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서귀포] 김정용 기자= 멋진 패스와 폭발적인 질주가 제주유나이티드의 승리로 이어졌다. 제주가 창단 후 처음으로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16강에 올랐다.

9일 제주도 서귀포에 위치한 제주 월드컵경기장에서 2017 ACL H조 최종 6차전에서 2-0으로 승리하고 조 2위를 지키며 16강에 진출했다. 전반 29분 정운, 후반 21분 황일수가 득점했다. 제주는 조별리그 4차전까지 불안한 상태였으나 막판 2연승을 거두고 3승 1무 2패로 조 2위를 기록했다.

제주의 16강 진출은 전신 부천SK 시절을 통틀어 처음이다. ACL이 출범한 2002년 이후 본선에 진출한 건 2011년이 유일했다. 2010년 K리그 준우승 돌풍을 바탕으로 ACL에 도전했던 제주는 당시 조 3위에 그쳐 탈락했다. 이때 제주에 2패를 안기고 조 1위를 차지한 팀이 감바였다. 돌아온 ACL에서 제주는 6년 전 원한을 2승으로 깔끔하게 갚는데 성공했다.

 

창의적인 패스로 한 골, 폭발적인 역습으로 한 골 더

제주의 더블 스쿼드는 선발 라인업에서부터 저력을 보였다. 제주 라인업은 3일 전 상주상무를 4-1로 꺾은 경기와 8명이 달라져 있었다. 반면 6일 전 전북현대를 4-0으로 잡은 경기와는 두 명만 달랐다. 주중 경기에 완전한 1진, 주말 경기에 1.5진을 가동하며 이번 경기를 준비한 조성환 감독의 운영을 통해 제주는 최대한 좋은 컨디션으로 감바를 상대할 수 있었다.

경기 초반 감바는 승리할 기회를 두 번 놓쳤다. 전반 4분 김호준이 섣불리 골문을 비우고 나갔을 때 혼전 끝에 공이 골라인을 통과할 뻔했다. 골키퍼 없는 골문에서 공을 걷어낸 건 수비수 백동규의 머리였다. 전반 14분에는 코너킥 상황에서 김호준이 한 번 선방한 공을 구라타 슌이 밀어넣었지만, 아슬아슬하게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다.

제주의 선제골은 약간의 행운이 따랐지만, 기본적으로 제주 선수들이 만든 작품이었다. 전반 29분 오른쪽 측면에서 공을 잡은 마르셀로가 주위 선수들에게 쉬운 패스를 하지 않고 머뭇거리더니 완전히 반대쪽에서 대각선으로 침투하는 윙백 정운에게 패스를 감아 찼다. 정운의 트래핑이 약간 부정확했지만 오히려 상대 수비를 속이는 효과가 났고, 오른발로 찬 공이 굴절돼 묘하게 골문 구석으로 향했다.

유리한 상황을 잡은 제주는 좀 더 안정적으로 수비하며 역습으로 실리를 노리기 시작했다. 감바가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브라질 공격수 아데미우손을 교체 투입하며 공격을 강화하려 했지만 여전히 주도권을 확보하진 못했다. 아데미우솬과 이창민이 결정적인 슈팅을 교환하며 공방전을 벌였다. 최전방으로 이동한 마르셀로는 감바 수비수들과 골키퍼를 계속 압박하며 실수를 유발하려 애썼다.

제주의 두 번째 골은 완벽한 속공이었다. 후반 21분 대각선으로 경기장을 가로지른 권순형의 롱 패스가 오차 없이 황일수 앞에 떨어졌다. 넘치는 자신감으로 속도를 붙여 전진한 황일수는 수비수 한 명을 바디 페인팅으로 제치고 특유의 오른발 강슛을 날렸고, 공이 골문 구석으로 빨려 들어가자마자 조 감독이 펄쩍 뛰어올랐다.

제주의 승리는 감바가 여러 차례 득점 기회를 놓쳐 준 덕분이기도 했다. 감바는 후반에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며 좌우 측면을 꾸준히 두들겼다. 특히 후반 30분 코너킥 상황에서 구라타 슌이 골대 약 2m 앞에서 날린 슛이 빗나간 건 일부러 못 넣으려고 해도 힘들 정도로 괴상한 실축이었다. 2분 뒤 제주 수비가 제대로 걷어내지 못한 공을 오재석이 골대 구석으로 밀어 넣으려 했으나 몸을 날린 정운이 등으로 막아냈다.

 

몸을 날려가며 수비 하는 이유

제주는 최전방에 있는 선수들이 악착같이 전방 압박을 하고, 수비수들은 골라인에서 몸을 날려 슛을 막아냈다. 인상적인 골 장면 뒤에서 차이를 가른 건 헌신적인 플레이였다. 정운은 경기 후 슛 블로킹에 대한 질문을 받자 “훈련 때 감독님부터 몸 던지는 모습을 많이 보이신다. 내가 아니라도 누구든 몸을 던졌을 거다. 그런 마음이 모였기 때문에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옆에 앉은 조성환 감독이 웃어 보였다.

하세가와 겐타 감독은 제주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굉장히 멋진 팀이다. 포지션 등 모든 것이 우월하다고 생각한다”라는 짧은 칭찬을 남겼다. 제주는 16강에 유일하게 진출한 한국 구단이다. 이날 울리 슈틸리케 대표팀 감독이 경기장을 찾아 제주 선수들과 감바 소속 오재석의 플레이를 지켜봤다.

조 감독은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가며 "정운이 거짓말을 하나 했다. 나 때문에 몸을 던진 것이 아니라 슈틸리케 감독이 온 걸 선수들이 알고 있었나보다"라며 웃었다. 조 감독은 제자들을 추켜세워주며 퇴장할 만한 여유를 회복했고, 한결 여유 있는 자세로 토너먼트 도전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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