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대한축구협회는 울리 슈틸리케 전 남자 대표팀 감독을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려고 했다. 잘 풀렸다면 인건비를 극대화하는 효과가 발생했겠지만, 현실은 본업인 대표팀 운영조차 실패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2014년 9월 선임됐다. 당시 선임을 주도한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감독 경력이 초라한 인물을 선임한 이유로 솔직함, 인간적인 배려, 한국 축구 전반적인 일을 함께 하고 싶다는 의욕 등을 밝혔다.

앞의 두 가지는 성격 측면이고, 마지막 이유는 슈틸리케 감독의 업무 특성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대표 선수 탐색을 위한 K리그 현장뿐 아니라 각종 아마추어 축구 현장에 상징적 존재로서 자주 발걸음했고, 유소년 축구에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대표팀 일정과 바로 맞물린 행사에도 참석하는 등 본업에 충실하지 못한 면모도 보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유소년 육성 전문가가 아니다. 독일 청소년대표팀에서 필립 람 등을 지도했다는 점이 한때 부각됐지만, 이 선수들이 성장을 주도한 것이 아니라 그저 감독으로서 지도했을 뿐이었다. 유소년 시스템에 대한 전문성이나 한국 유소년 축구에 시사점을 줄 철학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다.

고도로 분업화되는 현대 축구에서 독일 출신 감독 한 명이 한국 축구 전반적인 일을 함께 하면서 대표팀 성적도 책임지는 건 버거운 일이었다. 선임 당시 슈틸리케 감독과 경합했던 네덜란드의 베르트 판마르바이크 감독은 굳이 한국에 임기 내내 체류할 필요 없다는 식의 태도로 빈축을 샀다.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에서 오래 지냈으면서도 실패를 경험하고 떠나야 했다. 판마르바이크의 태도도 좋은 건 아니었지만, 대표팀 감독은 팀 운영에 집중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외국인 감독 한 명이 한국 축구 문화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건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 시절의 이야기다.

해외 명장들은 새 팀을 맡을 때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대표팀 운영에만 집중하는 코칭스태프가 적으면 서너 명, 많으면 열 명 넘게 한 팀으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카를로스 아르무아 코치 한 명만 대동했다. 최소한의 인원을 선임하고서도 대표팀 바깥의 일을 자꾸 신경쓰게 하는 건 본업에 대한 집중력을 떨어뜨리기 쉬웠다.

축구협회는 지난해 11월 슈틸리케호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뒤늦은 코치진 강화를 모색했다. 이때도 이 전 위원장은 수석코치 선임 기준으로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분, 슈틸리케 감독과 소통이 원활하고, 시간이 있을 때 유소년과 청소년도 맡고, 지도자 세미나에서 교육 지도 강사로 활동할 수 있는 분”을 찾는다고 했다. 감독 선임 때와 마찬가지로 멀티 플레이어 역할을 할 코치를 먼저 찾는다는 뜻이었다. 결국 외국인 코치 선임이 무산되며 설기현 코칠 가닥이 잡혔지만, 여전히 축구협회는 ‘인력 활용도 극대화’에 신경 쓰고 있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실패했고, 대표팀은 월드컵 본선 진출이 불투명한 위기 상황에 빠졌다. 만약 본선에 나가지 못한다면 금전적으로도 축구협회가 입는 피해가 막심하다. 대표 감독을 너무 잘 활용하려고 했다가 가장 중요한 본업조차 똑바로 지원하지 못해 더 큰 손해를 볼 수 있는 지경에 처했다. 대표팀 감독은 대표팀 운영 전문가를 선임하고 대표팀 운영을 위해 지원하는 편이 낫다. 실패가 주는 교훈이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관련기사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FOOTBALL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