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선수는 성장하고 진화한다. 한결 같은 패턴으로 경기하는 이도 있지만, 주어진 상황이나 포지션에 따라 경기 방식을 바꾸는 이도 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프란체스코 토티 같은 선수들이 대표적이다. '풋볼리스트'는 진화하고 변화한 선수 이야기를 모았다.

최고의 선수는 자리를 가리지 않는다. 당대 최고를 넘어 역대 최고의 선수로 평가 받고 있는 리오넬 메시는 경기장 모든 영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 실제로 루이스 엔리케 전 FC바르셀로나 감독은 “메시는 모든 포지션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라고 말하기도 했다. 등장 당시부터 최고라는 평가를 받아온 메시는 현대 축구의 전술 진화 과정을 따라 다양한 자리에서 뛰었다. 반대발 윙어부터 가짜 9번, 그리고 중앙 플레이메이커까지. 그를 막는 방법이 나타나면, 이를 무너트리기 위한 해법을 찾곤 했다. 메시가 걸어온 길을 포지션 흐름에 따라 정리했다.

1기: 반대발 윙어, 우측면에 배치된 마라도나의 후계자 

어려서부터 메시의 특기는 단독 돌파에 이은 득점이었다. 체구가 왜소한 메시는 상대 중앙 수비수와 직접 몸 싸움을 피하면서 2선 공간, 수비 배후 공간을 공략할 수 있는 처진 스트라이커 포지션을 선호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엔간체(enganche, 갈고리)’라고 부르는 역할이다. 메시가 FC바르셀로나 1군팀에 입성하던 시기에는 사뮈엘 에토오와 호나우지뉴가 공격의 중심에 선 4-3-3 포메이션이 주로 사용됐다. 이 포지션에는 메시가 원하는 자리가 없었다. 왼발 잡이 메시는 전통적인 윙어 보다 문전 중앙으로 파고는 오른쪽 윙어로 배치됐다. 좌우 측면을 넘나들며 2선 영역을 점유해 실질적으론 처진 공격수와 유사한 역할을 했다. 

현대 축구는 원톱이 득점 보다 포스트 플레이에 집중하고, 중원 압박이 거세지면서 풀백이 측면 공격을 전담하는 형태의 전술이 유행했다. 조밀한 압박 사이를 뚫고 득점하는 역할은 측면 공격수에게 맡겨졌다. 오른발 잡이가 왼쪽, 왼발잡이가 오른쪽으로 배치되어 직접 골문을 노리기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 일명 가짜 윙어, 혹은 반대발 윙어로 불린 전술이다. 메시는 이 전술에 최적화된 선수로 기능했다. 

아르헨티나 U-20 대표팀의 ‘2005 FIFA U-20 월드컵’ 우승을 이끌던 당시에는 투톱 중 좌측에 배치됐는데, 투톱 파트너 오베르만, 좌측면 공격수 카르도소 등이 메시가 득점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왔다.

 

프랑크 레이카르트 당시 바르사 감독은 바르사B 선수들을 불러들여 치른 샤흐타르도네츠크와 비공개 연습경기에서 메시가 선호하던 10번 자리에 기용해봤지만 우측 날개로 기용했을 때의 효율이 더 좋았다. 전방에서 에토오가 마무리하고 좌측에서 호나우지뉴가 흔들면 메시가 우측에서 중앙 전방으로 진입하며 수비 허점을 노리는 삼인조 조합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2004/2005시즌 라리가에 데뷔해 호나우지뉴의 패스를 받아 데뷔골을 넣었던 메시는 2005/2006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출전 기회를 늘렸다. 라리가 17경기에 출전해 6골 2도움을 기록했다. 측면 공격수로 11차례 선발 출전했다. UEFA챔피언스리그 경기도 6회 출전했는데 역시 측면 공격수로 4번 선발 출전해 1골 1도움을 올렸다. 바르사는 2005/2006시즌에 UEFA챔피언스리그와 라리가 우승을 이뤘는데, 메시는 부상으로 후반기 일정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측면에서 공을 쥐고 상대 수비를 흔드는 역할을 하던 메시는 자연스레 거친 견제에 노출되어 부상이 잦았다.

