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환희로 시작했지만 끝은 눈물이었다. 그것도 아주 길고 오랜 눈물이었다. 대한민국 U-20 대표팀의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여정이 포르투갈과 16강전 1-3 패배로 끝난 이후, 대부분의 선수들이 울었다. 동료 선수들은 백승호가 숙소로 돌아간 이후에도 오랜 시간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고 했다. 

‘풋볼리스트’는 아직 탈락의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간, 대회 전 갑작스레 입은 부상의 통증도 가시기 전에 백승호를 만났다. 백승호는 아직 인터뷰를 통한 말 보다, 그라운드 위에서 플레이로 보여주고 싶은 것이 더 많다. 어쩌면 프로 선수로 본격적으로 가진 첫 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를 중심으로 백승호의 프로 경력 첫 페이지를 정리했다. 

#포르투갈전 패배, 왜 그토록 많이 울었나

패배나 탈락이 처음은 아닌데, 백승호는 포르투갈전 패배를 마주하고 많이 울었다. 어려서부터 주목 받던 선수지만, 그 잠재력을 대중 앞에 제대로 선보일 기회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몇 만 명 앞에서 볼 차보는데, 되게 설레고 좋았거든요.” 백승호는 “아쉬워서 그런 것이지 다른 의미는 없었다”고 했다. 더 보여주고 싶었던 아쉬움이 가장 컸다.

“조금만 더 올라갔다면, 보여줄 것도 많았고, 우리를 더 알리고 싶었는데, 준비한 기간 보다 일찍 끝난 것 같아서. 아쉬워서 울었어요.” U-20 월드컵을 위해 결성된 팀은 2년 넘게 운영됐다. 신태용 감독 체제로만 따져도 반 년이 넘었다. 

“너무 일찍 끝나서 허무했죠. 아무래도 상대 선수들이 프로에서 뛰고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라서 제 실력도 시험해보고 프로의 세계가 어떤지 더 알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열심히 준비했는데 생각보다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것 같아요. 더 경험하고, 더 보여주고 싶은 무대였는데...”

백승호는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를 목표로 컨디션 100%를 만들고자 했다. FC바르셀로나 유소년 선수 시절 경기 외적인 이유로 너무 오랜 시간 실전 경험을 잃었다. 신태용 감독은 2월 포르투갈 전지훈련에서 백승호를 처음 만난 후 그가 가진 바탕을 인정했다. 포르투갈에서 돌아온 이후 백승호의 경기 체력을 본선까지 100%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고 공표했다. 신 감독이 준 믿음과 기회는 백승호에게 자신감을 줬다.

“감독님이 그때 보시고는 ‘언론에서 밸런스가 안 좋다고 그러는데, 내가 보니 체력이 부족한 것’이라고 하셨어요. 하고 싶은 플레이를 하려면 체력이 있어야 하니까. 부족한 것이 체력이니 거기에 포커스를 두고 준비하자고 하셨죠. 신 감독님을 만나고 굉장히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체력적인 부분이 좋아졌고, 경기를 뛰니까 감각도 올라오고, 자신감도 생기고. 진짜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스페인 시절을 포함해도) 지금까지 만나 본 감독님 중에 가장 좋았어요. 풀어주시고, 이해해주시고, 무엇보다 제일 냉정하시고. 누구라고 잘해주는 것 없이 다 똑같이 대했거든요. 저를 처음 보고서도 바르셀로나 선수라고 플러스는 아니니까, 내가 보면서 냉정하게 판단하겠다고 하셨는데, 전 오히려 그게 좋았어요. 똑같이 보고 판단하신다면, 나만 열심히 하면 되니까.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하다 보니 올라온 것 같아요.” 

본선을 목표로 100%로 향해가던 백승호의 상승세가 주춤한 것은 세네갈과 본선전 마지막 평가전에서 입은 발목 부상이다. 스터드가 잔디에 엉키면서 발목이 돌아갔다. 통증이 심했고, 본선 참가 여부까지 불투명해졌다. 다행히 다음 날 기대 이상으로 호전됐다. 최주영 팀닥터와 의료진이 정성을 다해 치료하면서 본선 경기에 뛸 수 있을 만큼 회복했다. 하지만 100%의 백승호를 보여줄 수는 없었다.

