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축구는 깊다. 격렬함 속에는 치열한 고뇌가 숨어 있다. 보이지 않는 축구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다리가 필요하다. ‘풋볼리스트’가 축구에 지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마련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축구를 둘러싼 깊고, 다양한 이야기를 준비한다. <편집자주>

“왜 시작부터 라인을 뒤로 내렸나요?” 

2015년 9월 3일, 화성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8 라시아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에서 한국은 라오스를 상대로 8-0 대승을 거뒀다. 라오스 축구는 1년 전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을 상대로 0-2로 석패하며 꽤 인상적인 경기를 했다. 동남아시아 축구의 전반적 성장세를 확인할 수 있는 경기였다. 1년 뒤 성인 대표팀 간 경기에서는 훨씬 더 무력했다. 전술적 관점에서 보면, 두 경기 사이의 차이는 전방 압박의 강도였다.

23세 이하 선수 간 대결이었던 아시안게임에서 라오스는 전방부터 부지런하게 압박하며 한국 선수들을 괴롭혔다. 결국 체력이 떨어지며 집중력이 흔들려 2골을 내주고 졌지만, 내용적 측면에서 라오스도 좋은 점수를 받을 만한 경기였다. 더 많은 골을 내준 월드컵 예선 경기에선 시작부터 라인을 내리고 가드를 올렸다. 한국 최후방 수비 라인이 하프라인에 형성될 정도로 일방적인 경기였다. 

현대 축구 전술에서 수비의 기점은 최전방이다. 후방 빌드업이 일상화되어 있고, 이 지역을 공략하는 게 승부의 관건이다. 이제 전방 압박은 특정팀이 시도하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축구의 기본처럼 여겨지고 있는 시대다. 

서정원 수원삼성 감독은 지난 시즌부터 이어진 후반 중반 이후 동점골 내지 역전골을 내주고 지는 문제에 대해 라인을 내리고 막는 방법은 어떻냐고 묻자 “그렇게 하면 상대가 쉽게 전진하고, 공격권을 갖게 된다. 우리 지역에서 상대 플레이가 더 자주 이뤄지는 상황에서 수비하면 체력 소모가 더 크다”고 설명했다.

서 감독의 설명은 축구 전술의 일반론이다. 전방 압박에도 체력이 많이 소모되지만, 라인을 뒤로 내리면 경기 주도권을 내주고 체력까지 잃는다. 체력이 완전히 소진되거나, 선수의 퇴장으로 수적 열세 상황이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흔히 말하는 ‘텐백 수비’를 구사하는 것이 전술적으로 득될 것이 많지 않다. 

#라인 올리고 전방압박, 하고 싶다고 다 할 수는 없다

월드컵 예선 경기를 지휘했던 스티드 다비 당시 라오스 감독은 라인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한국의 경기는 포뮬러원의 자동자 레이스를 보는 것 같았다. 누가 운전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환상적인 운동 능력을 갖고 있었다. 라오스 선수들의 신체적인 조건상 이날 경기를 나무랄 수 없다. 승부조작 문제로 주축 선수 두 명이 빠지기도 했다. 우리 선수들은 최선을 다 했다. 라오스에는 풀타임 프로 선수가 없다. 축구를 하고 나면 일을 하러 가야 한다. 아시안게임 때와 비교하면 한국의 선수 구성이 훨씬 더 강한 상황이다. 한국은 전 지역에서 압박을 하는 팀이고, 우리가 더 공격적인 자세로 경기를 했다면 20골이 넘게 내줄 수도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한정적인 상황이다.”

축구 경기에서 감독의 역량은 매우 중요하다. 때로 선수 개별 구성이 떨어지는 팀이 전술의 힘으로 승리하기도 한다. 축구 팬들 사이에는 어떤 전술이 더 좋은지에 대한 토론이 자주 벌어진다. 경기 결과가 실패로 돌아간 이후 분석 과정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하지만 전술 결정이 내려지는 과정에서 선수의 역량과 컨디션이 매우 중요한 변수다. 감독이 전술에 선수를 끼워 맞추면 문제가 발생한다. 감독은 전술에 맞는 선수를 찾기도 하지만, 선수에 맞는 전술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

한 팀의 수비 전술은 중앙 수비수를 세 명 두는 스리백과 두 명 두는 포백 외에도 압박의 라인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이제 막 축구 발전이 이뤄지고 있는 아시아 지역의 약체 팀들에게 전방 압박은 아직 도전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체구도 작지만, 체력 수준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피지컬 전문 트레이닝에 대한 기반도 이제 구축되고 있는 실정이다.

