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류청 기자= 성적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메시지이기도 하다.

 

‘2017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16강에 한국 팀 가운데 제주유나이티드만 올라갔다. ACL이 현행 32개국 체제로 거듭난 이후 거둔 성적 중 최악이다. 동아시아만 따지면 중국 슈퍼리그(CSL)와 일본 J리그 팀이 각각 세 팀 16강에 올랐고, 태국 프리미어리그 팀도 한 팀 16강에 올랐다.

 

한 시즌 부진했다고 위험하다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이번 부진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K리그에 들어온 빨간불이다. 많은 K리그 구성원들이 별다른 의심 없이 말하고 믿었던 몇 가지 명제가 착각에 가까웠다는 신호가 오고 있다. 지금까지는 당장 성적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구조적인 취약점과 구성원 부실이 드러나고 있다.

 

#착각① 한국 선수 수준은 최고다

“그래도 선수는 한국, K리그가 최고다”라는 이야기는 우리가 자주 하는 자랑이다. 자본력이 강한 CSL과 시스템이 좋은 J리그를 아시아 무대에서 누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선수였다. 예전엔 그랬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아니다. 한국 선수는 여전히 좋은 기량을 가지고 있으나 압도적으로 다른 리그를 누를 정도는 아니다.

 

아시아 각국에서 뛰는 선수들은 “아시아 수준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라고 이야기해왔지만, 우리는 외면했다. 감독과 선수 그리고 팬 모두 마찬가지다. 가장 좋은 예로 태국프리미어리그 우승팀인 무앙통유나이티드가 있다. 태국은 2010년 이후 꾸준히 자국 선수 수준을 끌어올렸고, 무앙통이 이번 시즌 조 2위로 16강에 올랐다. 무앙통은 울산현대와 브리즈번로어를 눌렀다.

무앙통을 이끄는 감독은 태국 국가대표 출신이다. 세계적인 명장이 아니다. 선수 수준이 올라갔고, 그 선수를 잘 아는 감독이 팀을 이끌면서 팀 전력이 올라갔다. 무앙통 경기를 본 한 K리그 관계자는 “태국 선수들이 생각 보다 잘한다”라고 인정했다. CSL도 마찬가지다. 특급외인만 잘한 게 아니라 중국 선수 실력도 올라갔다.

 

감독 수준도 마찬가지다. CSL을 지도하는 세계적인 지도자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아쉬운 점이 많다. J리그와 태국프리미어리그 그리고 호주A리그를 지도하는 감독들은 K리그 감독 성향을 거의 다 파악하고 있다. K리그에 한 번은 져도 두 번은 패하지 않는 이유다. K리그와 CSL을 모두 경한 한 지도자는 “ACL은 감독이 얼마나 상대를 파악했느냐가 정말 중요한 무대”라고 했다.

 

#착각② 투자하지 않아서 졌다

투자는 K리그 관계자와 팬 사이에서 가장 큰 화두다. ACL에서 좋지 않은 성적이 나올 때마다 도돌이표 돌듯이 투자 이야기가 나왔다. 일리가 아예 없는 말은 아니다. 결정력 있는 선수를 보유한 팀은 위기를 빠져나올 가능성이 크다. CSL 약진은 이로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J리그 강세와 태국 리그 부상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16강에 오른 J리그 3개팀은 모두 조 1위를 했다. CSL을 모두 제쳤다. 이게 최종성적을 담보하지는 않지만 좀 더 좋은 전력과 전략을 지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는 있다. J리그 가시마앤틀러스와 우라와레즈 그리고 가와사키프론탈레는 거물급 외국인 선수를 보유하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던 국내 선수 수준과 감독 능력으로 여기까지 왔다.

 

다들 J리그가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하지만, 구성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울산을 원정에서 누른 이시이 마사타다 가시마앤틀러스 감독은 “J리그가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시이 감독은 상대를 존중하며 긴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맥락을 보면 다른 리그 팀들이 부진 하다는 이야기로 연결해도 무리는 아니다.

#상대가 이긴 게 아니라 스스로 무너졌다

한국, K리그는 아시아 최고라 자부하며 구조적인 문제점을 외면해왔다. K리그 투자가 줄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누적 투자금으로 따져보면 CSL을 제외하곤 아시아 최고수준이다. 물가가 더 높은 J리그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렇게 얻어온 성적을 K리그가 건강하고 K리그 감독과 선수 수준이 높다고 해석하며 안도해왔다.

 

척박한 토양에서도 박지성과 김연아 그리고 박찬호 같은 천재가 나올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이 등장한 걸 ‘우리 토양도 척박하지 않다는 증거’라고 말할 수는 없다. K리그와 K리그 구단은 지금까지 거둔 성적을 구조도 괜찮다는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왔다. 그러다 위기를 맞으면 투자가 없다는 이유를 댔다. K리그에 돈을 쓰는 게 과연 투자인지 따져보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K리그에 좋은 외국인 선수만 있으면 잘할 것이라는 주장도 부실하다. 

 

적지 않은 사람이 몇 번이나 경보음을 울렸으나 구성원들은 이 달콤한 착각 속에서 살았다. K리그 구단들은 이름값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감독과 코칭스태프를 선임했고, K리그 감독 수준은 아시아에서도 크게 인상적이지 못하게 됐다. 선수들도 위기의식을 공유하지 못한 채 스스로 만족에 빠져 날카로움을 잃었다. 연맹은 구조적인 문제 해법이 성적과 규모에 있다고 소리쳐왔다.

 

아직은 적색경보 수준이다. K리그는 ACL 아픔을 딛고 모든 면에서 다시 뛰어야 한다. 구조적인 문제를 연맹, 구단, 감독, 선수가 인정하고 개선하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 다시 빨간불이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근근이 아시아 무대에서 성적을 내온 K리그는 왜 팬들은 잃고 있을까? 내부 문제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면 오답이 나온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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