“정확히 몇 프로가 떨어졌다고는 말할 수 없고요. 그냥 어떤 동작을 할 때 아파서, 그 동작을 정확히 못한 거였죠. 체력적으로는 참고 뛰면 뛸 수 있었어요. 다쳤다고 엄청 떨어졌던 것은 아니에요. 긴장도 미리했고, 테이핑도 했고. 오른발로 슈팅할 때 디딤발을 놓으면 아팠는데, 더 아프거나 다치지 않을까도 생각했지만 운 좋게 그런 상황은 안 나왔어요. 긴장도 하고 나갔고, 테이핑도 했고, 경기를 뛰다보니까 잊어버리게 됐죠. 바르셀로나에서도 병원을 잘 가던 스타일은 아니에요. 거기선 병원을 한번가면 운동을 무조건 일주일 쉬어야 하거든요.”

#평가전 지배한 U-20 대표팀, 본선에서 느낀 ‘경험 차이’

생각 보다 대회가 일찍 끝났다는 백승호는 “열심히 준비했고, 우리는 4강까지는 가고, 우승까지도 생각했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평가전에서 워낙 경기력과 결과가 좋았고, 그 점에 대해 신 감독도 자신감을 보인 바 있었다. 백승호는 “경기 경험에서 확실히 포르투갈 선수들은 운영하는 흐름을 잘 알더라”고 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운영의 묘’다.

“포르투갈이나 영국을 보면 빌드업할 때 여유가 있어요. 영국 같은 경우 수비를 할 때 딱 압박을 나가지 않고 지역으로 서서 급하게 안 하더라고요. 우리는 플레이를 할 때, 수비를 할 때 급했던 것 같아요.” 

U-20 대표팀, 특히 백승호에게 포르투갈은 운명의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다. 백승호는 포르투갈 전훈에서 처음 신태용호에 합류했고, 마지막 일정은 포르투갈전이었다. 그때 U-20 대표팀은 포르투갈을 적지에서 상대하며 무승부를 거둬 자신감을 얻었다. 당시에도 포르투갈은 주력 선수가 대거 포함된 팀이었다. 

“비슷했지만, 포르투갈은 그때 이번처럼 경기력이 안 나왔던 것 같아요. 걔네는 소집한지 3일 밖에 안됐고, 우리는 며칠 더 운동하고 있었으니까요. 우리도 포르투갈까지 왔고, 체력 운동을 하던 중이었으니 많이 차이는 안 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포르투갈의 조직력이 더 잘 맞더라고요. 실력 차이가 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확실히 템포 조절이 우리보다 좋아서 진 것 같아요.”

백승호는 세계 축구와 U-20 대표팀의 차이가 축구 기술에서 발생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우리 선수들의 기술이 부족하다고는 전혀 생각 안하거든요. 저도 동료 선수들이랑 같이 해보면 개인 기술이나 기본기가 나으면 낫지 떨어진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경기에 들어가면 경험의 차이가 나오는 거죠.” 백승호도 그렇지만, U-20 대표팀 선수들 모두 대학리그와 K리그의 각자 소속팀에서 안정적으로 주전 입지를 다진 선수가 없다. 대회를 앞둔 직전 시진의 경기 경험이 본 대회에서의 운영 능력 차이를 나았다는 분석이다. 

“경기를 뛰면 어떤 상황을 맞이했을 때, 그 상황에 대해 순간적으로 판단이 되고 자엽스럽게 나와요. 경기를 안 뛰면 그 상황에서 우왕좌왕하게 되죠. 경기를 뛰어야 감각을 올리고 그런 상황에 대처할 수 있죠. 그래서 감독님도 각자 팀에 가서 경쟁을 이겨서 뛸 수 있도록 하라고 얘기하셨고, 우리끼리도 그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U-20 대표 선수들의 플레이는 급했다. 급하다보니 기술적인 실수도 나왔다. 패스 미스가 빈번했고, 킥 미스도 눈에 띄었다. 신 감독은 백승호의 강점을 볼 간수 능력이라고 했다. 유럽과 남미 팀들의 강점도 일단 침착하게 볼을 관리하는 능력이었다. 백승호는 그 점 역시 공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답이라는 생각을 말했다.

“경기를 얼마나 해봤느냐, 볼을 얼마나 다뤄봤느냐는 차이인 것 같아요. 확실히 처음 해보는 사람들은 급하고, 공이 오면 어쩔 줄 모르는데, 해본 사람들은 그 상황이 오면 여유 있게 주고, 뺏길 것 같아도 한 번 더 터치해서 주는 게 있어요. 안 되는 사람들은 안 될 것 같을 때 주는 거죠. 100번 뛰어본 사람이 1번 뛰어본 사람과 똑같이 할 수는 없잖아요.”

