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울리 슈틸리케 한국 대표팀 감독은 과거 인터뷰에서 수비적인 스리백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처음 시도한 스리백은 그가 난색을 표한 ‘파이브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은 8일(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서 이라크와 친선경기를 갖고 유효슈팅 하나 없이 0-0 무승부에 그쳤다. 6일 뒤 카타르 도하에서 카타르를 상대하는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8차전의 준비 과정이었다.

한국은 스리백을 쓴 것이 눈에 띄었다. 전문 센터백 두 명 사이로 기성용이 내려갔다. 기성용의 본업은 미드필더지만 청소년 대표 시절부터 프로, 대표팀을 막론하고 종종 스리백의 스위퍼 역할을 소화한 적이 있다. 기성용이 빠진 중앙 미드필더는 원래 공격형 미드필더인 남태희가 맡았다. 남태희와 한국영만으로 중원을 구성한 3-4-3이었다.

선수 구성만 보면 매우 공격적인 스리백처럼 보인다. 3-5-2, 3-4-2-1 등 스리백 계열의 다른 포메이션들에 비해 3-4-3은 공격 숫자가 더 많다. 스리백 중 한 명이 원래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둘 중 한 명이 원래 공격형 미드필더라는 점 역시 공격에 초점을 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제 경기력에서 이들의 공격력은 거의 발휘되지 않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3월 소집 당시 스리백 등 전술 변화를 가질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 “스리백에 대한 생각은 좀 다르다. K리그 팀들은 스리백이 아니라 파이브백을 많이 쓴다. 어제 경기에서도 5-4-1 포메이션을 봤다. 수비라인에 한 명을 더한다는 건 결국 전방에서 한 명을 빼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대표팀 상황에선 점유를 통해 압박하는 축구를 추구해 왔다. 대부분의 경기에서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포메이션을 크게 바꿀 생각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3월 A매치의 내용과 결과 모두 비판 받은 대표팀은 정해성 코치가 새로 선임되는 등 팀 구성에 변화를 줬고, 황일수와 이창민을 선발하는 등 K리거 기용폭도 늘렸다. 슈틸리케 감독의 고집을 꺾는 변화가 여러 방면으로 있었다. 3월 발언을 바탕으로 지금 비판하는 건 무리가 있다.

다만 슈틸리케 감독의 기본 철학까지 버리라고 할 수는 없는데, 이 점에서 수비적인 3-4-3 포메이션은 무리가 있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공격적인 스리백을 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3-4-3은 수비에 치중하다가 역습하는 축구에서 더 많이 쓰이는 포진이다. 강력한 전방 압박을 하거나 네덜란드식 ‘토털 풋볼’을 적극 도입하지 않는 한 공격 루트가 한정되기 쉽다. 같은 스리백 계열 중에서도 미드필드 장악이 용이해 평소 슈틸리케 스타일에 가까운 3-5-2를 쓰지 않았다. 3여기에 중앙 미드필더로 장악력이 부족한 남태희를 배치한 것 역시 역동성을 스스로 제한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좌우 수비수 구성도 마찬가지였다. 슈틸리케 감독이 과거에 난색을 표했던 ‘사실상 파이브백’이 되지 않으려면 좌우 윙백을 공격적으로 운용하는 전술뿐 아니라 윙백의 역량이 중요하다. 이날 풀타임을 소화한 박주호와 김창수 모두 공격력에 장점이 있는 윙백은 아니다. 두 선수 모두 베테랑답게 좋은 타이밍에 침투하는 장면들이 몇 차례 있었지만, 크로스 등 마무리 부분에서는 여전히 약점을 노출했다. 정운, 안현범 등 스리백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윙백들을 발탁하지 않은 점이 더 아쉬워졌다.

기성용을 일종의 스위퍼로 스리백의 중앙에 세웠을 때 한국이 노릴 수 있는 효과는 분명하다. 일차적으로 손흥민 등 공격자원에게 빠른 패스를 배급해 공격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상대 수비가 공격진을 따라 끌려가며 공간을 노출하면 여기로 침투하는 윙백에게 공을 배급하는 공격 루트도 위력적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라크, 카타르에 비해 전력이 강한 팀이다. 카타르가 수비라인을 전진시키고 한국을 강하게 압박할 가능성은 낮다. 한국이 공략할 수 있는 수비 배후 공간은 거의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기성용을 스위퍼로 세우는 조치는 의미를 갖기 힘들다. 카타르가 이라크보다 적극적으로 기성용에게 덤벼들 경우, 전문 수비수가 아니라는 약점만 노출하게 될 수도 있다.

후반전에 기성용이 미드필드 지역으로 올라갔지만, 한국영이 자주 수비진 중앙으로 내려가며 여전히 스리백에 가까운 형태를 보였다. 스리백의 중앙에 미드필더를 세우겠다는 발상은 여전했다. 그러나 첼시의 다비드 루이스처럼 스리백의 가운데에 가장 대인마크가 좋고 수비 범위가 넓은 선수를 배치해 상대 공격수를 강하게 마크하도록 하고, 공을 탈취하는 속도를 높여 속공으로 이어나가는 발상도 가능하다.

단순히 공격적인 선수를 많이 배치한다고 해서 팀의 공격력이 상승하지는 않는다. 수비와 미드필드는 공격적인 선수가 아니라 해당 지역에서 장악력이 높은 선수가 있어야 오히려 팀 전체의 득점 확률을 높여주는 경우도 있다. 이 점에서 기성용과 남태희는 한계가 분명한 선수들이다.

슈틸리케 감독의 스리백 실험은 단순히 수비수가 세 명이라 문제가 아니라, 실전에서 가동했을 경우 수비 숫자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방어력에 문제를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위험하다. 3-4-3을 가동하면서 수비수로 기성용, 중앙 미드필더로 남태희를 배치하는 건 이 포메이션의 상식과는 다른 선수 기용이었다. 파격적인 기용의 이유를 보여주지도 못했다. 카타르전에서 스리백이 쓰인다면 이라크전에서 나온 문제를 보완해야 한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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