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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시경] 경남 ④ 육상 메달리스트, 프리랜스 악마, 이젠 경남 코치 호성원
김정용 기자 | 승인 2018.04.06 08:47

'풋볼리스트'는 K리그 현장으로 직접 달려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캐내고 가공해 '케시경'을 통해 독자와 만난다. 1편 주인공은 승격 후 K리그1 4연승을 달린 경남FC다.<편집자주>

[풋볼리스트=함안] 김정용 기자= 경남FC에 육상 선수 출신 피지컬 코치가 있다는 건 호기심을 끌만한 소식이었다. 그가 경남의 혹독한 체력훈련을 주도하고 있다는 건 조금 더 관심이 갈만한 소식이었다. 경남이 K리그1으로 승격하자마자 4연승을 거둔 지금, 호성원 피지컬 코치는 돌풍의 숨은 주역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경상남도 함안에 위치한 경남 클럽하우스, 호 코치의 방 바로 옆에 있는 휴게실에서 인터뷰를 했다. 호 코치가 이야기하는 그의 경력은 독특하기 짝이 없다. 아시안게임 육상 메달리스트 출신인데다 경남에 오기 전 지도한 선수는 농구선수 김선형, 오세근의 이름이 거론된다. 그는 종목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팀에 나타나 두어 달 동안 지옥훈련으로 선수들의 체력을 향상시킨 뒤 홀연히 사라지는 ‘프리랜스 악마’였다.

호 코치는 아웃사이더라는 점에서 김종부 감독과 통한다. 그는 온갖 종목을 돌아다니면서 늘 축구계를 동경하고 있었고, 올해 경남에서 자신의 꿈을 이룰 거라고 말했다. 프리랜스로서 인정 받던 시절보다 오히려 수입은 줄었으나 경남에 합류한 건 축구계의 일원이 되고 싶은 오랜 꿈 때문이라고 했다.

 

호성원은 누구인가?

호 코치는 한때 장재근의 뒤를 이을 유망주로 꼽혔던 엘리트 육상 선수였다. 그가 1986년 아시아 주니어 육상대회에서 세운 고등부 기록 10초54는 21년 뒤에야 깨졌다. 1983년 세운 소년체전 100m 기록도 32년 동안 보유하고 있었다. 100m와 더불어 비주류 종목인 실내 60m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대학교 3학년 때까지 제가 한국에서 제일 빨랐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그리고 스타트에 대해서는 저만의 노하우가 있었죠. 육상 하는 사람들이 아주 섬세해요. 찰나의 차이로 순위가 바뀌는 종목이다 보니. 저도 섬세하게 스스로의 주법을 분석하고 개량하면서 스타트를 잘 하는 방법을 개발해 왔어요. 제 나이가 지금 쉰하나인데, 여기 있는 20대 선수들 모두 스타트로는 제가 이길 수 있어요.”

김 감독과 처음 만났을 때도 물론 육상선수였다. 호 코치의 회고에 따르면 1984년, 서울체고 1학년 육상 선수였던 호 코치와 축구 대표였던 김 감독이 진해선수촌에서 만났다. 약 2주 정도 함께 생활하면서 마음이 잘 통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선수 생활이 끝난 뒤 호 코치는 쉽게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 활발하게 방송활동을 하던 선배 장재근처럼 연예계로 나가볼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장사도 했다. 그러다 35세 즈음부터 피지컬 코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독자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피지컬 코치를 먼저 시작한 종목은 농구였다. 농구계에서는 친구인 김상준 감독을 도우며 중앙대, 삼성썬더스, 성균관대 등에서 일했다. 배구는 오래된 구단 한국전력을 비롯한 V리그 팀에서 일했다. 그외에 테니스, 핸드볼 등 온갖 종목을 오갔다. 축구는 아마추어 구단에서 주로 활동했다. 언남고, 중동고 등에서 혹독하게 선수들을 가르쳤다. 주로 동계훈련 때 나타나 약 2개월 동안 강도 높은 훈련으로 신체 능력을 빠르게 끌어올린 다음 떠나는 식으로 일을 했다. 호 코치가 정리한 바에 따르면 이제까지 127개 팀에서 선수들을 지도했다. 선수들에게는 저승사자였다. K리그 선수들 중에서도 호 코치의 얼굴을 보면 ‘아니, 나를 괴롭혔던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지’라고 생각하는 선수들이 종종 있다.

