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도하(카타르)] 한준 기자= 울리 슈틸리케(63) 감독은 10일 입국 현장부터, 14일 자정을 넘긴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8차전 카타르와 경기 이후까지, 도하에서 보낸 시간 동안 취재진에 노출된 시간에는 한 번도 웃음을 보이지 못했다. 그는 취재진이 목격하는 순간마다 매번 초조함과 불안함을 숨기지 못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넘겨짚을 수는 없지만, 평소보다 훨씬 더 홀로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생각에 빠져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경기 하루 전 인터뷰 현장에서는 두 손을 모은 뒤 아주 빠르게 두 손가락을 움직이며 자신도 모르게 마음 안의 불안을 표출했다.

자신이 과거 지휘했던 알아라비스포르클럽에서 대표팀 훈련을 지휘한 날에도 즐거운 모습을 보이던 카를로스 아르무아 코치와 달리 굳은 얼굴을 펴지 않았다. 결전의 장소인 자심빈하마드스타디움에서 경기 하루 전 훈련을 하던 날에는 홀로 선수단 밖에 따로 떨어져 상념에 젖어 있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2010년 7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알사일리아, 2013년 6월부터 2014년 1월까지 알아라비를 지휘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오랜만에 카타르에 온 것에 대한 소회를 물었을 때 “프로라면 개인적인 감정과 분리할 수 있어야 한다. 예전에 보던 카타르 기자들과,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 기쁘지만 경기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이 발언을 할 때도 얼굴을 풀지 않았고, 카타르 취재진과도 경기 전날 회견은 물론 경기 후 회견까지도 별도의 교감을 나주지 않았다.

현지 시간으로 13일 저녁. 경기 시작 1시간 30여분 전에 슈틸리케 감독은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선발 명단에 들지 않은 남태희도 그라운드에 나왔는데, 카타르 대표팀에 속한 레크위야 팀 동료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2016/2017시즌 카타르스타스리그 MVP를 차지한 남태희를 보고 카타르 대표 선수들이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우르르 달려와 껴안고 인사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그라운드 상태를 잠시 확인하고는 아무 말 없이 서서 경기장을 둘러보다가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선수들이 몸을 풀기 위해 다시 나왔을 때도 그의 시선은 선수들이 없는 어느 곳을 물끄러미 향했다. 

#슈틸리케는 도하에서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했다

양 팀 선수들이 입장할 때, 슈틸리케 감독은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선수들을 마중하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가장 마지막에 손흥민이 들어올 때는 포옹을 하며 독려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 중 감정을 크게 숨기는 편이 아니지만, 이날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는 훨씬 더 극적으로 드러냈다. 연이은 위기 상황, 그리고 실점에 격정적으로 아쉬움을 표했고, 후반전 들어 강하게 몰아치는 흐름 속에 만회골 기회가 무산될 때는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흔들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패배로 경기가 끝난 뒤에는 마지막 불꽃같았던 슈틸리케 감독의 격정도 사그라졌다. 카타르전 취재현장은 아수라장에 가까웠다. 1만 2천여명 을 수용할 수 있는 자심빈하마드 스타디움의 관중석은 절반가량 밖에 들어차지 않았는데, 한국에서 넘어온 취재진은 경기 시작 30여분 전에야 AD카드를 배부받을 수 있었다. 협회 관계자의 도움으로 우선 취재석에 들어왔지만 이동이 어려웠고, 화장실을 찾아 내부로 들어간 뒤에는 AD카드가 없어 경찰의 통제로 인해 다시 취재석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카타르축구협회 직원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 같지만 10분만 기다리라는 이야기를 남기고 한 시간 가량이 지나서야 경기장 안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AD 카드를 발급 받았다. 경기 시작 전부터 혼을 빼놓는 사소한 일들이 닥쳤다. 

카타르 원정에 임한 대표팀은 경기 전부터 돌아갈 길에 대한 고민으로 바빴다. 경기가 현지시간으로 13일 밤 10시 킥오프 예정인데, 돌아가는 비행기 편이 14일 새벽 2시 30분에 잡혀있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경기 이틀 전, 이 비행기편의 출국 시간이 15분 당겨져 제 시간에 선수단 전원이 탑승을 완료할 수 있을지 여부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대표팀 관계자는 “경기를 밤 10시에 킥오프한다는 사실이 너무 늦게 공지됐다. 비행기는 그 전에 예매해서 촉박한 시간이 됐다”고 했다. 한국-카타르간 직항편은 하루에 하나 밖에 없고, 시간도 인천발 1시 20분경, 도하발 2시 30분경으로 동일하다.

