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황금공, 발롱도르(Ballon d’Or)는 전 세계 축구선수가 모두 갈망하는 대상이다. 가장 뛰어난 축구 선수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는 7일(현지시간) 62번째 발롱도르 시상식이 열린다. ‘풋볼리스트’는 가장 명예로운 시상식을 완벽하게 즐길 수 있는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참고서를 준비했다. <편집자주>

 

프랑스 축구 전문지 ‘프랑스 풋볼’이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에서 수여하는 발롱도르는 기자단 투표(프랑스 풋볼과 국제축구연맹(FIFA)가 함께 시상한 2010년부터 2015년까지는 각국 대표팀 감독과 주장, 기자단이 선정했다)에 의해 수상자가 결정된다. 지난 해부터 193개국에서 한 명씩 선정된 기자들이 후보에 오른 선수 중 1~5위를 뽑아 투표한다. 순위별로 점수가 차등으로 매겨지며 최고 점수를 획득한 선수가 발롱도르의 주인공이 된다.

지난해 발롱도르를 수상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압도적인 표 차로 2위 리오넬 메시를 제쳤다. 호날두는 316점을 받은 메시의 2배 이상인 745점을 얻었다. 기자 137명이 호날두를 1위로 꼽았다.

호날두의 사례처럼 압도적인 점수 차로 발롱도르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 그해 활약이 뛰어난 선수가 여럿 있다면 표가 나뉘기 마련이다.  ‘프랑스 풋볼’이 발행한 오피셜북 ‘발롱도르, 세계 축구의 전설들’을 보면 아주 근소한 차이로 발롱도르 2위에 그친 선수가 여럿 있다.

보비 찰턴은 1966년 매우 근소한 차이로 에우제비오를 제치고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찰턴은 기자들에게 81점을 얻었고 에우제비오는 80점을 얻었다. 발롱도르 역사상 가장 근소한 차이다. 찰턴은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를 우승으로 이끌며 인상적인 한 해를 보냈다. 특히 4강에서는 에우제비오가 뛰던 포르투갈을 상대로 2골을 넣었다. ‘1965/1966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8강에서도 에우제비오의 소속팀 벤피카를 꺾었다. 당시 최초로 2회 연속 발롱도르 수상을 꿈꿨던 에우제비오는 결과가 발표된 후 자기 대신 찰턴에게 1위 표를 던진 포르투갈 기자를 비난하기도 했다.

프란츠 베켄바워는 1972년 2점 차로 생애 첫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베켄바워는 기자 25명 중 10명에게 1위 표를 받아 81점을 얻었고, 게르트 뮐러와 귄터 네처는 79점을 얻어 공동 2위에 그쳤다. 처음 발롱도르 후배에 오른 지 7년 만에 수상이었다. 베켄바워는 1972년 바이에른뮌헨을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으로 이끌었고, 같은 해 서독대표팀으로 ‘유로 1972’ 우승을 차지했다.

덴마크 유일의 발롱도르 수상자인 알란 시몬센도 아슬아슬한 차이로 1위에 올랐다. 시몬센은 74점을 받았고 2위 케빈 키컨은 71점, 3위 미셸 플라티니는 70점을 받았다. 당시 키건은 가장 많은 11명에게 1위를 받았지만 2위 표를 더 많이 받은 시몬센에게 밀렸다. 시몬센은 1976/1977시즌 12골 2도움을 올리며 뮌헨글라드바흐의 3연속 분데스리가 우승을 견인했다.

키컨은 1년 뒤인 1978년 6점 차로 발롱도르를 차지했다. 키컨은 87점을 받아 그해 41골을 넣어유로피언 골든슈를 받은 한스 크란클(81점)을 제쳤다. 키건은 월드컵이 열린 해에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한 국가 소속으로 발롱도르를 받은 유일한 선수다. 그는 1977/1978시즌 분데스리가 함부르크SV로 이적해 33경기에서 12골을 터뜨렸다.

브라질 스트라이커 호나우두도 1996년 아쉽게 발롱도르를 놓쳤다. 141점은 받은 호나우두는 144점을 받은 마티아스 잠머에 밀렸다. 잠머는 보루시아도르트문트의 분데스리가 우승과 독일의 ‘유로 1996; 우승을 이끌며 높은 점수를 받았다. 잠머는 수비수임에도 ‘유로 1996’에서 2골을 넣었고, 대회 MVP를 수상했다. 아쉽게 2위에 그친 호나우두는 이듬해인 1997년 남미 선수 최초로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글= 김완주 기자

사진= 1966년 프랑스 풋볼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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