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풋볼리스트=도하(카타르)] 한준 기자= 카타르 도하에 입성한지 3일 째. 울리 슈틸리케(62) 국가대표팀 감독은 취재진 앞에서 한 번도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입국 당일(10일)부터 첫 훈련을 실시한 11일 알아라비스포츠클럽, 최종 공식 훈련을 진행한 12일 자심빈하마드경기장에서 모두 가장 먼저 훈련장에 들어와 허공을 응시하며 홀로 앉아 있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자주 상념에 잠겼고, 적잖이 외로워 보였다. 그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카를로스 아르무아 피지컬코치가 오히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주 임무인 웜업 준비 과정을 더 세밀하게 준비한 것은 물론이고, 때로 장난스런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훈련장으로 진입할 때 크게 소리치며 앞장선 이도 아르무아 코치였다.
#웃지 못하는 슈틸리케
현지시간으로 12일 저녁 8시에 공식 훈련을 1시간가량 가진 뒤 경기 전 공식 기자회견이 열렸다. 슈틸리케 감독은 땀에 젖은 모습으로 등장했는데, 기자회견장에 들어설 때부터 나갈 때까지 상기된 얼굴이 유지됐다. 대표팀 미디어담당관이 우선 경기 적 기본적 각오를 물은 뒤 “손을 들고 질문해 달라”고 말하자 몇 초 간 정적이 있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질문이 없다면 마치자”고 했다.
분위기를 풀고 시작하기 위해 심각하지 않은 이야기로 첫 질문을 던졌다. 한국 대표팀을 맡기 전에 활동했던 카타르 무대에 돌아온 소감, 특히 하루 전에는 직접 지휘하며 홈 경기장으로 썼던 알아라비스포츠클럽에서 오랜만에 훈련해본 소감 등을 물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프로라면 개인적인 감정은 분리해야 한다. 몇 년간 같이 일했던 이들을 다시 만나고, 그때 나를 취재하던 카타르 기자들도 다시 만나 기쁜게 사실이지만 우리 임무에 집중해야 한다”고 딱딱하게 답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날도 취재진의 질문에 한 차례 답을 한 뒤 다음 질문을 받기 전 “이 말을 더 하고 싶다”며 먼저 회견 진행을 멈추고 부연 설명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자분들이 우리 팀의 공격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투톱이나 원톱 등 포메이션이나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성향의 플레이를 하느냐가 중요하다. 선수들의 정신적인 점이 더 많이 중요하다는 것을 간과하는 것 같다.” 이라크전 이후 쏟아진 전술적 비판론에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모습이다.
이 발언에 이어 “이청용 지동원 손흥민 남태희를 선발로 투입했다. 전반전에 공격수를 4명이나 뒀다. 우리는 많은 공격수를 넣었는데, 누구를 더 넣을 수 있나”라고 항변했다. 이라크전 전반전의 스리백 시도가 공격력 둔화의 배경이었다는 지적에 대응한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의 발언에 기성용을 스리백 자리에 두면서 중원에 간격이 커져 4명의 공격수가 무용지물이 된 게 아니냐는 질문을 달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스리백을 적용하며 생긴 중원 지역의 수적 열세를 인정했지만 “더워서 그런 것도 있었다. 2~3명의 선수들인 중동에서 경기를 해봤지만 나머지 선수들은 적응하지 못했다. 체력적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보니 소극적으로 경기를 한 것 같다”는 설명을 더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기자회견 내내 손가락을 정신없이 움직이며 초조한 기색을 드러냈다. 팀이 전술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강해졌으며, 현지 날씨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는 등 카타르전에 대한 준비가 잘 되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가 몸으로 보인 모습에선 확신을 읽기 어려웠다.

#선수들은 유쾌했지만, 주장 기성용은 무거웠다
대표 선수들의 훈련 분위기는 밝았다. 8시부터 훈련할 예정이었던 대표 선수들은 조금 더 일찍 그라운드에 나와 몇몇 조로 무리를 지어 가벼운 공놀이를 하며 몸을 풀었다. 8시가 되기 전까지 심판진이 그라운드를 밟으며 운동하고 있었다. 그 이전의 짜투리 시간까지도 경기가 열리는 자심빈하마드경기장의 잔디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공 돌리기 게임으로 편안하게 웜업이 시작됐는데, 손흥민을 중심으로 유쾌한 상황이 만들어졌고, 남태희와 김진수가 속한 조에서는 꿀밤 때리기 내기도 벌어지고 있었다. 이근호 역시 베테랑의 무게감 보다 훈련 내내 밝고 쾌활한 모습으로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와중에 주장 기성용의 모습만 조금 달랐다. 대표팀은 이날 늦은 시간 훈련이 잡히면서 공식 훈련 이후 저녁 식사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이로 인해 기성용은 공식 회견장에 나오지 않고 훈련 시작 직전에 1분가량 간단히 각오를 밝혔다. 기성용은 “준비한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말을 파주NFC에서의 훈련 때부터 반복해왔다. 지난 원정 경기 내내 훈련장 분위기는 좋았으나, 실전에선 전혀 다른 양상의 경기가 이어졌다.
기성용은 인터뷰 이후 선수들이 모여 있는 곳의 반대편에서 홀로 트래핑을 하며 본격 훈련이 시작되기 전 몸 풀기를 했다. 기성용은 심각한 얼굴로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선수들 틈 사이로 향하며 밝은 모습을 보이려 했으나 비장함을 다 지우지 못했다.

주장 기성용은 슈틸리케 감독과 매 소집마다 단독 면담을 가장 오래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비판론이 커졌을 때는 선수단을 향해 과감하게 쓴 소리를 하기도 했다. 팀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써보고 있지만, 여전히 원정 경기에서 무승, 무득점이다. 그래서 이번 소집에서 기성용의 모습은 한층 더 심각해 보인다.
이번 원정 경기에서도 흐름을 바꾸지 못하면 우즈베키스탄과의 마지막 원정 경기의 부담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진다. 카타르 원정의 치명성을, 슈틸리케 감독과 주장 기성용은 잘 알고 있다.
사진=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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