경기장에서 공항까지는 40여분의 시간이 걸린다. 대표팀은 우선 지원스태프가 하루 더 남고 감독과 코칭스태프, 선수들만 짐 없이 빠르게 이동하는 대안을 마련했다. 도핑 테스트 대상자가 된 권순태와 김진수는 이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대표팀은 경기 후 인터뷰에 대해 원정 취재진과 사전 조율을 통해 경기 종료 직후 빠르게 회견장 및 믹스트존으로 이동해 진행하기로 했다. 

#슈틸리케의 절망, 한국축구의 실망

문제는 카타르축구협회 측과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지 못해 발생했다. 자심빈하마드 스타디움은 다른 카타르 경기장들과 마찬가지로 등록한 동호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스포츠 시설이 내부에 존재한다. 이들이 경기장 관중석 및 선수 동선으로 진입할 수 없도록 곳곳에 경찰을 배치하고 문을 잠궜는데, 경기 종료 이후에는 경찰들이 떠나고 직원들도 해당 지역을 벗어났다.

기자회견실은 경기장 내 2층에 마련되어 있는데, 경기 종료와 함께 바로 회견장을 향해 갔다. 그라운드에서 경기장 내부로 향하는 문이 잠겨 있었다. 슈틸리케 감독과 통역을 담당하는 대한축구협회 직원도 이 동선을 택해야 했다. 회견장으로 이동하는 길에 이 문 앞에서 취재진과 마주쳤다. 이 문을 열릴 때까지 몇 분의 시간을, 취재진과 슈틸리케 감독은 침묵 속에 기다렸다. 

문이 잠겨있는 것에 당황한 슈틸리케 감독은 한 쪽 구석에 마련된 의자에 앉게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그는 아주 깊은 고민에 빠져있는 모습이었다. 카타르축구협회 직원이 열쇠를 가져와 열었고, 취재진과 함께 회견장에 들어섰다. 슈틸리케 감독은 “감독 입장에서 아주 실망스러운 경기다. 큰 꿈을 갖고 준비했고, 오늘 아주 중요한 경기였는데 이렇게 지게 되어 안타깝다.”

보통 경기 후 기자회견은 개괄적인 경기평 이후 기자들의 질문 시간으로 넘어간다. 슈틸리케 감독은 먼저 자신이 취재진이 두 가지 질문을 할 것 같다며 먼저 마이크를 쥐고 답했다. 첫 번째는 이번 경기 패배로 인한 자신의 거취, 두 번째는 홍정호 대신 곽태휘를 선발 출전 시킨 이유였다. 첫 번째 대목에 대해 슈틸리케 감독은 “내 손에 달린 문제가 아니기에 지금 여기서 질문해서 답을 할 수 없다. 한국에 돌아가서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이날 경기 현장에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과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있었다. 경기를 마치고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슈틸리케 감독은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자신의 인사 결정권을 최종적으로 가진 정 회장, 이 위원장과 거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슈틸리케 감독은 카타르 원정 경기를 준비하고, 도하에 입성한 이후 내내 이 경기가 한국 대표팀 감독 지휘봉을 잡고 일하는 마지막이 될 것을 직감했을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의 거취는 최종예선 개시 이후부터 경각에 달려 있었다. 9월 중국과 예선 첫 경기에서 3-2로 신승했으나 시리아와 득점 없이 비겼다. 10월 이란 원정에서 패한 뒤 위기론이 불거졌다. 11월 우즈베키스탄전에 패할 경우 경질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으나 승리하면서 일단락됐다. 지난 3월 중국 원정 패배로 다시금 경질 여론이 거세졌고, 카타르 원정 패배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책임 인정했으나 변명처럼 들린 회견

슈틸리케 감독은 “나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선발 명단도 내가 구성했고, 전술도 내가 짠 것이기 때문에 이 결과에 대해선 나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전반전부터 고전했다. 전반전 스코어가 0-1이었지만, 경기력 측면에서는 어떤 순간에도 공을 통제하지 못하면서 경기를 통제하지 못했다”며 내용상 완패를 인정했다. “2-2 상황에서 더 침착하게 대응해야 했다”고 자신의 전술적 패착도 짚었다.

그러나 취재진이 제기한 의문에는 방어적 자세를 취했다. 손흥민이 부상으로 빠진 뒤 이근호가 들어가자 경기력이 살아난 것에 대해 선발로 나선 공격진의 경험이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이근호가 아니라도 기성용처럼 경험을 가진 선수들이 적절히 선발 명단에 있었다”고 했다. 

