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수원] 한준 기자= 홈팀이 지고나면, 경기 종료 후 선수들이 빠져나가는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은 조용하다. 수원삼성이 ‘KEB하나은행 K리그클래식 2017’ 10라운드 울산현대전에 패한 6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도 그랬다. 

수원 경기가 끝난 뒤 빠지지 않고 질문을 받는 선수는 주장 염기훈인데, 이날 ‘풋볼리스트’가 만난 선수는 수비수 민상기(26)였다. ‘풋볼리스트’는 민상기가 프로 선수로 데뷔한 이후 처음으로 와이드 인터뷰를 진행한 매체다. 

울산전은 민상기가 군 입대 전 수원 유니폼을 입고 빅버드에 나선 올 시즌 마지막 경기였다. 이날 수원 매치데이 프로그램의 표지를 장식한 선수도 민상기였다. 믹스트존에서 만난 민상기는 “오늘 경기에서 이겼으면 라커룸에서 웃으면서 기분 좋게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움이 있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고 했다. 

울산에 1-2 패배를 당한 수원 라커룸은 민상기의 이별식을 위한 시간을 갖기 어려웠다. 수원은 당장 9일로 예정된 광저우헝다와 AFC챔피언스리그 G조 6차전 원정 경기를 위해 7일 오전 비행기를 타야하는 빠듯한 일정을 앞두고 있기도 했다. 

여러모로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믹스트존에서 민상기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민상기는 창단 20주년을 지난 수원의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는 선수이며, 앞으로 수원의 정신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선수다. 

#수원 유스 1호, 직접 키운 곽희주의 후계자

2010년에 만 19세의 나이로 프로가 된 민상기는 ‘레알 수원’ 시대의 종식과 함께 유스 중심 정책의 출발점이 되는 선수다. 민상기는 수원 유스팀 매탄고에서 프로 1군에 진입한 첫 번째 선수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수원 관계자들은 민상기를 두고 “매탄의 왕이자 시조”라고 부른다. 민상기는 곽희주의 곁에서 장점을 흡수하고 성장한 자체육성 후계자다.

2011 FIFA U-20 월드컵에 참가하며 기대를 모은 민상기는 2011시즌에 K리그 데뷔전을 치렀고, 2012시즌 5경기에 나섰다. 서정원 감독이 부임한 2013시즌에 주전 자리를 꿰차며 인상적인 시즌을 보냈다. 민상기는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 선발될 유력한 선수로 주목 받았으나, 동계 훈련 기간 찾아온 부상으로 인해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2014년의 불운은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다. 2014시즌 리그 20경기 출전에 그쳤고, 2015시즌에도 크고 작은 부상이 이어져 7경기에 나선 것이 고작이었다. 2016시즌(8경기)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민상기의 표정은 내내 어두웠다. 2017시즌은 그래서 더 아쉽다. 10라운드까지 7경기를 뛰며 4년 여 만에 수원 수비의 중심 선수로 돌아왔다. 

“예전에는 아쉬움이 많았는데,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부상을 당한 시기, 어려운 시간을 겪다보니, 모든 게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구나. 사람의 힘만으로 되는 게 아니구나. 그래서 흘러가는대로, 그에 맞게 최선을 다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경기를 뛰다가 가게 됐다. 팀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군대에) 가게 되어서 아쉬움 없이, 미련 없이 가게 된 거 같다.”

올 시즌에도 이어진 수원의 무력한 무승부 행진은 홈팬들이 선수단에 야유를 쏟아내고, 감독 퇴진 구호를 외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이 과정에서 베테랑 수비수 이정수가 갑작스런 은퇴 선언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민상기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민상기는 그 기회를 꽉 움켜줬다.

수원은 이정수가 팀을 떠난 직후 강원FC와 4월 22일 리그 7라운드 경기에서 리그 첫승을 거뒀고, 이후 제주유나이티드, 포항스틸러스 등 리그 선두권을 달리던 팀을 연파했다. 울산전에 연승이 멈췄지만, 전반전에 역습으로 두 골을 내준 이후 후반전을 지배하며 따라 붙은 집념에 홈팬들은 박수를 보냈다. 

