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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의 역사] 시대를 앞섰던 스트라이커, 최순호
김동환 기자 | 승인 2017.05.12 19:43

[풋볼리스트] 선수는 성장하고 진화한다. 한결 같은 패턴으로 경기하는 이도 있지만, 주어진 상황이나 포지션에 따라 경기 방식을 바꾸는 이도 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프란체스코 토티, 필립 람, 스티븐 제라드, 박지성 같은 선수들이 대표적이다. '풋볼리스트'는 진화하고 변화한 선수 이야기를 모았다.

젊은 축구 팬들도 최순호라는 이름은 안다. 국가대표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거쳐 현 포항스틸러스 감독이 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현역 선수 시절 보다 축구 감독 혹은 행정가가 더욱 친숙할 가능성이 크다. 선수 이후의 경력을 정리하자면, 포항제철(현 포항스틸러스)의 코치를 거쳐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 포항스틸러스 2군감독과 감독, 현대미포조선 감독, 강원 FC의 감독을 거쳐 FC서울의 미래기획단장으로 재직했다. 2013년에는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으로 행정가 경력의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지난 해 9월 다시 포항의 지휘봉을 잡았다. 

감독으로 더욱 친숙하지만 최순호의 현역 시절은 은퇴 후 걸어온 길보다 더욱 빛났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하는 간판 스트라이커로, 이회택-차범근-최순호-김주성-황선홍을 거쳐 현재의 손흥민까지 이어지는 공격수 계보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면, 최순호는 올 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리는 유벤투스가 탐냈던 아시아 최고의 재능이었다. 

1기 : 다양한 포지션을 경함하고 ‘붙박이 스트라이커’로 나서다
최순호는 스트라이커다. 186cm의 키는 당시로는 보기 드문 우월한 피지컬이었다. 큰 당시 한국 축구는 암흑기였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최종예선에서도 탈락했다. 한국 축구의 암흑기가 도래할 무렵이었다. 청주상고 재학 중이던 최순호는 1979년 일본에서 개최된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U20 대표팀에 발탁됐다. 당시 한국은 1승 1무 1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당시 최순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주목을 받았다. 이유는 최대 장점인 제공권 뿐만이 아니었다. 스피드, 테크닉 등 모든 것이 우월했다. 여기에 섬세한 드리블과 정확한 슈팅, 넓은 시야는 덤이었다. 

사실 최순호가 처음부터 장신의 스트라이커로 각광을 받은 것은 아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2선 공격수로 주로 활약했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했다. 골키퍼를 제외한 미드필더, 중앙 수비, 풀백까지 모두 소화했다. 중학교 2학년부터는 주로 중원을 지키며 패스 능력과 시야를 키웠다. 이는 훗날 ‘올 라운드 플레이어’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본격적으로 스트라이커로 성장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이다. 그 사이 최순호에게는 큰 변화가 있었다. 포지션이 아닌 심적 변화다. “중학교 졸업 시점 까지는 ‘축구선수’라는 꿈만을 가지고 앞만 보며 달렸지만, 명확한 목표가 없었다”는 것이 최 감독의 말이다. 당시 창단된 포항제철에 입단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동일 연령대 선수들은 대학 진학이 목표였지만 최순호의 뚜렷한 목표는 꿈을 가깝게 가져왔다. 고등학교 3학년에 포철 입사를 확정했다. 청주상고에서 축구부 경기를 소화하고, 청소년 대표로 발탁되고 또 포철에서도 경기를 소화했다., 

학창 시절 최순호는 붙박이 공격수에 가까웠다. 스스로 “나는 득점을 하는 선수다”라고 생각했다. 득점을 잘 할 수 있는 선수는 많은 활동량을 보여주는 것 보다 적절한 위치에서 결정력을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고 주효했다. 지도자가 된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최순호는 선수가 탁월한 능력이 있다면, 집중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1990년 월드컵 당시

2기 : 요한 크루이프의 영상을 보다
최순호는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됐다. 1980년 한국은 당시 차범근이 활약하던 프랑크푸르트와 친선경기를 가졌다. 당시 팀을 이끌던 김정남 감독은 김진국, 이영무, 박성화 등 당시의 터줏대감들 대신 신예들을 발탁했다. 최순호가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압도적인 피지컬이 한 몫을 했다. 같은 해 7월 국가대표팀은 포르투갈의 보아비스타와 친선경기를 세 차례 친선 경기를 가졌고, 최순호는 출전 기회를 잡았다. 세 경기에서 모두 득점포를 가동하며 주목을 받았다. 다음 달인 8월에는 대통령배국제축구대회에서 말레이시아와 경기를 가지며 A매치 데뷔전을 가졌다. 같은 해 개최된 AFC아시안컵에서는 7골을 득점하며 이란의 베타시 파리바와 함께 공동 득점왕을 차지했다. 

