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제주유나이티드는 'KEB 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1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유일한 16강 진출, FA컵에서 첫 경기 승리를 거뒀다. 세 개 대회 우승을 모두 노리겠다는 시즌 전 선언이 아직까진 유효하다. 4월 한때 연패를 당하며 위기에 빠졌던 제주는 1차 위기를 극복하고 현재 K리그에서 가장 강한 팀이 됐다. 제주는 왜 위기를 자초했고, 어떻게 빠져나갔는가. [현장르포K]는 제주를 집중 취재하며 생긴 의문과 그 해답으로 시작한다.

 

첫 위기 : ACL 탈락 위험에 빠진 이유

조성환 제주유나이티드 감독은 조금 이상해 보이는 선택을 했다. 애들레이드유나이티드와 1-1 상태였던 지난 4월 11일 경기 하프타임이었다. 점수는 같지만 제주가 더 우세한 경기를 하고 있었는데, 조 감독은 득점자 마그노를 빼고 다른 공격수 진성욱을 투입했다.

진성욱은 그때까지 득점은커녕 출장 시간을 다 더해도 72분에 불과한 선수였다. 나중에 이유를 묻자, 조 감독은 “마그노가 골은 넣었지만 그렇게 잘 한 것도 아니었고, 성욱이에게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주고 싶었기 때문에”라고 대답했다. 전술적인 교체가 아니었다. 조 감독은 이번 시즌 자신이 영입한 진성욱에게 더 많은 출장 시간을 주고 싶어 했다.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걸 감안하면 무리한 선택이었다.

진성욱의 투입은 패배 요인 중 하나가 됐다. 제주는 후반에 두 골을 내줬다. 전력상 한 수 아래라고 생각한 애들레이드가 힘든 비행으로 인한 컨디션 난조까지 겪고 있었는데도 막판으로 갈수록 힘이 빠진 쪽은 오히려 제주였다. 진성욱은 투입된 지 9분 만에 빈 골대에 슛을 날렸지만 넣지 못했다. 이 순간 제주의 경기가 본격적으로 꼬이기 시작했다. 제주는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H조에서 3위로 밀리며 16강 진출이 힘들어졌다.

 

두 번째 위기 : 조성환은 왜 권용현을 선발로 내보내야 했나

5일 뒤 제주는 K리그 클래식에서도 또 졌다. 시즌 첫 연패, 올해 리그 첫 패배였다. 심지어 또 홈 경기였다. 강원FC를 상대로 조 감독은 공격수 권용현을 선발로 내보냈다. 마르셀로, 멘디, 마그노, 진성욱 등 공격진에 더블 스쿼드가 있는데도 굳이 깜짝 선발 카드를 썼다. 경기 내내 부진했던 권용현은 경기를 “절었다”고 표현했다. 결과는 1-2 패배였다.

조 감독은 무리한 로테이션 시스템으로 위기를 자초하는 것처럼 보였다. 왜 권용현을 써야 했을까. 그는 두 패배 사이에 ‘육지’로 출장을 다녀왔다. 12일엔 다가오는 FA컵 상대 김해시청의 경기를 직접 분석했고, 13일 부산에서 열린 R리그(2군 리그) 경기를 관전했다. 일주일에 두 경기씩 지휘하느라 숨가쁜 감독이 몸소 움직일만한 스케줄은 아니었다. 그러나 조 감독은 굳이 R리그를 찾았고, 그중 권용현을 1군 선발로 올렸다.

권용현은 R리그 경기에서 골을 넣지 못했다. 그러나 조 감독은 일단 2군을 찾아간 이상 ‘너희들도 열심히 하면 1군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했다. 주전과 후보 사이의 괴리감을 없애기 위한 조치였다. 선수단 단합이 강원전 승률을 극대화하는 것보다 더 중요했다. 그 대가가 패배였다.

두 번의 패배 직후 조 감독은 “성욱이를 쓰고 용현이를 쓴 게 약간은 패배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죠.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 선수단 전체에 더 좋은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로테이션 시스템에 의한 체력 안배를 말하는 거냐고 다시 물었다. “그보다는 선수단 전체에 미치는 메시지가 더 중요하죠.” 제주에 ‘철밥통’은 없다는 것, 노력하면 누구든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 그의 끊임없는 과제였다.

극복의 전조 : 공백을 대체하기 위한 노력

앞선 두 경기 무승부를 포함하면 2무 2패로 부진에 빠진 상황에서, 제주는 반등할 동력이 필요했다. 조 감독은 더 철저하게 기회를 나눠주는 선수단 운영을 택했다. 이때 좌우 윙백인 정운과 박진포가 모두 부상으로 이탈해 있었다. 4월 25일 열리는 장쑤쑤닝 원정 경기까지 복귀하지 못할 예정이었다. 최선의 대안을 찾아야 했다. 한쪽 측면은 작년 영플레이어상 수상자 안현범이 맡으면 되지만 여전히 윙백 한 명이 부족했다.