기니전은 잘 풀렸지만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포르투갈 등 축구 강국을 연이어 상대하는 일정에서는 한계를 만났다. 거기엔 경기 수준 차이도 있지만, 많은 관중 앞에서 침착하게 가진 실력을 풀어내는 침착성의 차이도 있었다. 

“기니에도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이 있지만 한 두 명이고, 다른 팀과는 수준 차이가 있었죠. 아르헨티나는 아르헨티나만의 볼 차는 스타일이 있고, 좋은 팀에서 뛰는 프로 선수들도 있어요. 그런 애들은 보면 확실히 볼 관리가 달라요. 그 경기는 우리에게 운이 따라준 것 같아요. 영국이나 포르투갈은 유럽 5대리그에서 뛰는 애들이 있어요. 포르투갈리그나 프리미어리그를 한번 뛰어본 경험은 큰 차이에요. 우리는 아무래도 사람이 많으니까 긴장이 됐죠. 몇 만 관중 앞에서 뛰던 잉글랜드 선수들에겐 얼마나 우습겠어요.” 

#1군 훈련 1순위에서 2군 후보, 바르셀로나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한국에서 초등리그를 휩쓸던 시절 최전방 공격수였고, FC바르셀로나 유소년 팀에 들어가서 미드필더를 보던 백승호는 알려진 것과 달리 신태용호에서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나섰다. 이 자리는 백승호가 소속팀 FC바르셀로나B에서도 주력 포지션으로 담당하고 있는 위치였기 때문이다. 

“프리시즌에는 미드필더도 보고 윙도 봤어요. 지금 소속팀의 코치님이 저를 오래 보신 분이에요. 제가 윙 포지션에서 잘하는 것을 보시고 그 자리에서 조금씩 더 뛰게 된 것 같아요.” 백승호의 컨디션이 가장 좋았던 시기는 바르사가 FIFA로부터 받은 선수 등록 금지 징계가 끝날 무렵이었다. 만 18세 생일이 지나 바르사 훈련장에 돌아온 백승호는 등록 기간이 되지 않아 경기에 나서지는 못했으나 바르사B팀과 일정을 함께 하며 몸 만들기에 임했다. 후베닐A팀 단계를 뛸 시기에 바르사B와 모든 일정을 함께 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바르사 내부에서 백승호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것도 이 시기다. 

“징계 거의 마지막 즈음에 거의 6개월 동안 B팀이랑 운동했어요. 작년 1월 등록 기간이 되기 전부터 B팀에 있을 때 윙 포지션에서 잘했어요.” 백승호가 루이스 엔리케 감독이 이끄는 1군팀 훈련에 호출된 것도 이 시기다. 바르사는 A매치 소집 기간에 많은 선수가 빠져나가면 B팀과 유스 팀 선수들을 1군 훈련에 호출하고, 자체 경기도 자주 치른다. 백승호는 1군 선수들과 섞여 뛰면서도 자신있게 자신의 능력을 보였다.

“1군 팀에 가서 훈련 할 때는 중앙을 봤어요. 처음에는, A매치 때 선수들이 빠져서 저를 포함해 4명을 불렀거든요. 그때 괜찮게 했는데, 그 뒤로는 A매치 선수들이 소집된 이후에도 계속 부르시더라고요. 그때 한참 바르사B에 있으면서 잘할 때였는데, 경기는 유스팀에 가서 뛰고, 1군 훈련에 자주 들어갔어요.” 

1군팀 훈련에 소집되는 것은 단순히 부족한 인원을 채우는 의미가 아니다. “선수가 부족해서 부르게 되지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을 부르죠. 저는 윙도 보고, 미드필더도 볼 수 있으니까.” 바르사는 1군팀과 B팀을 섞어서 훈련하거나, 일부 선수를 호출해 자체 경기를 하는 등 하부 조직과 연계된 훈련을 자주 한다. 1군의 훈련 목적이 크지만, 1군의 경험을 전수하고, 1군 진입을 준비하는 선수들의 적응력을 높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백승호는 1군팀과 함께 3차례나 경기를 뛰었다. 

“특별하죠. 1년에 한 번도 못가는 애들도 많아요. 그렇게 자주 1군과 운동할 수 있게 불러주니까, 솔직히 뿌듯하고 좋았죠. 거의 저만 따로 불러서 훈련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때는 생각이 많았어요. 그냥 내가 경기를 못 뛰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 정말 괜찮게 해서 그런 것인지.” 