1979년 최순호를 원하는 실업팀은 많았다. 청소년월드컵 활약 덕분이다. 한국전력이 먼저 최순호를 차지했지만, 이후 무산되고 원하던 포철에서 활약했다. 포철 역시 최순호 영입에 많은 공을 들였다. 1981년 3월 15일부터 27일까지 개최된 실업축구연맹 1차 리그에서 최순호는 원맨쇼를 이었다. 첫 등장부터 대단했다. 후반 20분 첫 골, 후반 35분 중앙에서 이어지는 단독드리블로 득점을 성공시키며 15분 사이에 두 골을 몰아넣는 기염을 토했다. 포항은 최순호와 함께 시작한 실업연맹전에서 1975년 이후 6년만에 정상을 탈환할 수 있었다. 같은 해 호주에서 펼쳐진 청소년월드컵에 태극마크를 달고 나갔다. 이탈리아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2골 2도움을 펼치며 팀의 4-1 대승을 이끌었다. 당시 청소년대표팀은 이후 루마니아와 브라질에게 패하며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최순호는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각인시켰다. 동료 선수들은 물론 상대하는 팀의 선수들에게도 다른 차원의 축구를 보여줬다는 것이 당시의 평가다.

많은 선수들이 청소년 대표팀 연령에서 국가대표팀 연령으로 성장을 하는 사이 좌절을 한다. 하지만 최순호는 적절한 지도자를 만났다. 포철과 청소년대표팀에서 그를 지도한 한홍기 감독은 최순호를 올 라운드 플레이어로 성장시키기를 원했다. 어렵게 구한 요한 크루이프의 활약 영상을 보여줬다. 득점 능력은 이미 검증을 받았고, 어린 시절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며 경기에 대한 이해도도 높았던 만큼, 창조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최순호에게 자율성을 부여하고 활동의 폭을 넓혔다. 

3기 : 시대를 '너무' 앞섰던 최순호
1983년 프로축구 출범과 함께 다시 포항에 입단한 최순호는 꾸준한 활약 끝에 '1986 멕시코월드컵'에 출전했다. 아시아지역 예선 8경기에서 대표팀은 8경기 17골을 기록했는데, 절반 이상이 모두 최순호의 발끝에서 만들어졌다. 당시 최순호는 1골 8도움을 기록했다. 특히 32년만에 월드컵 본선을 확정한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최순호의 맹활약이 빛났다. 스트라이커의 능력도 뛰어났지만 공격형 미드필더로 동료들을 돕는 탁월한 패스 능력을 선보였다. 당시 대회 본선에서는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허정무와 함께 득점포를 가동했다. 최순호는 이탈리아전 당시 수비수 두 명을 재치고 강력한 오른발 터닝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BBC’는 이 장면을 ‘월드컵 10대 골’로 선정하기도 했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전세계 언론은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 팀”이라고 평가했고, 오래도록 회자됐다. 

사실 성인 무대에서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진화한 최순호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당시로는 현대 축구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한 편이었지만, 다른 지도자를 만나며 부딪히기도 했다. 최순호에게 다시 최전방 붙박이 스트라이커 역할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미 진화를 거친 최순호에게 변화는 쉽지 않았다. 그나마 국내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되었던 대표팀에서는 변화가 수월했었고, 본인도 각별한 노력을 했다. 월드컵에서 빛을 볼 수 있었던 이유다. 그 결과로 1986년 멕시코월드컵 이후 해외팀의 관심이 직접적으로 나타났다. 당시 유벤투스는 스카우트를 한국으로 보내고, 각종 국제대회에 보내 최순호의 플레이를 직접 확인했다. 하지만 소속팀의 반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후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최순호의 존재감은 여전했다. 

최순호는 포철과 럭키금성을 거치고, 1991년 포항에서 다시 활약하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기까지 100경기에 출전해 23득점 19도움을 기록했다. 1983년 포철 입단 후 다섯 시즌 동안 56경기에 출전해 21득점 13도움을 기록했다. 당시 최순호는 1986년 팀의 우승을 견인했다. 1988년에는 럭키금성에서 생활했다. 세 시즌 동안 28경기에 출전해 2득점 5도움을 기록하며 1990년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1991년에는 포철로 복귀해 16경기에서 1도움을 기록했다. 선수 시절 최순호가 경험한 것들은 국내 현재 포항의 지휘봉을 잡고 팀을 이끄는데 소중한 자양분이 되고 있다. 최 감독은 “선수들의 독창적인 능력을 파악하고, 장점을 뽐낼 수 있도록, 창조적인 모습을 키워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지금 이끄는 포항 뿐만 아니라 한국을 이끌어 갈 선수로 성장할 재목을 많이 길러내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글=김동환 기자

사진= 포항스틸러스 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김동환 기자  maes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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