이날 수비력이 좋지 않았던 측면에서 이라크전에 스리백 실험이 유효하게 쓰이지 못한 것을 묻자 “이라크전에 스리백을 쓴 전반전 경기력이 좋지 않았고, 선수들이 포메이션에 익숙하지 않아서 쓰지 않았다. 스리백이냐 포백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실점 장면에서 최종 수비 라인의 선수를 도와주는 협력 수비를 하는 선수가 없었다”는 답을 내놓았다. 그는 앞서 “선발 출전 예정이던 홍정호와 손흥민이 경기 중 부상을 입어 뛰지 못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패배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개별 선수의 측면에서 패배를 해석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그것을 핑계로 삼지는 않겠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패착에 대한 복기 보다 실패에 대한 해명에 가까운 발언이 주를 이뤘다. 더구나 슈틸리케 감독이 “내 거취는 내 손에 달린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대목에서는 아쉬움도 남았다. 어쩌면 이 자리는 그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용퇴를 선언하는 결단을 내릴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승리하고 물러난 포사티, 슈틸리케 용퇴할 마지막 타이밍

카타르 원정에 나서기 전 슈틸리케 감독은 “한번 더 대표팀을 믿어주시고 응원해 달라”고 했다. 그는 결과로 보답하지 못했다. 그 자신도 다시 ‘한번 더’가 있기는 어렵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슈틸리케호는 최종예선 원정 경기에서 1무 3패를 기록했고, 우즈베키스탄과 원정 경기가 예선 최종전이다. 원정 경기에서 또 한번의 패배가 찾아온다면 정말 월드컵 본선 직행이 좌절되고, 험난한 플레이오프 여정이 시작된다. ‘1986 멕시코 월드컵’ 이후 이어진 8회 연속 본선 진출 역사가 30년 만에 막을 내릴 수도 있다. 

물론, 사임 여부를 경기 종료 직후 번개불에 콩 볶아 먹듯 결정하고, 발표하기는 어렵다. 그런 모습은 오히려 경솔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 다음 순서로 회견장에 들어선 승장 호르헤 포사티 감독은 회견 말미에 이미 마음을 정리하고 사전에 준비한 듯 카타르 축구 발전을 위한 고언을 쏟아낸 이후 사임을 암시하는 발언을 남기고 떠났다. 

“선수들의 피지컬 컨디션 문제로 인해 후반전에 교체하지 않았을 3명의 선수를 바꿨다. 시즌 종료 시점이자, 라마단 기간이 겹쳐 선수들이 신체적으로 아주 어려웠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닌데 협회 차원에서 이 부분에 대해 개선해 나가야 한다. 카타르는 우리의 실수가 아니라 이란전과 우즈베키스탄전에 나온 심판의 실수로 인해 기회를 놓쳤다. 그 상황이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의 가능성은 더 컸을 것이다.” 

기자회견 문답이 끝난 뒤 잠시 할 말이 더 있다고 한 포사티 감독은 “모든 카타르 사람들, 지금 일하고 있는 기자 여러분을 포함해 난 복잡한 감정을 말하고자 한다. 이겨서 기쁘지만, 동시에 슬프다. 정치적인 문제가 우리의 경기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지만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그동안 여러분 모두와 일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카타르 취재진은 포사티 감독을 향해 “이제 마지막 경기인가?”라는 말을 스페인어로 물었고, 포사티 감독은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이후 카타르 미디어 ‘알카스’가 포사티 감독의 사임 사실을 보도했다. 일을 마치고 경기장을 빠져나오는 데, 가족들과 함께 경기장 밖으로 나서는 포사티 감독을 마주쳤다. 그에게 승리를 축하한다고 말했고, 포사티 감독은 환하게 웃으며 고맙다는 말고 함께 악수를 했다. 

포사티 감독은 현재 카타르가 얻은 승점과 별개로 한국을 상대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며 홀가분하게 떠났다. 포사티 감독은 한국전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개척하고 자신이 결정해나간다는 것을 보여줬다. 한국 대표팀은 14일 오후 5시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다. 대한축구협회는 15일 기술위를 열어 슈틸리케 감독의 유임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긴 비행 이후 당도할 한국 땅에서 슈틸리케 감독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서슬퍼런 비난이다. 슈틸리케 감독의 말처럼 그의 거취는 전적으로 그의 손에 달린 것은 아니지만, 그의 손으로 결정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아직 2경기가 남았고, 여전히 2위에 올라 있지만, 감독의 지지율은 바닥이다. 극적으로 본선 티켓을 얻더라도 회복되기 어려울만큼, 신뢰는 손상됐다. 귀국 현장은 다른 손에 의해 내려오기 전에, 자신의 손으로 운명을 결정할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사진=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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