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한국 축구의 오랜 숙제는 ‘문전 처리 미숙’이었다. 6일 새벽(한국시간) ‘2016/2016시즌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 31라운드 스완지시티전에서 9호골을 기록한 공격수 손흥민(25, 토트넘홋스퍼)은 그 고민을 해결해준 확실한 골잡이다. 

함부르크에서 2010년 만 18세의 나이로 분데스리가 득점을 기록한 손흥민은 2010년 12월에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어 시리아와 경기에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그리고 만 19세 생일이 되기 전에 인도를 상대로 한 ‘2011 카타르아시안컵’ 경기에서 A매치 첫 골 맛을 봤다.

#손흥민이 어린 나이에 통할 수 있었던 원천기술

손흥민은 강하고 정확한 슈팅이라는 원천 기술을 갖고 있다. 좁은 공간 사이를 저돌적으로 파고드는 돌파력도 무기다. 어린 나이부터 프로와 대표팀 경기를 뛰면서 공이 없는 상황에서의 움직임, 전방에서의 수비력에 대해 지적 받았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원숙해졌다. 그가 가진 원천 기술을 어떻게 잘 활용하는 지가 한국축구가 해야 할 고민이다.

‘가짜 윙어’ 역할에서 빛나던 손흥민은 토트넘의 주축 공격수로 자리 잡은 지금 공격 전 영역에서 전술적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올시즌 손흥민은 토트넘 소속으로 선발 출전한 모든 공식 경기 중 10경기에서 전방 공격수 역할을 맡았다. 아직도 겨우 만 25세다. 향후 발전 가능성이 무궁하다. 

손흥민의 존재가 최근 한국 대표팀을 위기에서 구해왔다. 손흥민의 A매치 두 번째 골은 2013년 3월 카타르와 경기에서 나왔는데, 이 골이 아니었다면 한국은 ‘2014 브라질월드컵’에 가지 못했을 것이다. 손흥민은 알제리와 월드컵 본선 경기에서도 개인 능력으로 득점하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한국 축구 구해온 손흥민, 슈틸리케호가 찾아야 할 활용법

‘2015 호주아시안컵’에서 거둔 준우승 과정에도 우즈베키스탄과 8강전을 넘을 수 있었던 배경은 연장전에 나온 손흥민의 두 골이었다. 손흥민은 현재까지 53차례 A매치에서 17골을 기록했는데, 이중 10골을 울리 슈틸리케 감독 체제에서 넣었다. 

손흥민이 가장 근래 A매치에서 넣은 골은 지난해 10월 카타르에 3-2 승리를 거둔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경기에서의 결승골이다. 이 골이 아니었다면 러시아로 가는 길은 현재 더 심각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런 손흥민도 최근 슈틸리케호의 원정 무득점 무승 행진을 극복하지 못했다. 이란 원정 당시 한 대표 선수는 “손흥민에게 가는 길이 막혔다”고 했다. 볼을 주려고 해도 이란 수비가 손흥민으로 볼이 투입될 수 있는 루트를 사전에 원천봉쇄했다. 

이후 고전 끝에 2-1로 승리한 우즈베키스탄과 경기에서도 득점포를 가동하지 못했다. 이 경기에서 받은 최종예선 두 번째 경고로 중국 원정은 결장했다. 1-0 신승으로 끝난 시리아와 경기에서도 좌측면에 배치되어 문전 공간을 지운 시리아의 육탄 수비에 막혀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

대표팀에서는 꽤 긴 골 침묵을 하고 있지만, 소속팀 토트넘에서는 지난겨울부터 득점 페이스가 좋다. 지난 해 12월에도 스완지시티와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한 손흥민은 같은 달 사우샘프턴과 경기에서도 득점했다. 1월에는 FA컵 경기에서 애스턴빌라, 위컴 등 한 수 아래 팀을 만나 시즌 득점을 3골 더 보탰다. EPL에서는 강호 맨체스터시티와 경기에서 득점했다.

3월 A매치 소집 전에는 밀월과 FA컵 경기에서 3골 1도움으로 원맨쇼를 펼쳐 6-0 대승을 이끌었다. 극도의 부진으로 대표팀 전체가 비판 받은 3월 A매치 이후 소속팀으로 돌아가 치른 두 차례 리그 경기에서는 모두 득점했다. 4월 1일 번리 원정에서 후반 28분 교체 투입되어 4분 만에 득점했다. 그리고 스완지시티와 31라운드 경기에서 후반 추가 시간에 극적인 결승골을 넣었다.

대표팀에서 자신의 기량을 100% 발휘하지 못했던 손흥민이 토트넘에 돌아가 신바람 득점행진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 동료가 다르기도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표팀에서 손흥민은 좌측면에서 패스를 이어 받아 이미 그의 진입 시도를 알고, 기다리고 있는 수비를 상대해야 한다.