조 감독의 신뢰를 받아 온 김상원이 첫 번째 후보였지만 조 감독은 김상원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기보다 다양한 선수를 시험하기로 했다. 4월 19일 김해시청을 상대로 원래 윙어인 황일수가 오른쪽 윙백을 소화할 수 있는지 시험 받았다. 3일 뒤 대구FC를 상대할 때는 제주에서 데뷔해 프로 3년차가 된 배재우가 선발로 뛰었다. 제주는 김해시청을 1-0으로, 대구를 4-2로 꺾었다. 세 명이 경합한 끝에 배재우가 장쑤전 선발 멤버로 낙점됐다.

대구를 상대로 넣은 4골은 제주 공격 조합 역시 끝없는 실험을 통해 답을 찾았다는 신호였다. 조 감독은 지난 시즌 주로 최전방에서 뛴 마르셀로를 섀도 스트라이커로 후방 배치하는 실험과 함께 새 공격수 멘디, 마그노의 조합을 계속 궁리하고 있었다. 대구를 상대로 선발로 뛴 멘디가 2골, 마르셀로가 1골 1도움을 올렸고 교체 투입된 마그노가 1골을 보탰다. 세 공격수가 제주의 공격 템포를 이해하며 각자 경기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극복의 시작 : 진성욱, 장쑤에서 믿음에 보답하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가 하필 장쑤 원정이었다. 장쑤는 H조에서 4전 전승으로 이미 조 1위를 확정한 팀이었다. 외교 분쟁으로 인한 항공편 축소로 제주-난징 직항편이 없어지며 여독이 심해졌다. 제주 선수들은 대부분 ACL이 처음이다. 처음 느껴보는 피로, 처음 느껴보는 상대 홈 서포터의 일방적인 함성, 처음 느껴보는 텃세와 동시에 싸워야 했다.

이날부터 조 감독이 선수들에게 보낸 신뢰가 좋은 결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애들레이드전에서 부진했던 진성욱은 장쑤전에서 선발 투입되며 다시 한 번 조 감독의 신뢰를 받았다. 전반 27분 알렉스 테세이라와 하미레스의 콤비 플레이에 선제골을 내줬지만, 7분 뒤 진성욱의 저돌적인 플레이가 동점골을 만들었다. 진성욱이 재빠른 드리블에 이어 교차 침투하던 마그노에게 스루 패스를 밀어줬다. 마그노의 동점골이 터졌다. 마침내 진성욱이 감독의 지지에 응답한 순간이었다.

이번 시즌 제주에서 가장 큰 폭으로 성장 중인 이창민이 후반전 초반 멋진 오른발 킥을 성공시키며 승부를 뒤집었고, 결국 제주가 승리했다. 어느덧 3연승이었다. 장쑤전에 이어진 4월 30일 수원삼성전에서 피로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했지만, 제주의 상승세는 꺾이지 않았다. 제주의 완성도는 확고한 주전이 없는 가운데서도 계속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극복 : 권용현도 믿음에 보답하고, 제주는 1위로 올라섰다

5월 3일, 전반기 K리그 최대 빅매치가 벌어졌다. 이날 제주는 K리그에 작지만 충격적인 기록을 만들어냈다. 전북이 0-4로 졌다. 최강희 감독이 부임한 뒤 12년 만에 처음 당하는 무득점 4점차 패배였다.

제주는 이미지만큼 스타일리시한 경기를 하지 않았다. 전북과 정면으로 힘싸움을 벌이며 조금씩 이득을 취했다. 황일수의 중거리슛을 홍정남 골키퍼가 제대로 쳐내지 못했을 때 마르셀로가 밀어넣었고, 마르셀로의 행운 섞인 ‘중거리 헤딩슛’까지 터진 뒤 재빠른 역습으로 계속 추가골을 넣었다. 제주는 K리그 절대강자 전북에 완승을 거두며 가장 깔끔한 방법으로 선두에 올랐다.

사흘 뒤 제주는 상주상무를 상대로 큰 폭의 로테이션 시스템을 시도했다. 권용현에게 이번 시즌 두 번째 기회가 왔다. 선발로 나온 권용현은 테베스라는 별명 그대로 저돌적이었다. 멘디, 문상윤으로 이어지는 삼각 패스를 통해 멋진 팀 플레이 득점을 성공시켰고, 이어 문전에서 몸싸움을 벌이며 한 골을 추가했다. 두 골을 몰아친 권용현의 활약을 마탕으로 제주는 4-1 승리를 거뒀다. 두 경기 연속 4득점이었다.