#수원삼성과 이스턴SC, 라인설정 달랐던 이유

수원삼성과 원정 경기에서 0-5로 크게 진 홍콩 챔피언 이스턴SC의 경우도 그렇다. 공부하는 지도자로 유명한 여성 감독 찬유엔팅은 수원 원정에 4-1-4-1 포메이션을 가동했는데, 4명의 수비수가 문전 지역을 메우고, 1의 자리에 선 바이허가 포백 보호자로 섰다. 흥미로운 것은 역습 공격 시에는 바이허가 공격으로 전진하고, 그 앞에 자리한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가 볼 배급 이후 수원 역습에 대비하는 포지셔닝에 나선 것이다. 공격은 바이허와 전방에 배치된 세 명의 선수로만 전개했다. 

서정원 감독은 이스턴이 라인을 뒤로 내릴 것을 예상하고 매우 공격적인 선발 전략을 짰다. 스리백 수비 앞에 빌드업 미드필더로 볼 컨트롤 기술과 패스 센스가 좋은 김종우를 뒀다. 좌우 풀백 자리에는 이용래와 고승범을 측면 미드필더로 기용했다. 스리백의 좌우 측면을 담당한 곽광선과 구자룡이 풀백 영역까지 커버했다. 실질적으로 전문 센터백은 민상기 한 명 만 두고 전원이 상대 지역을 공략하는 포진이었다. 김종우 앞에는 산토스와 고차원 등 평상시 2선 공격수로 뛰는 자원을 중앙 미드필더로 두고 적극 공격에 임했다.

서 감독은 상대가 자기 진영의 공간을 없애는 수비를 준비했기에 상대 밀집 수비를 공략할 수 있는 기술자들을 다수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공격적으로 나선 수원은 후방 빌드업을 위협할 상대 전방 압박이 없는 경기에서 편안하게 공격했다. 결국 5-0 대승으로 올 시즌 첫 홈 승리를 거뒀다. 서 감독의 과감한 전술 변화가 찬 감독이 준비한 수비를 제압한 형세였다.

찬 감독에게 수원이 그동안 시도한 적 없는 3-1-4-2 포메이션으로 나선 것에 대비하지 못한 것이 대량 실점 패배의 원인이 되었는지 물었다. 찬 감독은 부인했다. 그보다는 체력의 열세를 꼽았다. “전반전과 후반전의 가장 큰 차이는 피지컬 컨디션이다. 특히 두 번째 골 상황에서 수비수들이 공간을 남겨뒀는데, 체력이 떨어지면서 발생한 문제다.”

찬 감독은 이스턴SC 선수단의 개별 역량에 맞는 전술을 준비했다. 전방 압박을 가동할만한 체력이 아니었고, 라인을 뒤로 내린 상태에서 최고의 경기를 할 수 있는 전술을 준비했다.

“수원이 최근 3-4-3으로도 나오고, 3-4-1-2로도 나왔다. 어떤 방식으로 나오든 대비할 수 있게 준비했는데 다르게 나왔다. 하지만 전술적으로 곤란한 것은 아니었다. 출발은 좋았다고 생각한다. 조직적으로 좋았고, 수비도 효과적이었다. 다만 후반전이 되면서 실수가 발생했는데,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우리 체력이 생각보다 빠르게 떨어졌고, 공수 전환 상황에서 문제가 생겼다.”

찬 감독은 이스턴SC가 홈에서 가와사키프론탈레와 1-1로 비기고, 수원에 0-1로 석패했지만 광저우 원정에서 0-7, 수원 원정에서 0-5로 진 배경에 대해서도 전술 보다 체력의 문제를 설명했다. “원정 경기는 체력적으로 더 어렵다. 준비는 많이 했지만 상대가 더 강했다.” 수원에 온 홍콩 취재진 역시 “김판곤 홍콩 대표팀 감독이 강조하고 있는 게 체력이다. 홍콩 축구에 한국식 피지컬을 이식하고 있다”고 했다. 전술 옵션을 다양하게 가져가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 체력이다. 뛰지 못하면 어떤 전술적 시도도 무용이다. 

