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영화 같은 승리를 이끌어낸 순간, 안현범(제주유나이티드)이 떠올린 감정은 한(恨)이었다. “세리머니하다 한 같은 감정이 떠올랐어요. 맺힌 게 있었으니까.”

22일 열린 ‘KEB 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22라운드에서 제주유나이티드는 포항스틸러스를 홈으로 불러 3-2 승리를 거뒀다. 한동안 부진했던 제주가 두 달 만에 거둔 연승이다. 승리로 가는 과정은 극적이었다. 전반에만 두 골을 넣으며 경기를 쉽게 푸는 듯 보였던 제주는 전반 추가시간 이찬동의 경고 누적 퇴장에 추격골까지 허용했다. 후반전이 무르익을 무렵 동점골까지 내줬다.

극적인 승리가 안현범의 발에서 나왔다. 제주가 10명으로 버티던 후반 추가시간, 오른쪽 윙백 안현범은 마지막 공격 가담을 감행했다. 오른쪽에서 출발해 중앙으로 파고들던 안현범은 윤빛가람과 절묘한 2대 1 패스를 주고받은 뒤, 강현무 골키퍼를 살짝 비껴가는 왼발 슛으로 골을 터뜨렸다.

안현범에겐 시즌 2호골이기도 했다. 지난 3월 11일 울산현대를 상대로 득점한지 네 달 넘게 지났다. 지난해 시즌 8골로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한 선수의 기록이라기엔 다소 초라하다. 안현범은 ‘풋볼리스트’와 가진 통화에서 “솔직히 그 동안 많이 참았다”고 말했다. 안현범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수적 열세 속 ‘극장골’

“먼저 두 골을 넣었을 때, 오늘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찬동 선수의 퇴장 이후 바로 골을 내줬고, 더운 날씨에 후반 45분을 버틸 수 있을까 불안했는데 결국 동점골을 내줬어요. 그 때부턴 무승부를 지키자는 각오였죠. 그런데 후반 추가시간에 기회가 생겼고, 홈 경기에서 수비만 하다 끝나면 아쉬울 것 같아서 올라갔는데 윤빛가람 선수가 패스를 너무 잘 넣어 주셔서 찬스가 생겼어요. 동료들이 10명으로도 잘 버텨줘서 승리할 수 있었고요. 이찬동 선수가 ‘나 때문에 졌다’며 마음 아파하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어요.”

 

#4개월 만의 득점

“제가 요즘 공격 포인트가 없는데요. 윙백으로서 수비에 먼저 신경 쓰기 때문에 제 장점을 보여드리지 못했어요. 솔직히 그 전 경기, 전전 경기에서도 찬스는 많이 만들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크로스를 하면 이창민, 이은범 선수의 슛이 아슬아슬하게 빗나가요. 도움으로 기록되지 않아서 아무도 안 알아주는 게 솔직히 서운하기도 했어요. 열심이 안 한다는 오해를 받은 적도 있는데 그게 더 속상했고요. 이번 시즌만 30경기 뛰면서(컵대회 포함 기록. 선발 24회) 지쳐가는 시점이었는데 오늘 골을 계기로 마음고생을 날린 것 같아요. 솔직한 심정이에요.”

 

#프로 첫 왼발 득점의 순간

“제가 치고 들어갈 때 가람이 형이 딱 보여서 내줬고, 그 순간 저에게 공이 돌아오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마지막 힘을 짜냈던 것 같아요. 그 각도에서는 왼발밖에 없어서 왼발로 찼죠. 훈련할 때도 감독님이 왼발로 밀어넣으라는 요구를 많이 하셨거든요. 그래서 몇 번 연습했던 상황이예요. 프로에서 첫 왼발 골을 넣어 봤네요. 윤빛가람 선수는 확실히 경기를 수월하게 만들어 줘요. 공을 주면 다시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동료예요. 골 세리머니는 블랙핑크 멤버 제니 씨가 ‘주간 아이돌’에서 했던 ‘제니 입덕 영상’을 보고 따라한 건데, 아무도 못 알아봤겠죠.“

 

#작년엔 8골로 영플레이어상, 올해는 왜?