그리고 9일, 팀 운명이 걸린 감바오사카와의 ACL 조별리그 최종전이 찾아왔다. 이겨야 자력으로 16강에 오를 수 있었다. 상주전은 감바전으로 가는 완벽한 징검다리였다. 선발 라인업은 8명이나 달라져 있었고, 제주는 체력과 자신감 모두 최대한 충전한 상태에서 감바를 상대했다.

조 감독이 마르셀로를 후방에 배치하는 건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마르셀로는 골문을 보고 있을 때 실력이 나오는 선수죠.” 골대를 바라본 상태에서 공을 받으려면 1선이 아니라 2선에서 뛰어야 했다. 감바를 상대로 마르셀로의 장점이 완벽하게 발휘됐다. 전반 29분, 마르셀로가 문전으로 공을 감아 찼다. 윙백 정운이 기습적으로 침투하고 있었다. 허를 찌르는 패스가 제주의 선제골을 만들어냈다.

제주의 전술은 감바를 상대로 완벽한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우위는 경기를 대하는 자세에서 나왔다. 감바의 슛은 여러 번 김호준 골키퍼를 굴복시킬 뻔했지만 백동규, 정운 등이 경기 내내 몸을 날려 막아냈다. 치열한 수비로 실점 위기를 넘긴 뒤 선제골을 넣은 제주는 수비에 치중하다 재빠른 역습으로 더 수월하게 공격을 진행할 수 있었다. K리그 최고 스피드스터 중 한 명인 황일수가 폭발적인 드리블로 한 골을 추가했다. 제주는 감바를 꺾고 K리그 팀 중 유일하게 ACL 16강에 올랐다.

경기가 끝나고 서포터 앞에서 시념사진을 찍을 때, 조 감독은 저 멀리서부터 달려오더니 잔디 위로 몸을 날려 멋진 슬라이딩을 했다. ‘출발 드림팀’에 나가도 될 거 같은 화려한 동작이었다. 잠시 후 만난 그는 밝게 웃으며 “너무 기쁘다보니 그만… 양복이 좀 걱정되네요”라고 말했다.

왜 : 승리한 뒤에도 조성환은 투입하지 못한 선수가 신경 쓰인다

조 감독은 “선수들에게 늘 미안하죠. 특히 선수를 새로 영입할 때마다 기존 선수들에게 미안했고, 팀이 분열될까봐 걱정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조 감독은 분열을 막기 위해 진성욱, 권용현, 좌준협 등을 계속 1군 경기에 내보냈다. ‘기회의 균등’은 연패의 빌미가 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

권용현은 R리그에서 호흡을 맞춘 선수들이 자신에게 보내준 응원을 기억한다. “우리가 2군에서 보낸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보여 달라고 했어요. 제가 1군에서 경쟁력을 보여줘야만 R리그 선수들에겐 희망이 생기잖아요.”

제주처럼 선수 영입을 많이 한 팀은 분열을 겪기 쉽다. 지난 시즌 수원FC로 임대를 다녀 온 권용현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공격수들이 대거 영입되는 걸 보며 한때 불만을 가졌다고 털어놓았다. “당연히 선수들 사이에서 불만이 생기죠. 저부터 그랬거든요. 하나가 되지 못했죠. 하지만 시즌을 치르면서 점점 더 하나로 뭉쳤고, 지금처럼만 한다면 누굴 만나도 지지 않을 것 같아요.” 조 감독은 출장 기회가 필요한 권용현의 심리 상태를 잘 꿰뚫어봤고, 시행착오를 거쳐 어엿한 1군 전력으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조 감독은 전술가로서도 능력을 보여줬다. 유럽 명문구단을 딱히 참고하지 않고 자신의 연구를 통해 K리그에서 가장 역동적인 스리백을 만들어냈다. 안현범을 윙백으로 배치해 역량을 최대한 끌어낸 것도, 권순형과 이창민을 리그 최고 미드필더로 올려놓은 것도 조 감독의 작품이다.

그러나 조 감독은 때로 전술의 완성도보다 경기에 나서지 못한 선수들의 불만을 먼저 생각한다. 감바를 꺾은 뒤 조 감독에게 남은 한 가지 후회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교체로 용현이를 넣었어야 했는데, 멘디를 투입해 버렸어요. 용현이에게 기회를 더 줬어야 하는데. 선수는 뛰어야 하거든요.”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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