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7.12.11 월 18:31
상단여백
HOME 축구기사 해외축구
[발롱도르] ① ‘UCL의 아버지’ 아노, 발롱도르를 빚다
류청 | 승인 2017.12.06 12:54

[풋볼리스트] 황금공, 발롱도르(Ballon d’Or)는 전 세계 축구선수가 모두 갈망하는 대상이다. 가장 뛰어난 축구 선수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는 7일(현지시간) 62번째 발롱도르 시상식이 열린다. ‘풋볼리스트’는 가장 명예로운 시상식을 완벽하게 즐길 수 있는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참고서를 준비했다. <편집자주>

 

발롱도르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이하 UCL)은 한 사람 머리 속에서 나왔다. 프랑스 축구 선수 출신으로 ‘레키프’와 ‘프랑스 풋볼’에서 기자생활을 했던 가브리엘 아노는 전 유럽을 아우르는 대회와 상을 기획했고, 이를 현실로 만들었다.

 

1955년 아노와 뜻을 함께 하는 이들은 UCL 전신인 ‘유러피언 챔피언 클럽스컵’ 초대 대회를 파리에서 여는데 성공했다. 이들은 1년 뒤 자매 잡지인 ‘프랑스 풋볼’과 함께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를 선정하기로 했다. 유럽 기자들이 투표해 유럽에서 뛰는 가장 뛰어난 유럽 선수를 뽑은 방식이었다. 발롱도르의 시작이었다. 첫 해 수상자는 잉글랜드의 스탠리 매슈스였다. 41세로 황금공을 들어올린 매슈스는 여전히 최고령 수상자로 남았다

 

발롱도르는 제한적인 상이었다. 1956년부터 1994년까지는 유럽 리그에서 뛰는 유럽 국적 선수만 상을 받을 수 있었다. ‘축구황제’ 펠레와 ‘축구신동’ 디에고 마라도나는 뒤늦게 명예 발롱도르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 풋볼’은 1995년에야 대상을 조금 넓혔다. 국적에 상관 없이 유럽에서 뛰는 선수는 이 상을 받을 수 있었다. 기준을 바꾼 첫 해에 의미 있는 선수가 수상자가 됐다. 라이베리아 출신인 조지 웨아는 비 유럽인으로 첫 수상자가 됐다. 1997년, 브라질에서 태어난 호나우두도 펠레와 마라도나의 한을 풀었다.

 

‘프랑스 풋볼’은 2007년 대상을 전 세계 리그로 확장했다. 어디에서 뛰든 가장 축구를 잘 하는 선수가 황금공을 차지하게 됐다. 2010년에는 또 다른 변화가 있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와 발롱도르 시상식을 함께 하게 됐다. ‘FIFA 올해의 선수상’과 발롱도르를 합쳐 ‘FIFA 발롱도르’가 됐다. 이 시기에는 각국 대표팀 감독과 주장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과거에는 각국을 대표하는 기자 1인만 투표할 수 있었다.

 

FIFA와 발롱도르는 2015년, 발롱도르 60주년을 끝으로 헤어졌다. 2016년부터는 다시 ‘프랑스 풋볼’이 시상 주체가 됐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2016년에 4번째 발롱도르를 차지했다.

 

발롱도르를 가장 많이 수상한 선수는 리오넬 메시다. 총 5번 황금공을 집으로 가져갔다. 그 뒤는 호날두(4회)가 따른다. 故 요한 크루이프와 미셸 플라티니 그리고 마르코 판 바스턴이 나란히 3번 수상했다. 메시와 호날두는 여전히 발롱도르 역사를 두고 경쟁 중이다. 두 선수는 2017년에도 강력한 수상 후보다.

 

글= 류청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류청  blue@footballist.co.kr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퍼스트디비전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 03121 | 제호 : 풋볼리스트(FOOTBALLIST) | 발행인 : ㈜퍼스트디비전 서형욱
편집인 : 서형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독막로8길 15, 401호(합정동) | 등록연월일 : 2014.04.23 | 발행연월일 : 2014.04.23
발행소 전화번호 : 070-4755-4553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제2014-서울마포-1478호 | 청소년보호 및 개인정보관리 책임자 : 류청
Copyright © 2017 풋볼리스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