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동환 기자= 포항스틸러스의 분위기가 심상찮다.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이 막이 올랐을 지난 3월만 해도 아무도 포항을 상위권 후보에 올려놓지 않았다. 수장인 최순호 감독 마저 올 시즌 목표를 상위스플릿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개막 후 포항은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10라운드 현재 순위는 4위다. 3위 울산과의 승점은 1점차, 1,2위 제주, 전북과의 승점차는 4점이다. 그나마 지난 4월 3연패로 인해 승점을 놓쳤기에 순위가 하락했다.

# ‘갓순호! 갓순호!’ 모두가 붙여준 별명
포항은 지난 6일 FC서울과 맞붙었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탈락 위기로 인해 독이 바짝 오른 서울은 황선홍 감독이 이끌었다. 쉽지 않은 상대였다. 데얀에게 먼저 두 골을 내어주며 패색이 짙었지만 룰리냐, 심동운 등이 포문을 열며 3-2 대역전극을 연출했다. 승리를 하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화끈한 경기를 펼치길 원했던 팬들은 행복감을 가득 안고 갔다. 스틸야드의 팬들 사이에서 ‘갓순호’ 혹은 ‘갓순호 매직’ 라는 단어를 들을 수 있었다. 

포항은 지난 시즌 강등권까지 가는 위기를 겪었고, 감독이 교체됐다. 팬들이 보기에는 굵직한 대형 영입도 없어서 올 시즌에 대한 기대는 바닥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반전이 있었다. 4월 말 3연패를 앞둔 상황까지 포항은 선두권을 유지했다. 팬들이 부르는 ‘갓순호’라는 별명은 선수들과 구단 직원들도 강하게 공감하고 있다. 구성원들은 마치 팬들 처럼 “우리 감독님, 우리 갓순호 감독님”이라는 수식을 입에 달고 다녔다. 사령탑에 대한 자부심과 신뢰가 묻어났다. 

가장 큰 변화는 패배를 대하는 자세라는 것이 선수들의 이야기다. 3연패의 수렁에 빠지면 선수단은 물론 구단 전체의 분위기가 침체되기 마련이지만, 아무도 고개를 떨구지 않았다. 최 감독은 “이미 지나간 패배”라며 “다음 경기나 신경 쓰자”고 선수들을 다독였다. 대부분 감독이 같은 말을 하지만 행동으로 옮겼다. 누군가를 탓하거나 강압적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았다. 강제 합숙은 없다. 지난 시즌 까지만 해도 기혼자를 제외한 전원은 클럽하우스에서 생활했지만, 이제는 성적과 관계 없이 클럽하우스에는 합숙을 원하는 선수들만 생활하고 있다. 축구를 업으로 삼고 있지만, 훈련장 밖에서는 개인의 삶을 동시에 충분히 영위해야 한다는 것이 감독의 철학이다. 친구들도 만나고, 연애도 마음껏 하라며 충분한 자율성을 부여한다. 물론 동시에 강한 책임도 부여한다. 훈련장과 경기장에서는 100%를 쏟아야 한다.

# 커피 내려 주는 남자 ‘바리스타 최’의 소통 리더십
최순호 감독은 1962년 1월 10일생이다. 만 55세로 여전히 젊은 감독에 속하지만 한창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선수들과는 20~30년 이상의 나이차가 존재한다. 최 감독은 억지로 세대 차이를 뛰어 넘거나 다가가려 노력하지 않는다. 대신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다. 포항에서 처음 감독직을 맡았던 2000~2004년과는 달라진 모습 중 하나다. 당시에는 성적을 내야 한다는 중압감을 극복하기 쉽지 않았다. 부담은 여전하지만 성적은 성적이고, 선수들과의 관계는 다른 부분이다. 