“아무래도 정수형 사건 터지면서 팀이 더 끈끈해진 계기가 획실히 된 것 같다. 그 일을 통해서 이 상황을 극복해보자는 응집력이 생겼다. 그 타이밍에 내가 운 좋게 동료들과 경기를 할 수있었다. 이 과정에서 끈끈해졌다. 지금은 경기를 하면 질 것 같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민상기는 “전반전을 마치고 감독님도 괜찮다고,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우리도 공격적인 부분을 많이 생각하고 나갔고, 주도권도 잡았다. 골이 일찍 들어갔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었다. 그러지 못해 아쉽다”며 울산전 승리로 입대 전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말했다. 하지만 더 어려운 시간도 많이 겪은 민상기는 울산전 패배의 미련이나 여운을 길게 끌고 가지 않았다. 

“최근에 팀이 상승세였고, 그 상승세에 내가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항상 마무리가 중요하다.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는데 아쉽게 돼서 스태프 동료 팬들에게 죄송하다. 열심히 했는데 뜻대로 안 됐다. 아쉽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

#존재감 되찾고 입대, 2년 뒤가 더 기대되는 프랜차이즈 스타

민상기 데뷔 이후 구자룡, 이종성, 권창훈 등의 유스 출신 선수들이 꾸준히 수원 1군에 진입하며 자리를 잡았다. 권창훈은 수원 유스가 배출한 첫 A대표팀 선수이자, 유럽 진출 선수가 되기도 했다. 정점에 오른 것은 권창훈이지만, 그 시초이자, 제대 이후에도 수원의 뼈대와 기둥을 이룰 민상기의 존재감은 그 못지않다.

“아무래도 매탄 선수들끼리는 말을 하지 않아도, 그런 유대감이 생성되어 있다. 정도 더 가는 면이 있고, 후배들도 선배들에게 의지를 하는 부분이 있다. 유스 체계가 잘 잡힌 것 같아서 좋다.” 

홈팬들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던 순간, 민상기는 눈시울을 붉혔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막상 인사하니 울컥한 마음 들었다. 고교때부터 지금까지 수원에 근 10년간 있었다. 한번도 다른 팀에서 축구를 해본 적이 없고, 생각 해본 적도 없다.” 민상기는 프로 인생에 큰 전기가 될 아산무궁화FC 임대에 대해 “설렘 반 두려움 반”이라고 했다. “떨어져있어도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수원 유스가 배출한 첫 프로 선수지만, 민상기는 프로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이었던 2013년 이후 겉돌았다. 2017시즌에 제자리를 찾고 떠날 수 있게 된 것은 떠나는 그의 마음을 홀가분하게, 자신감을 갖고 갈 수 있게 해줬다.

“부상이 제일 컸던 것 같다. 그래서 팀에 보탬이 되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나도 팀에 소속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구단과 코칭 스태프, 동료들, 서포터들에게 죄송하 마음이 있었다. 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돼서 다행이다. 다녀 와서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잘 추스르고 오도록 하겠다.” 

민상기는 4주 간의 군사훈련, 3주간의 경찰 훈련을 받은 뒤 아산무궁화FC에 합류한다. 두 달여 이후에나 그라운드에 나설 수 있다. 정상 경기력을 내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수원에서 무궁화 축구단으로 간 김은선과 조성진 모두 컨디션을 찾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요즘 잠이 안와서 연락을 해봤는데 겁을 주더라. 많이 힘들테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오라고. 그래도 잘 챙겨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잠시 수원과 이별하는 민상기는 당부와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광저우 원정까지 함께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송한 마음이 있다. 진심으로 응원할 것이다. 광저우를 꼭 잡아서 16강에 진출했으면 좋겠다. 16강에 오른다면 엄청난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사진=풋볼리스트,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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