2006/2007시즌 메시는 라리가 26경기에서 14골 2도움을 올렸고, 2007/2008시즌에는 28경기에서 10골 12도움을 올렸다. 메시는 측면에서 득점과 도움 양면에 걸쳐 탁월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진짜 전성시대는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이 부임하고, 라이트백으로 다니 아우베스가 영입된 2008/2009시즌부터다. 바르사는 트레블을 달성했고, 메시는 라리가 31경기에서 23골 11도움, 챔피언스리그 12경기 9골 5도움으로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섰다.

메시는 우측면에서 아우베스와 찰떡궁합을 이루며 문전 혹은 중앙 후방 지역을 무너트리고 골을 넣는 플레이를 즐겼다. 파울이 아니면 막기 돌파력, 아우베스와 조합 플레이를 통해 전성시대의 문을 열었다. 

2기: 가짜 9번, 메시를 득점 기계로 만든 전술적 선택 

메시는 우측면에서 위력적이었지만, 과르디올라 감독은 메시의 창조성이 더 빛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2009년 5월 1일, 레알마드리드와 엘클라시코를 앞두고 전술을 고민하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레알의 경기를 분석하던 중 메시를 가짜 9번으로 기용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곧바로 메시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나눴다. “내일 마드리드 원정에서 평소에 하던 것처럼 일단 윙어로 뛰다가, 내가 신호를 보내면 미드필더들을 따돌리고 내가 방금 보여준 공간으로 들어가.”

메시는 두 센터백과 미드필더 사이 공간으로 이동해 상대 센터백을 끌어내고, 이들의 뒷 공간을 공략하는 플레이를 지시 받았다. 전통적인 9번을 앞에 두지 않고 메시는 9번 자리에 두면서 혼란을 야기한 것이다. 메시가 뒤로 물러서면서 두 센터백은 마크맨을 찾지 못해 잉여자원이 되고, 좌우 측면 공격수가 풀백과 센터백 사이 공간을 위협할 때 메시가 문전의 빈틈을 찾아 움직였다. 

 

메시를 가짜 9번으로 활용하는 전술은 중원 지역의 점유율을 높이는 것은 물론 신체 조건이 좋은 상대의 수비 라인을 무력화하는 묘안이었다. 레알 원정 경기 이후에도 메시는 가짜 9번 자리에서 골사냥에 나서며 유럽 무대를 휩쓸었다. 2009/2010시즌에 라리가 35경기에서 34골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피치치를 차지했다. 득점력이 절정에 달했던 것은 2011/2012시즌으로 라리가 37경기에서 50골을 몰아쳐 단일 시즌 최다골 신기록을 세웠다. 챔피언스리그에서도 11경기 14골로 득점왕을 석권했다. 2012년 한 해 동안 메시는 아르헨티나 대표팀 경기를 포함해 총 91골을 몰아치는 무시무시한 기록을 남겼다. 메시는 2012/2013시즌에도 라리가 32경기에서 46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을 연속 수상했다. 

메시가 가짜 9번 역할을 맡은 것은 과르디올라 감독 재임 기간이 처음은 아니다. 바르사 유시팀으로 뛰던 2001/2002시즌 당시 과르디올라 감독의 수석코치로 일한 티토 빌라노바가 유스팀 감독으로 일하고 있었다. 빌라노바 감독은 메시를 가짜 9번으로 두고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중원에서 패스를 공급하도록 했다. 이 전술로 메시는 수 많은 골을 양산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메시를 가짜 9번으로 활용하던 당시에도 빌라노바 코치의 조력이 적지 않았다.

3기: 압박을 피해 측면으로, 전술은 돌고 돈다

메시를 가짜 9번으로 활용 하는 과정에서 힘이 된 것은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 차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보인 호흡이다. 두 선수가 중앙 지역에서 완벽하게 공을 통제하면서 메시는 라인과 라인 사이를 이동하며 공을 받고 마무리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메시를 가짜 9번으로 내세우는 전술은 숙제를 만났다. 주제 무리뉴 감독은 센터백 페페를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배치해 빌드업 미드필더 세르히오 부스케츠를 압박해 바르사의 볼 줄기를 차단하고, 메시에 대해서도 높은 위치에서 직접 괴롭히는 데 성공했다. 메시의 위험 지역 접근성이 떨어졌다. 가짜 9번 자리에서 전방위 움직임이 가능하던 메시는 전방위 압박에 노출되는 상황을 맞닥뜨렸다.