 

호성원은 어떤 훈련을 하는가?

호 코치가 피지컬 코치로서 먼저 언론에 등장했던 건 농구계에서였다. 중앙대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52연승 대기록을 세웠다. 2010년에도 대학리그 25전 전승을 달성했다. 이때 조력자가 호 코치였다. 당시 중앙대는 신체 능력의 비중이 큰 풀코트 프레싱을 중요한 전술로 삼았다. 호 코치는 중앙대의 전성기 중 2년여를 함께 하며 선수들의 체력 훈련을 맡았다. 당시 중앙대 유망주였던 김선형과 오세근은 나중에 한국 농구를 대표하는 스타가 됐다.

이때부터 호 코치가 중요시한 건 단거리 순발력 훈련이었다. 오세근은 체격에 비해 퍼스트 스텝과 스피드가 좋은 편이고, 김선형은 농구계에서 가장 빠른 선수 중 하나다. 호 코치는 두 선수의 속도 향상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줬다고 판단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순발력 향상 훈련법을 10여년에 걸쳐 조금씩 개량해 왔다.

“육상과 축구는 다르죠. 그런데 스피드가 붙기 전까지는 똑같아요. 무슨 말이냐면, 육상 선수들의 성큼성큼 뛰는 주법은 축구에 별 도움이 되지 않지만 그건 10m 이후의 이야기예요. 스타트한 뒤 10m까지는 육상 선수나 축구선수나 똑같은 순발력이 필요해요. 이건 육상 선수 같은 스피드가 아니라 민첩성이고, 요령과 기술이 있다면 향상시킬 수 있는 부분이예요. 제가 선수 시절부터 잘 하던 게 스타트이기 때문에 그걸 여러 종목에 접목시킨 거죠. 짧은 거리는 힘으로 뛰는 게 아니고 요령으로 뛰어야 하거든요.”

호 코치의 스타트 노하우는 김 감독이 강조하는 ‘5m 순발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흔히 축구에서 중요한 건 10~20m 달리기라고 말하지만, 김 감독은 더 거리를 줄여 5m를 빨리 뛰는게 중요하다고 본다. 축구에선 스타트만 빨리 끊어서 상대 선수보다 어깨만 빨리 집어넣어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각 선수별 레인이 정해져 있는 육상과는 다르다. 공이 상대 선수와 우리 선수 사이에 떨어졌을 경우, 크로스를 받아서 슛을 하기 위해 상대 수비를 앞질러야 하는 경우 등 5m 달리기가 필요한 장면은 축구에서 자주 나온다.

호 코치가 일부 공개한 노하우는 잔발이다. 육상 선수는 보폭을 크게 해 성큼성큼 뛴다. 그러나 호 코치의 설명에 따르면 스타트 직후에는 보폭을 좁히고 보속을 높이는 것이 오히려 더 순발력에 도움이 된다. 이 동작은 다양한 종목에 접목할 수 있다. 그래서 경남 선수들은 동계훈련 때 짧은 보폭으로 계속 발을 움직이는 ‘잔발’ 훈련을 많이 했다. 이 훈련을 많이 하면 ‘잔근육’이 강화돼 부상 위험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는 것이 호 코치의 지론이다.

이미 경남 선수들은 특별 훈련의 효과를 보고 있다. 지난 네 경기 동안 네게바와 김효기의 문전 침투를 통한 득점, 쿠니모토의 순간적인 압박에 이은 말컹의 득점 상황을 보면 경남이 강조하는 5m 순발력이 잘 발휘됐다.

