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러시아월드컵에서 인종차별로 인한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경각심은 러시아 축구계를 넘어 국제축구연맹(FIFA)에도 퍼져 있다. 인종주의 사건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예고된 이유다.

러시아 통신사 ‘타스’에 따르면 국제축구연맹(FIFA)이 오는 17일 개막하는 ‘2017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부터 강력한 인종차별 금지 정책을 도입하기로 했다. 경기장에서 인종주의적 행위가 벌어지면 주심은 경기 중단, 장내 방송을 거쳐 경기 몰수를 선언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갖는다. 경기장 내 인종주의 행태를 감시하는 옵서버도 배치된다.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인종주의 사고를 막기 위한 조치가 시작됐다. 컨페더컵은 개최국의 월드컵 준비 상황을 확인하기 위한 예행연습의 성격이 짙다. 단 8팀이 참가하는 대회가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카잔, 소치 4개 도시에서 열리는 것도 많은 도시, 많은 구장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네 도시의 인프라와 경기장 상태뿐 아니라 관중 문화도 점검 대상이다. 러시아는 인종주의적 폭력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 나라로 악명이 높다. 국제 교류가 늦어 다양한 인종과 접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네오나치 문제 등이 겹치며 극단적인 폭력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러시아 비정부기구 SOVA 센터의 집계에 따르면, 인종주의적 폭력으로 인한 사망자가 2008년에만 109명에 달했다. 이후 감소세를 보인 사망자 숫자는 2015년 9명까지 축소됐다. 빠르게 개선되고 있는 와중에도 아프리카계, 아시아계 사람들에게는 위험한 나라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남미와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은 곧잘 인종차별을 당한다. 브라질의 전설적 선수 호베르투 카를로스는 러시아 안지에서 뛴 1년 동안 두 번 인종주의적 모욕을 당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3년 야야 투레를 비롯한 맨체스터시티의 흑인 선수들이 CSKA모스크바 원정에서 인종차별에 시달렸다.

 

스메르틴은 “인종차별은 없다”고 했지만

러시아 축구계는 월드컵 성공 개최를 위해 인종주의 근절이 시급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첼시에서 활약했던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알렉세이 스메르틴이 인종차별 근절 홍보대사를 맡아 활동 중이다. 스메르틴은 월드컵 개최를 1,000일 앞둔 지난 2015년 영국 ‘BBC’와 가진 인터뷰에서 “러시아에 인종주의는 없다”고 말해 비웃음을 샀다.

최근 인터뷰에서 한 발 물러선 스메르틴은 “인종주의는 세계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 러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인종주의 문제가 존재한다는 건 인정했지만 다른 나라보다 특별히 심각한 건 아니라는 자세를 고수했다. “러시아는 다문화 사회다. 컨페더컵과 월드컵 기간에 어떤 인종주의 사고도 없을 거라고 자신한다.”

러시아축구협회(RFU) 측은 최근 종료된 2016/2017 러시아프리미어리그를 비롯해 어떤 프로 리그에서도 인종주의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RFU 측은 “이는 러시아의 팬 문화가 발전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자평했다. 러시아 전반의 인종차별 사건이 감소하는 추세에 맞게 축구장에서도 원숭이 울음소리나 바나나를 던지는 행위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카메룬 환영한다고 얼굴에 검은 칠? 여전한 '몰이해'

직접적인 인종차별은 엄벌을 통해 방지할 수 있지만, 여전히 문제의 소지는 남아 있다. 러시아 축구계 및 문화계가 인종주의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 행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아프리카 출신에게 연탄 같다고 말하면 악의가 없더라도 문제시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대가 왜 기분 나빠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러시아가 인종 문제에 둔감하다는 걸 보여주는 사건이 지난 1일 발생했다. 소치에서 열린 컨페더컵 전야제 행사에서 카메룬 역할을 맡은 러시아인들이 얼굴을 검게 칠하고 바나나 모형을 목에 건 채 행진했다. 얼굴을 검게 칠하는 ‘블랙 페이스’ 분장은 인종차별의 상징이다. 바나나는 백인이 흑인을 조롱할 때 흔히 쓰는 도구로, 특히 축구장에서는 인종차별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지리아 출신 유학생 롤라데 아데우이가 행사 사진을 트위터에 게시하며 문제 삼았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 서구 언론에 의해 각국에 알려졌다. 일이 커지자 알렉산드르 파코모프 소치 시장이 아데우이를 초청해 직접 해명했다.

파코모프 시장은 “소치는 손님맞이와 관용에 대해 늘 인지하고 있다. 3천여 명 참가자 중에서 실망한 사람들이 있었다면, 정말 유감이다”라며 “우리에게 바나나는 인기 있는 열대과일일 뿐이다. 오히려 우리는 친근함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파코모프 시장은 소치에서 열리는 대회 준결승 입장권을 아데우이에게 선물했다.

소치 측은 모든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빠르게 대처했다. 그러나 스메르틴의 말과 달리, 소치에서 벌어진 사건은 러시아에 다원주의가 제대로 전파되지 못한 현실을 보여준다. 카메룬 사람을 환영한다며 얼굴에 검은 칠을 하는 것 같은 사건이 월드컵에서 반복된다면 문제는 더 커질 수도 있다. 1년 뒤 31개국의 손님들을 맞아야 하는 러시아 축구계는 아직 과제를 다 해결하지 못한 듯 보인다.

사진= 유튜브(@Александр Валов) 캡쳐

관련기사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FOOTBALL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