플레이를 한다고? 물론 그렇다. 그러나 몸 관리를 더 완벽하게 한다면 한 차원 높은 선수로 발돋움할 수 있다. 우리 팀엔 살을 빼야 하는 선수가 많았다. 김신과 쿠니모토 역시 체중 관리 중이고, 이들은 몸을 잘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말컹은 뺐다가도 다시 조금씩 찔 때가 있다. 자기 관리를 더 완벽하게 해야 자기 연봉도 높아지는 건데 그걸 아직 모른다.”

작년에 말컹을 임대 영입했던 경남은 K리그 챌린지(현 K리그2) 득점 선두를 달리며 말컹이 돌풍을 주도하자 원소속팀 이투아누에 이적료를 지불하고 소유권을 사들였다. 당시 이적료는 1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축구계 일각에서는 ‘앞으로 말컹이 부진할 수도 있는데, 일개 챌린지 구단이 너무 큰 돈을 쓰는 것 아니냐’는 회의적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말컹은 수십억 원 이적료가 예사로 거론되는 선수로 성장했다. 이대로 성장한다면 경남은 말컹을 통해 몇 배가 넘는 수익을 남기게 된다.

감독 입장에서는 말컹을 언젠가 떠날 선수처럼 취급하는 분위기가 불만족스럽지 않을까? 그러나 김 감독은 “그거야 뭐 지키는 데 한계가 있으니까 포기할 때는 포기해야 한다. 올해 한 번 지켰다. 계속 지킬 수는 없다”고 말했다. “나와 말컹은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은 유대로 묶인 사이다. 그러나 나도 말컹이 프로 선수라는 걸 이해한다. 에이전트, 가족까지 걸려 있는데 돈 많이 받는 곳으로 가야지. 우리 팀의 문제는 그때 말컹의 대체자를 잘 준비하는 것이다. 그걸 못하면 한 순간에 팀이 망가질 수도 있으니까.”

오히려 김 감독은 말컹을 자극하기 위해 이적 이야기를 활용한다. “며칠 전 말컹에게 말했다. ‘너 한국에 계속 있을 거냐? 한국이 좋냐? 지금 체중으론 네 목표를 이룰 수 없다’라고. 말컹은 유럽이든 프리미어리그든 갈 수 있는 선수다. 그러려면 다른 성장보다 체중 조절이 먼저다.”

사진= 풋볼리스트,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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