최 감독은 종종 바리스타로 변한다. 직접 드립 커피를 내려 대접하는걸 즐긴다. 10여 년 사이 새롭게 생긴 취미다. 혼자 즐기지 않고 늘 함께한다. 선수들과 특별히 나눌 이야기가 없어도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대접한다는 마음으로 다가선다. 선수뿐만 아니라 구단 직원들 역시 최 감독이 만들어 주는 커피를 자주 즐긴다. 커피 한 잔을 놓고 앉으면 자연스럽게 말문이 트인다. 경기장 안에서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송라클럽하우스에는 커피향이 가득하다. 

브라질 출신의 외국인 선수 룰리냐는 “감독님이 만들어주는 커피를 자주 마신다. 정말 맛있다. 국적을 불문하고 선수단 누구나 편안하게 감독님과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정말 좋다”고 엄지를 치켜 세웠다. ‘커피의 나라’에서 왔기에 맛에 대해서는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룰리냐는 “감독님의 커피도 맛있지만, 역시 커피는 브라질산이 더 맛있는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조만간 고향에서 최고급 원두를 선물할 분위기다. 

# ‘큰 그림’ 그리는 남자 
최순호 감독이 지난 해 부임했을 당시 분위기는 냉혹했다. 팬들과 전문가들은 ‘12년 전 수비축구를 하던 옛 감독이 얼마나 바뀌었겠냐”며 비판적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지도력은 빠르게 재평가를 바고 있다. 최 감독은 “원래 하던대로 했다”고 했지만 변화는 있다. 선수들에 게 맞는 적절한 훈련 방법을 찾았다고 했다. 스스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덕분이다. 경험에서 나왔다. 2004년 포항을 떠난 후 현대미포조선, 강원FC 감독을 거쳐 FC서울미래기획단장으로 재직했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으로 재임하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K3리그, 내셔널리그, 여자축구, A대표팀, 연령별 대표팀 등 다양한 연령대의 선수들과 지도자들을 파악했다. 

경험 덕분인지 최 감독은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한국 축구는 많은 훈련 시간을 선수들에게 강요하지만, 포항은 아니다. 최 감독은 이미 성인이 된 선수들에게 심리적인 부분과 전술적 핵심을 전달하는데 집중했다. 최 감독은 팀의 기본적 균형을 잡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먼저 수비가 안정되고, 공격의 날카로움이 빛나야 할 시점에 빛을 발해야 한다. 포항이 동계훈련에 집중한 부분이다. 어린 선수들은 잠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알맞은 비료를 뿌리고,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은 노련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또 다른 비료를 뿌렸다. 

최 감독은 “전술과 전략의 개념을 나눠보면 승부에 집착하면 전략에, 좋은 경기하려면 전술에 몰두하게 된다”며 “나는 전략적으로 다양한 수를 쓰기 보다 기본에 충실한 스타일이다”고 했다. 초반이지만 이미 결과물은 나오고 있다는 것이 최 감독의 판단이다. 최 감독은 “포항이라는 팀이 가져야 할 기본적 틀을 선수들이 점점 이해하고 있다”며 “탄탄한 기본이 잡히면, 틀 안에서 선수들이 자유롭게 능력을 뽐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창의력이 더해진다면 팬들이 더욱 열광할 수 있는 축구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욕심이 날 법도 하지만 최 감독의 목표는 여전히 상위스플릿 안착이다. 하지만 올 시즌에 국한된 단기적 목표에 불과하다. 선수단을 돌보기에도 시간이 벅차지만, 유소년 운영 등 다양한 부분에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다양한 직책을 경험하며 쌓은 자산을 포항에 모두 주고 싶은 마음이다. 최 감독은 어쩌면 포항의 백년대계를 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제공

 

::: 김동환은 박지성과 함께 세계 최고의 축구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올드 트라포드에서 근무한 한국인이다. <김동환의 축구版>은 국내외를 넘나들며 위트있는 시각으로 축구를 바라본다. 현재 풋볼리스트 기자, SPOTV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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