“작년엔 수술하고 전반기에 쉬다가 후반기에 들어왔기 때문에 다른 팀 선수들보다 힘이 많은 상황이었고, 공격수로 많이 뛰었으니까요. 이번 시즌 저희 팀이 로테이션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윙백은 그럴 수가 없어요. 박진포 선수와 김수범 선수가 다쳐 있기 때문에 저와 정운 선수 두 명은 어쩔 수 없이 노예가 됐어요. 저도 마음같아선 매번 폭발적인 경기를 하고 싶죠. 그런데 팀 플레이를 해야 하니까 완급 조절이 필요해요. 그래서 일부러 수비적인 경기를 했어요. 공격 가담은 자제했고요. 게다가 더운 여름, 습한 서귀포라서 마음처럼 안 되기도 해요. 일주일에 두 경기씩 뛰면서 70분이 넘으면 어쩔 수 없이 지치더라고요.”

 

#완전히 탈진했던 4월의 경험

“애들레이드유나이티드와 가진 홈 경기. 그날 한 경기는 어떻게든 쥐어짜서 90분 내내 폭발적으로 뛰었는데, 다음 경기에 무리가 오더라고요.(안현범은 당시 경기 후 탈진 증세를 보여 수액 등 처치를 받았다) 체력이 고갈되니까 몸 풀 때부터 느낌이 와요. 아, 큰일 났구나. 제가 공을 예쁘게 차는 스타일이면 무리를 안 해도 될 텐데, 윙백이다 보니 아마 공수를 오가는 거리가 제일 길 거예요. 많이 뛰어야 하는 포지션인 만큼 한 번 체력이 고갈된 뒤로 더 조심해야 한다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대표팀엔 자리가 없는 스리백의 윙백

“저는 제주가 포백을 쓸 때 풀백도 소화하고 싶은데, 감독님이 못미더워하시는 것 같아요. 풀백으로 놓기엔 공격력이 아쉽고 수비력이 의문스러우신가 봐요. 대표팀은 다 내려놓았어요. 전혀 욕심 없어요. 요즘 ‘발버둥 쳐봤자 안 될 일은 안 된다’는 걸 느껴요. 때를 기다리며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오늘처럼 골을 넣는 날도 생기잖아요. 개인적인 욕심을 내면 플레이에 힘이 들어갈 수도 있어요. 지금처럼 수비도 공격도 열심히 할 생각이에요. 수비력은 좋아진 것 같아요. 계속 수비를 보다 보니까 위치 선정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고, 아시아 무대에서 많은 공격수를 상대하면서 여유가 좀 생겼어요. 물론 잘 되는 경기의 이야기지만.”

 

#우승, 가능하다

“남은 시즌 목표는 팀의 우승이에요. 개인적인 목표는 별로 생각나는 게 없고요. 팀이 아직 중상위권에 있으니까 우승을 노려보고 싶어요. 안 될 건 없지 않을까요? 제주가 10명인 채 밀리고 있다가 윙백의 골로 이길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어요. 우승 도전도 해 봐야 아는 거죠.”

 

#서귀포 무지개 레츠기릿

“원래 햇빛을 안 보는 성격인데, 요즘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집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요. ‘나 혼자 산다’를 즐겨 봐요. 약간 공감도 하고 생활 속 꿀팁도 많이 알게 되니까요. 거기 나오는 무지개 회원 중에서는 윤현민 씨와 비슷한 것 같아요. 깔끔하시더라고요.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저도 깔끔해요. 가벼운 결벽증이 있어서 각 지고 정리된 걸 좋아하거든요. 요즘엔 밥 먹고 설거지 하면서 노래를 듣는 게 제일 기분 좋아요. ‘쇼 미 더 머니’에 나온 노래를 많이 듣죠. 둘 다 경기 전날(금요일 밤)에 하는 프로그램이라 본방은 못 보고, 다음날 아침이나 이럴 때 보죠.”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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