그 의문을 풀어준 것은 당시 유스팀 감독인 가브리다. 엔리케 감독과 함께 바르사 1군 선수로 뛰며 막역한 사이였던 가브리 감독이 백승호에게 엔리케 감독이 좋게 생각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줬다. 신태용 감독이 선수 차출을 위해 바르사 이사진과 면담을 진행했을 때 바르사 관계자가 전한 첫 번째 메시지가 “백승호는 1군 훈련 호출 1순위 선수”라는 것이었다. 결코 작은 의미는 아니다. 백승호는 실제로 엔리케 감독에게서 직접 1군 데뷔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엔리케 감독님이 경기를 자주 못 뛰니까 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좋아지고 있으나 차근차근 발전하자는 얘기를 해주셨어요. 그리고 1군에 한번 뛰게 하겠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준비하고 있으라고.” 1군 훈련에 가장 많은 부름을 받은 백승호의 1군 데뷔전을 예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러나 지난 해 도중 백승호의 전 에이전트와 유스 디렉터 펩 세구라 사이의 대화에서 발생한 오해가 백승호의 이후 경력에 타격을 줬다. 백승호 측의 진의를 오해한 디렉터로 인해 바르사 내의 백승호 프로젝트에 제동이 걸렸다. 

상승일로의 컨디션이 깨진 것은 2015/2016시즌 후반기, 염원하던 실전 경기 출전의 기회가 온 시점이었다. “징계가 끝나고 B팀에서 뛸 것이라고 얘기를 들었는데, 그때 세구라 디렉터와 안 맞는 부분이 생겨서 유스로 갔죠. 유스에서 어영부영하다가 다치면서 흐름이 깨진 것 같아요. B팀과 쭉 경기를 하면 템포를 맞춰서 올라갔을텐데, 유스팀으로 내려가니까 수준이 바뀌었고, 포지션도 유스팀에서는 4-3-3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많이 나왔는데, 잘 안 맞았어요.”

뛰던 선수들이 달라지고, 경기 리듬이 달라진데다 포지션과 역할까지 혼동되는 와중에 찾아온 부상은 백승호의 자신감을 떨어트렸다. 2016/2017시즌에는 바르사B팀 엔트리에 정식 등록되었으나 프리시즌 기간 발생한 부상으로 컨디션이 떨어진 뒤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장기간 실전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서 컨디션은 악화됐고, 그 와중에 신태용호에 합류했다. 

하지만 바르사에서 1군 훈련을 빈번히 소화하며 쌓은 경험, 바르사의 방식으로 성장하며 얻은 기술은 U-20 대표팀의 축으로 기능하는 데 충분했다. 

“바르사 1군 훈련을 보면, 확실히 이름 있는 선수들이 다른 게 있어요. 볼을 간수할 때 되게 터프하게 해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느낌이 달라요. 자기들이 하고자 하는 게 확실해요. 볼을 예쁘게 차는 것 같으면서도 다를 때 빠르게 확확.” 

“바르사 훈련이 밖에 보여지는 것처럼 재미있는 훈련이 있는데, 경쟁할 때는 굉장히 냉정해요. 자기들끼리 경쟁이니까요. 부딪힐 땐 부딪히고, 같은 팀이라고 빼는 게 없거든요. 실전같죠. 승부욕이 강하고. 결국 경기에 자기가 나가야 하니까. 그런 훈련을 같이 하면서 조금씩 플레이에 여유가 생겼고, 노하우도 배웠어요. 요즘은 뜨는 팀들의 운동을 비슷하게 하니까 한국에서 훈련한 것도 비슷했어요. 다만 과학적으로 몸 관리를 해주고, 필요한 것만 딱딱 가르쳐주고, 방식은 비슷하지만 디테일 측면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100%를 꿈꾸는 백승호, 2017/2018시즌의 과제

백승호는 처음 바르사 유소년 팀에 입성했을 때 미드필더를 봤다. 기본적으로 바르사는 패스 게임을 위해 영입한 선수들을 여러 포지션을 경험하게 한다. 이를 통해 백승호는 현대 축구가 요구하는 다양한 전술 역량을 갖춘 선수로 성장했다. 