#체력과 전술은 함께 만들어야 한다

뒷심 부족으로 지난시즌부터 승리 사냥에 어려움을 겪어온 수원이 이스턴SC와 경기에서는 마지막까지 추가골을 계속 넣으며 5-0 완승으로 매듭지을 수 있었던 배경에 전술적 아이디어와 더불어 체력적 우위가 있었다. 서정원 감독은 후반전에 선수단의 체력이 떨어지기 전에 선제적인 교체를 단행하며 경기 밀도를 유지했다. 수원에게 승리를 가져다 준 것은 체력적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던 전술과 교체, 그리고 선수의 삼박자를 갖췄기 때문이다. 

수원의 향후 과제도 선수단의 체력 컨트롤이다.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는 것도 결국은 체력 문제다. 한국 청소년 대표팀에 이어 상하이선신을 거쳐 부산아이파크를 지휘하고 있는 이재홍 피지컬 코치는 ‘풋볼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뇌에서 나오는 호르몬이 신경 물질로 가서 근육 컨트롤 한다. 몸이 피곤하면 신경물질 생성이 느려지고, 반응이 느려진다. 반응이 느려지면 활기찬 움직임이 안 나오고 그러다 보면 선수끼리 부딪히게 된다. 그 것이 결국 부상을 부른다”고 설명한 바 있다. 전술적 허점 혹은 불운으로 불리는 많은 요소가 ‘체력 관리’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최근 축구계 화두로 떠오른 스리백 전술은 수비 안정성을 담보하면서, 보다 직선적이고 효율적인 축구, 중원을 지배하지 못해도 역동성을 보일 수 있는 축구다. 이 전술은 선수들에게 더 강한 체력을 요구한다. 측면 공격수와 윙백의 역량이 특히 강조된다. 중앙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숫자가 부족해지는 데, 중앙 미드필더는 영리해야 하며, 동시에 체력적으로 강인해야 한다. ‘게겐프레싱’으로 대표되는 위르겐 클롭 감독의 축구도 체력 없이는 이행이 불가능하다. 전방압박을 위해선 공을 소유하고 기술을 보여주길 즐기는 선수들이 더 많은 수비 부담을 갖게 된다. 

이런 축구를 하는 팀들은 로테이션과 선수단 부상 관리가 주요 화두다. 전반전에 반짝하지만 후반전에 급격히 경기력이 떨어지는 현상도 경험한다. 시즌 기준으로 보면 전반기엔 돌풍을 일으키지만 후반기에 되면 동력이 떨어진다. 축구 전술은 개별 경기만을 대상으로 볼 수 없다. 경기별 맞춤 전략과 임기응변도 중요하지만, 시즌 전체를 끌고 갈 구조도 필요하다. 전술 구사를 성공적으로 이행하기 위해선 축구 지능으로 불리는 이해도만큼이나, 90분간 구현할 수 있는 체력이 필요하다. 

결국 체력이 전술을 결정한다. 피지컬 트레이닝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제 피지컬 훈련은 전술 훈련과 통합되고 있고, 감독과 수석코치, 피지컬 코치 모두 피지컬 트레이닝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피지컬 트레이닝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이상적인 전술을 구현하기 위해선, 체력부터 만들어야 한다. 체력훈련과 전술훈련은 동시에 이뤄져야 하고, 정점에 도달하기 전까지 90분간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운영법을 찾아야 한다.

전술적 의사 결정 과정에 개별 선수는 물론 선수단 전체의 피지컬 컨디션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그래서 피지컬 전문가들은 “컨디션이 특별히 좋은 몇몇이 있고, 나쁜 몇몇이 있는 것보다 평균적인 선수가 많른 게 중요하다. 선수단의 컨디션이 평균 상태로 고르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경기에서 가중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어떤 전술이 더 우월해서 승리하는게 아니라, 시도하는 전술을 얼마나 높은 완성도로 이행하느냐가 중요하다.

글=한준 기자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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