여러 종목을 지도해 본 호 코치는 그 사이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냈다. 축구는 방향전환이 잦으므로 여기 적합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점프의 경우 축구의 헤딩과 농구의 스파이크에 필요한 훈련은 똑같이 진행한다. 기본적으로 호 코치의 모든 훈련은 잔발 스텝에 필요한 근육을 강화하고 요령을 기르는 것이다. 테니스는 스매싱하기 전의 스텝을, 농구는 돌파해 들어갈 때의 스텝을 감안해 훈련을 지도한다. 김선형과 오세근 모두 돌파할 때 퍼스트 스텝이 장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건 흥미로운 부분이다.

호 코치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고 했다. 경험에 의해 일을 시작하고 나중에 이론을 접목했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컸다. 처음부터 체계적인 이론으로 무장하고 시작한 코치들과는 달랐다. 그만큼 독창적인 프로그램이 완성됐다.

호성원은 왜 경남에 왔나?

호 코치가 경남에 합류한 첫 번째 이유는 김 감독과의 인연이다. 고교 시절 김 감독과 처음 만났고, 종종 연락하는 사이 정도로 지내다가 2006년 호 코치가 중동고등학교 감독이었던 김 감독을 찾아갔다. 이때 중동고 훈련을 도우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의기투합한 둘은 언젠가 한 팀에서 호흡을 맞추자고 이야기했고, 10여년이 지나 약속을 지켰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축구에 대한 갈망이라고 했다. 육상인 호성원에서 축구인 호성원이 되고 싶다는 욕구가 어린 시절부터 늘 잠재돼 있었다.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의 광장초등학교 동창인 호 코치는 어린 시절부터 당연하다는 듯 축구의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그러나 부모님은 운동선수는 깡패가 되기 쉽다며 그를 막았다. 호 코치는 “제게 축구를 할 기회가 세 번 있었어요”라고 했다. 축구계에서 그를 스카우트하려고 한 적도, 스스로 축구선수를 지원할 기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우여곡절 끝에 육상계에 머물렀다. 

김 감독과의 호흡은 기대보다도 더 잘 맞는다. 김 감독이 타 종목 출신 코치를 선임한 것 자체가 파격이었다. 그리고 김 감독은 신체 능력 향상에 있어 호 코치에게 많은걸 맡겼다. 한번은 김 감독이 육상부 훈련을 보고 오더니 “쟤네들이 하는 캥거루 뛰기, 외발뛰기를 우리도 도입하면 어떨까”라고 먼저 의견을 냈다. 호 코치조차 축구식 훈련과 너무 동떨어진 훈련이라 도입을 망설이고 있던 훈련법이었다.

호 코치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기회를 준 김 감독에게 보답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감독님이 내게 기회를 줬는데 욕을 안 먹게 해야 되잖아요. 일단 저를 추천하신 분을 실망시키고 싶진 않아요. 6강 한 번 가고 싶어요.” 그의 진정한 올해 목표는 한 마디로 정리된다.

“자격증 있는 분들 많죠. 그런데 ‘야매’가 더 잘할 수도 있는 거 아니예요?”

 

부록 - 우사인 볼트가 만약 진지하게 축구를 한다면?

“안 되죠. 육상이란 건 내 레인을 벗어나면 파울이지만, 축구는 레인이라는 개념이 없잖아요. 다른 사람이 내 진로로 들어오면 내 스피드가 정지가 되거든. 그리고 그 선수는 볼 키핑도 안 되고. 보폭이 그렇게 큰데 키핑이 어떻게 되냐는 거지. 100m가 아니고 5m 싸움인데 속도가 붙기도 전에 옆에 있는 애들이 잡아먹지. 사실 우리 팀 선수 아무나와 우사인 볼트가 지금 경주를 해도 5m까지는 별로 차이가 안 나요. 볼트 같은 천재가 타고나는 건 그 뒤에 붙는 스피드죠."

사진=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cohenwise@firstdivisi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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