“관계자분들이 여기가 좋을 것 같다고 미드필더를 세웠어요. 처음엔 어떻게 자리를 서야 할지 몰라서 힘들었는데, 3년 정도 지나고는 적응이 됐어요. 윙으로 옮겼을 때도 위치 잡는 것은 따로 비디오도 보고 1군 경기를 보며 준비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어요.” 

백승호는 U-20 월드컵에서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뛰었지만 가장 편한 포지션은 쉐도우 스트라이커라고 했다. 본래 최전방 공격수였던 본능이 여전하고, 중앙 지역에서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다. 하지만 백승호는 “볼 수 있는 자리는 많은데 아직 잘 모르겠다. 더 찾아보고 싶다”고 했다. 이제 리그 경기를 꾸준히 나서며 자신을 만들어야 한다. 백승호는 100%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프로의 삶은 매 순간 경쟁의 연속이지만, 백승호에게 여전히 축구는 즐김의 대상이다. “스페인에 와서도 애들이랑 어울리고 적응하는 게 힘들었지, 팀에서 짤린다는 생각은 전혀 안했어요. 같이 볼 차보면 알잖아요. 그것 보다는 새로 주어진 포지션에 적응하는 것에 집중했죠. 스트레스는 학교 때문에 받았어요.”

백승호는 쉽게 맺기 어려운 5년 장기계약이란 안전판 속에 착실히 성장했다. 다만 바르사는 정규 교육을 모두 받아야 뛸 수 있고, 다음 학년으로 넘어가기 위해선 시험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내야 한다. 스페인어로 공부해야 했던 백승호에겐 스페인 축구에 적응하는 것 보다 스페인 학생으로 사는 일이 더 힘들었다. 

“한국에서 운동하는 애들은 거의 공부를 안하는 것에 가까운데, 여기선 통과를 해야 해요. 게다가 문제도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으로 나와요, 사회나, 수학 문제도 글로 써서 답을 내야 해요. 그래서 문제도 많이 나오는 게 아니라 10가지 정도. 사지선다가 아니라 자기 생각을 쓰는 논술형이라 찍을 수도 없고. 정말 어려워요. 축구 보다 공부를 더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 백승호에겐 축구를 하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바르사에서 치열한 축구를 배우는 시간이 즐거움으로 남을 수 있었던 또다른 이유다. 바르사는 세르지 로베르토를 비롯해 학업과 축구를 병행하며 대학 진학까지 했다. 백승호는 “전 일단 볼을 더 잘 차야죠”라고 웃으며 축구 밖의 세상에 관심을 돌리긴 이른 시기라고 했다.

2017/2018시즌 백승호의 과제는 꾸준히 경기에 나서며 성장하는 것이다. “바르사 프로팀에 올라오는 선수는 예전에도 2~3년에 한 두 명 꼴이었어요.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죠. 일단 경쟁에서 이겨야죠. 그렇지 못하면 뛸 수 있는 팀을 찾아서 가는 것이 당연해요. 다른 팀에 가서 성장해서 돌아오거나, 아니면 다른 좋은 팀을 찾아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일단은 바르셀로나에서 열심히 하는 게 첫 번째입니다.”

백승호는 동네 인근의 안양천에서 운영되던 김진국축구교실에서 취미로 축구를 시작했다. 축구과 인연의 끈은 묘하게 이어져 있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축구 태동기에 연희전문에서 선수로 활약한 고 백문오 선생이 백승호의 할아버지다. 

“할아버지가 아프실 때 집에 계셨는데, 운동을 갔다 오면 잘했냐고 늘 물어보셨어요. 골 에어리어 쪽에선 항상 슈팅을 하라고. 딱 그 말만 해주셨죠.”

부친도 테니스 선수로 활동했던 백일영 연세대 체대 교수다. 운동신경은 타고났다. 축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를 기억하며 여전히 즐겁다. “애들이 우루루 차고 있으면 한쪽에 나와있던 저한테 항상 공이 왔어요. 가만히 있어도 공이 저한테 오더라고요. 그걸 잡아서 제가 치고 가면 못 따라오니까. 그 재미로 차다가 재미있었고, 쭉 축구를 하게 됐어요.”

처음 축구를 시작했을 때, 우연찮게 공이 흘러왔던 것처럼 조금의 행운이 따라준다면.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에서 불완전 연소한 백승호의 꿈은 조금 더 완성에 가까워질 수 있다. 100%에 대한 갈망이 풀리는 날, 백승호는 그라운드 위의 플레이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사진=풋볼리스트, 대한축구협회 제공, FC바르셀로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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