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치른 이라크와 친선경기는 철저히 카타르전을 대비한 평가전이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전력의 대표팀 전력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손흥민과 기성용을 모두 선발 출전시킨 것을 비롯해, 카타르와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A조 8차전 경기에 출전이 유력한 선수를 대거 투입하며 조직력 다지기에 주력했다. 

이라크전의 목적은 전술 실험으로 보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부임 후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3-4-3 포메이션을 내세웠다. 센터백 장현수와 홍정호 사이로 기성용이 자리했다. 기성용은 ‘포어 리베로’ 형태로 앞에 서지 않고 수비라인 최후방에 머무르며 빌드업의 기점 역할을 했다. 박주호와 김창수가 좌우 윙백으로 배치된 가운데 중앙 미드필더로 한국영과 남태희가 조합을 이뤘다. 공격진은 손흥민-지동원-이청용으로 구성됐다. 

#기성용을 수비 라인으로 내린 이유

기성용이 수비 지역으로 내려간 효과는 1차 패스가 원활하게 전개된 것이다. 더불어 기성용의 존재감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중원 지역에서 영향력을 보이지 못했던 남태희가 볼을 오래 소유하고, 전개할 수 있었다. 문제는 새로운 구성에 새로운 전술 아래 측면과 전방, 중앙을 오가는 연계 플레이가 매끄럽지 못했던 것이다.

기성용이 배후로 빠지면서 중앙 지역에서 다양한 선수들이 볼을 만질 수 있었지만 활기있게 공이 돌지 못했다. 더불어 이라크가 오버래핑을 제한한 포백 앞에 세 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배치하면서 거의 공간을 주지 않았다. 측면 공격수를 향한 롱패스, 손흥민의 개인 돌파에 이은 슈팅 외에 전반전에는 인상적인 공격 장면을 만들지 못했다.

이라크가 압둘 자흐라를 원톱으로 배치하면서 한국의 스리백 수비는 인원 낭비가 되기도 했다. 기성용이 종종 공격 지역까지 치고 올라가거나, 홍정호나 장현수가 빌드업 과정에 전진하기도 했으나 결국 중앙 지역의 수적 열세와 패스 코스 확보에 실패했다.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 중원 플레이가 가장 미진했던 전반전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카타르 원정에 정통파 공격수를 한 명도 소집 하지 않았다. 전반전에 지동원을 원톱 자리에 뒀으나 실질적으로 제로톱에 가까운 전술을 운영했다. 이는 기성용을 후진 배치하며 생길 중원의 수적 열세에 대비하기 위한 의도로 보였으나 먹혀들지 않았다. 지동원과 이청용은 미드필더처럼 기능할 수 있지만, 남태희와 연계 플레이는 기대만큼 잘 이뤄지지 않았다.

#제로톱의 결과는 유효 슈팅 제로

후반전 시작과 함께 손흥민과 이청용이 빠지고 황희찬과 이근호가 투입됐다. 남태희 대신 이명주도 들어왔다. 황희찬이 원톱으로 올라가고 지동원이 측면으로 내려왔다. 황희찬과 이근호가 힘있는 플레이를 펼치면서 공격 템포가 살아났다. 세 명의 공격수로 전방 지역에서 더 활발하게 자리를 바꿔가며 논스톱 패스 플레이로 슈팅 기회를 모색했다. 연결 과정에 좋은 패턴이 몇 차례 나왔으나 마침표로 매듭을 짓는 과정은 세밀하지 못했다.

무더운 날씨과 부상을 피해야 하는 친선전이라는 점에서 100%를 쏟은 경기는 아니었으나 조직력이 미흡해 생긴 미스 플레이도 있었다. 대대적 교체 이후 기성용이 중원으로 올라오고 한국영이 두 센터백 사이 공간을 커버하며 문전 위험 지역에 많은 숫자를 두는 경향은 유지됐다. 슈틸리케 감독은 카타르전에 스리백 수비를 가동해 배후 안정감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후반 18분에 지동원 대신 이재성, 후반 30분에 기성용 대신 황일수가 투입되면서 여섯 장의 교체 카드를 모두 사용했다. 두 선수 모두 각자 장점인 움직임과 스피드를 통해 한두번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었으나 완성된 팀 플레이는 나오지 않았다. 스리백 전술에서 중요한 좌우 윙백은 후반전에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오히려 젊은 선수를 연이어 투입한 이라크가 역습 과정에서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었다.

결국 한국은 90분간 단 하나의 유효슈팅도 기록하지 못한 채 제로톱의 무딘 창끝, 스리백으로 인한 중원 실종의 단점을 확인했다. 새로운 시도였고, 점검의 의미가 큰 친선경기였다는 점을 감안해도 기대에 못 미친 경기력이었다.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친 것을 위안 삼기에는 위기 상황도 적지 않았다. 이라크전 0-0 무승부는 카타르전 결과에 기대감을 높이기 충분한 경기는 아니었다. 카타르전은 이와 전혀 다른 밀도의 경기력이 요구된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그래픽=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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