결정적으로 차비가 황혼기를 맞이하면서 경기의 밀도가 떨어졌다. 메시가 공만 기다리고 있을 수 있는 흐름의 경기가 되지 못했다. 2013/2014시즌의 실패 이후 바르사는 2014/2015시즌 루이스 엔리케 감독 체제로 출범했고, 브라질 공격수 네이마르, 우루과이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스를 영입해 메시와 MSN 트리오로 구성했다. 메시는 다시 오른쪽 측면 공격수 자리로 이동했다.

엔리케 감독 체제에서 메시는 보다 사이드에 가깝게 자리를 잡고 서있다가 중앙 공간, 전방 공간으로 이동하며 득점 과정에 기여했다. 원톱 자리에 있는 수아레스가 중앙에 머무르지 않고 측면으로 커트아웃하는 움직임을 통해 메시의 동선을 만들어줬다. 좌측면에서 네이마르는 현란한 드리블 기술로 호나우지뉴가 과거 메시의 부담을 줄여주던 역할을 했다. 

메시는 두 선수에게 패스를 공급하는 것은 물론 수 많은 마무리 기회를 잡았다. 2014/2015시즌 바르사는 통산 두 번째 트레블을 달성했고, 메시는 라리가 38경기에 모두 출전해 43골을 넣었다. 챔피언스리그 13경기 10골로 유럽 득점왕 타이틀도 찾았다. 

4기: 탁월한 패싱력, 차비의 역할도 할 수 있는 메시

2014/2015시즌 트레블 달성 이후 바르사에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차비의 퇴단이다. 전성기가 끝났다고 판단한 차비는 카타르 알사드로 이적했다. 바르사는 이반 라키티치를 영입하 중원 지역의 역동성과 압박능력, 직선적인 플레이를 가미했다. 바르사는 더 효울적이고 신속한 팀이 되었다.

이니에스타와 부스케츠가 전재했지만 차비처럼 전환 패스를 단번에 찔러줄 수 있는 플레이가 필요했다. 메시는 우측면에서 중앙 지역으로 들어와 플레이메이커의 역할을 나눠가졌다. 이니에스타의 부상 혹은 컨디션 저하 상황에는 메시의 중원 플레이 비중이 더 커졌다. 메시는 2015/2016시즌에 패스 플레이에 더 주력했다. 라리가 33경기에서 26골 밖에 기록하지 못한 이유다. 이 기록은 2009/2010시즌부터 8시즌간 메시의 한 시즌 리그 득점 최소 기록이다.

메시에게 플레이메이커 역할은 낯설지 않다. 차비나 이니에스타가 없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선 메시가 이미 그런 역할을 해왔다. 메시는 바르사에서 절정의 득점 감각을 보이면 2010년과 2011년 대표팀에서 뛴 23경기에서 6골 밖에 넣지 못했고, 이는 메시가 직접 득점하기 보다 한 칸 밑으로 내려와 공을 뿌려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돌파 과정 조차도 상대 수비를 몰고 다니며 동료에게 공간을 만들어주는 상황이 더 많았다.

 

메시는 아르헨티나가 코파아메리카를 개최한 2011년은 물론 준우승에 그친 2015년 대회에도 득점력이 저조했다. 2015년에는 6경기에 나서 1골 밖에 넣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아르헨티나가 넣은 골의 상당수 과정이 메시를 통해 나왔고, 골로 이어지지 못한 수 많은 기회를 메시가 만들었다. 2016년에는 11번의 A매치에서 8골을 넣었다.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탈피해 더 높은 곳에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메시의 커리어를 볼 때 하나의 흐름이라기 보다는 순간의 역할이었다. 다만 메시도 이제 만 30세가 되었고, 체력과 근력 상태가 향후 하강할 경우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게되는 경우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폭발적이던 드리블러 호나우지뉴도 현역 생활 말미에는볼 배급을 중심으로 경기하는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했다.

글=한준 기자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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