윙어 포지션은 수비적 체력 부담도 크다. 실제로 아시안컵 우즈베키스탄전 연장전에 나온 손흥민의 득점은 당시 선수였던 차두리가 슈틸리케 감독에게 이근호를 측면으로 내리고, 손흥민을 원톱 자리로 올리자는 건의를 통해 나올 수 있었다.

손흥민은 알고도 100% 막을 수 없는 돌파력과 슈팅력을 갖췄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팀의 대비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경기 중 변화 시도는 반대편으로 이동해보는 것 정도다. 이리 저리 이동하고, 그를 향해 몰리는 수비 견제 밖의 공간을 활용해 2선의 남태희 혹은 2선 지역까지 올라오는 기성용에게 슈팅 기회가 열리는 정도의 간접 기여 밖에 할 수 없게 됐다.

손흥민은 토트넘에서도 이 지역에서 특유의 돌파 후 패스, 슈팅을 뿌려 적지 않은 공격 포인트를 쌓았다. 하지만 이러한 장면이 연출되기 위해선 상대 수비 조직을 흔들 수 있는 조직적인 움직임과 경기 중 전술적 움직임이 끊임없이 나와야 한다. 손흥민은 번리와 경기에서 네덜란드 스트라이커 빈센트 얀센을 대신해 들어갔고, 스완지시티와 경기에서도 원톱으로 출발했다.

손흥민은 최전방에서 포스트 플레이를 수행하는 원톱으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배후 공간을 공략하고, 2선으로 수비를 끌고 내려오거나, 자신의 주 활용 영역인 좌측면 지역으로 침투하는 ‘가짜 9번’에 가깝다. 손흥민은 전방에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팀의 패스 플레이가 전개되는 과정에 적절한 위치로 이동해 수비를 끌어당기거나, 직접 공을 이어 받아 위협적 플레이를 만든다. 번리전과 스완지전 모두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움직이는 와중에 슈팅 기회를 포착했다.

#손흥민의 원톱 활용, 슈틸리케호가 토트넘에서 참고할 부분

지금까지 슈틸리케호는 이정협처럼 부지런한 원톱을 투입해 전방 압박을 펼치며 2선 공격수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고, 장신 공격수 김신욱을 투입해 제공권 우위를 바탕으로 한 롱볼 공격으로 상대를 공략해왔다. 지금 이정협은 고립되어 2선 공격에 대한 대비가 뻔해졌고, 김신욱 활용도 세컨드볼 경쟁에서 밀려 효과가 떨어졌다.

다음 A매치 일정에 고려해볼 수 있는 것은 토트넘이 손흥민을 활용한 것처럼 원톱으로 기용하는 것이다. 과거 손흥민은 원톱 자리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토트넘 입단 이후 지속적으로 기회를 가지며 전술적 움직임이 향상됐다. 대표팀은 소집 훈련 기간이 짧고, 결국 소속팀에서 선수가 가장 익숙하게 단련된 전술적 역할을 활용하고 조합시키는 게 중요하다. 손흥민에게 토트넘에서 했던 것과 같은 주문을 내린다면 소집 훈련 기간이 충분치 않아도 빠르게 적응시킬 수 있다.

한국 축구의 고민 중 하나는 ‘9번형 공격수’의 풀이 다양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손흥민을 원톱 자리에 두고, 보다 자원이 많은 측면과 2선 선수를 다양하게 조합해볼 수 있다. 손흥민이 좌측면 공격 포지션에 고정되면서 우측면 공격수나 2선 미드필더 중 한 자리 정도만 변화의 여지가 있었다. 

손흥민의 전방 이동은 2선 지역의 조합을 완전히 새롭게 고민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2선, 특히 좌우 측면 공격 포지션에서 장점을 발휘하는 자원은 K리그에도 많다. 국가대표 경험이 있는 염기훈, 이근호를 비롯해 K리그의 떠오르는 젊은 선수 가운데 2선에서 속도, 기술, 득점 창출 능력을 갖춘 자원이 많다. 남태희의 측면 이동을 통해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새로운 대안을 찾아볼 수도 있다.

상대 밀집 수비를 대상으로 배후 공간이 적어 침투 플레이가 어려웠던 문제를 '가짜 9번' 손흥민을 통해 풀어 볼 수 있다. 손흥민이 원톱 자리에서 다양한 패턴을 만들며 측면 2선 플레이와 풀백 오버래핑 공격 패턴을 아예 새롭게 구성할 수 있다. 상대팀의 예측 범위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손흥민의 원톱 적응은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 감독이 준 힌트이자 선물이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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