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풋볼리스트=인천] 김정용 기자= 남자 축구대표팀 주장 기성용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을 예감한 듯 남은 두 경기는 선수들이 직접 헤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1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한 기성용은 선수 대표로 인터뷰를 가졌다. 대표팀은 이날 새벽(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 예선 A조 8차전에서 카타르에 2-3으로 패배했다. 조 3위 우즈베키스탄도 패배했기 때문에 한국은 월드컵 본선 진출이 보장되는 조 2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남은 두 경기 대진이 나쁘기 때문에 약체 카타르를 잡지 못한 건 위기 상황이다.
가장 큰 화두는 슈틸리케 감독의 유임 여부다. 이미 지난 3월 경질 위기를 겪은 슈틸리케 감독은 정해성 코치의 추가 발탁 등 대표팀 강화를 위한 조치를 취한 뒤에도 또 패배했다. 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15일 슈틸리케 감독을 경질할지 결정하기 위해 소집된다. 슈틸리케 감독 스스로 “기술위원회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인터뷰했고,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개인적으로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경질에 가까운 입장을 암시했다.
기성용은 슈틸리케 감독이 없는 상황까지 감안해 인터뷰했다. “그것(감독 거취)에 대해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축구협회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다.”
“물론 감독님이 가장 첫 번째로 책임을 지는 게 축구에서 당연히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거취가 어떻게 되든 확실한 건 남은 두 경기를 선수들이 헤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독님이 다시 하시든 어떻게 되든 남은 두 경기 선수들이 잘 해야 하는지 다시 반성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감독 경질 여부에 상관없이 남은 두 경기는 선수들이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발언이다. 선수들의 자성을 촉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감독의 리더십과 전술 지시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상황을 암시한 발언이기도 하다. 경질 위기에 처한 감독을 두둔하지 않았다.
남은 두 경기에 대한 각오를 말할 때도 감독 교체를 염두에 두고 말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감독님 거취를 모른다. 새로운 감독님이 오실 수도 있고, 오시면 짧은 기간에 많은 게 바뀐다. 선수는 나름대로 월드컵 나간다는 강한 욕심을 갖고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새 감독님이 오신다면 빨리 선수들을 파악해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게 중요하다. 일단 저희들이 잘못됐던 부분들을 개인적으로나 생각해 보고,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8월 이란전을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준비해야 한다.”
반성 말하던 기성용, 이젠 불만 밝히기 시작
기성용은 최근 인터뷰에서 선수들이 자성해야 한다는 투의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 “사실 선수들이야 당연히 잘하고 싶고, 경기 나가서 못하고 싶은 선수가 어디 있겠나.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하게 준비했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졌기 때문에 대표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기 과정 등을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두 경기가 남아있기 때문에 선수들이 포기하면 절대 안 된다. 잘 하면 충분히 월드컵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성용은 선수들의 책임만 이야기하지 않았다. “감독이 책임지는 건 축구에서 당연히 있는 일”이라는 말처럼, 선수들이 비판을 감내해야 한다는 기존 태도와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언론과 여론의 비판에 대한 불만도 이야기했다. 기성용은 언론이 대표팀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지난 몇 경기 동안 언론이 팀을 많이 흔들고 있고 부정적인 기사가 많이 나온다. 선수들이 받는 압박감이 어느 때보다도 심하다. 선수들도 다 사람이고 언론을 다 보는데, 기사에 팀의 문제가 부정적으로 나오면 선수들이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 게 운동장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지금 전술과 플레이를 이야기하기보다 팀 분위기가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은 게 사실이다. 이로 인해 우리가 받지 않아야 할 비난까지 받고 있기 때문에 플레이에도 어려움이 많이 있다.”
기성용은 카타르전을 간단하게 정리할 때도 “일대일 경합이나 정신적으로나 상대가 더 철저하게 준비했다. 그게 실점으로 이어지면서, 선수들의 자신감이 떨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준비가 미흡했다는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 3월에 이미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분위기는 위기 극복을 위한 코칭스태프 변화, 선수 선발 방침 변화, 조기 소집 등 대표팀을 지원할 수 있는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더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동안 선수들의 책임을 강조해 온 기성용은 이제 감독에 대한 신뢰가 희미해졌다는 것, 팀 분위기가 나쁘다는 것, 경기 준비에 대한 불만 등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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