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디종(프랑스)] 김정용 기자= 한국 대표팀 공격의 핵심인 권창훈에게 프랑스의 소도시 디종은 작지만 잘 어울리는 성장 환경이다.

6일(한국시간) 디종 기차역에서 디종FCO 훈련장으로 향했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권창훈은 잘 알려져 있는 듯했다. 택시 기사 다비드 씨는 디종 팀 훈련장으로 가 달라고 하자 서툰 영어로 “한국에서 왔나? 난 축구를 안 보지만 친구들이 서포터라서 한국 선수가 있다는 걸 안다. 아주 열심히 하고 정신자세가 훌륭한 선수라고 들었다. 다들 그 선수를 좋아하던데”라고 이야기했다.

전날부터 프랑스 중부지방에는 눈과 비가 번갈아 내렸다. 기온은 영상 1도로 그리 낮지 않았지만 습한 공기가 선수들에게 파고든다. 권창훈은 다리, 목, 머리를 모두 싸맨 차림으로 훈련장에 나섰다. 선수들은 입에서 김을 내뿜으며 집중도 높은 훈련을 한 시간 조금 넘게 소화했다.

이날 디종이 가장 집중한 훈련은 다양한 땅볼 크로스와 마무리였다. 권창훈을 비롯한 공격진 멤버들은 크로스를 올리는 선수와 마무리하는 선수를 구분하지 않고 돌아가며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수행했다. 오른쪽과 왼쪽, 문전 깊숙한 곳부터 약간 후방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위치에서 상대 수비를 피해 크로스를 올리면 공격수가 마무리하는 훈련이었다. 문전으로 파고드는 선수는 상대 수비의 등 뒤로 돌아갔다가 다시 대각선으로 파고들며 수비수의 시야에서 벗어나라는 지시를 받았다. 공격 루트가 다양한 디종은 프랑스리그앙 24라운드 현재 다득점 5위(23경기 33득점)인 팀이다.

권창훈은 정평이 난 왼발뿐 아니라 오른발도 많이 사용하라는 지시를 받고 있다. “오른발을 더 자주 써야 상대 수비가 막기 힘들어진다”는 조언에 따라 권창훈은 지난 1년에 걸쳐 오른발 연습을 많이 했다. 이날 훈련도 오른쪽에서 오른발, 왼쪽에서는 왼발로 크로스를 올리도록 되어 있었다. 권창훈은 오른발로도 멋지게 휘어져 들어가는 땅볼 크로스를 여러 차례 성공시키며 감을 익혔다.

막심 플라망 코치는 틈만 나면 권창훈에게 말을 걸었다. 좋은 플레이를 하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고, 크로스의 방향과 상황에 대한 조언도 했다. 문전 침투 훈련을 앞두고 대기 중인 권창훈을 뒤에서 토닥거리기도 했다. 권창훈은 플라망 코치의 품에서 튀어나가 크로스를 받아 넣은 뒤 하이파이브를 했다.

미니 게임까지 마친 선수들은 구단 건물로 들어가는 길에 권창훈의 아버지 권상영 씨와 차례로 악수를 했다. 옆에 서 있던 기자에게도 빠짐없이 다가와 “좋은 아침(Bonjour)”라고 인사하며 손을 내밀었다. 권창훈과 같은 시기에 영입돼 유독 가깝게 지내는 튀니지 대표 수비수 우사마 하다디는 권창훈이 가르쳐준 대로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며 권상영 씨의 손을 유독 강하게 맞잡았다. 선수들에 이어 다가온 올리비에 달롤리오 감독도 밝게 웃으며 권 씨와 악수를 했다.

팀 분위기가 유독 소박하고 가족이라는 것이 권 씨의 설명이다. 디종은 인구 15만 명 정도가 사는 농업 도시다. 특산물은 고급 머스터드 소스에 쓰이는 겨자다. 디종 요리는 평범한 주재료에 특이한 머스터드를 올려 완성된다. 파리에서 스위스로 넘어가는 중간 지점에 있어 최근에는 여행자들의 중간 휴식지로 쓰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북적거리지 않고 조용한 곳이다. 권창훈과 하다디를 비롯해 훌리오 타바레스(카보베르데), 파피 질로보지(세네갈) 등 다양한 나라의 대표 선수들이 디종 특유의 분위기에 흡수돼 화목한 관계를 갖는다.

최근 권창훈의 팀 내 비중은 전반기만큼 크지 않다. 지난해 12월 초까지 선발 위주로 출장하며 5골 2도움을 기록한 권창훈은 디종에서 가장 중요한 공격 옵션이었다. 반면 12월 말부터 교체 출장하는 횟수가 더 많아졌고, 공격 포인트가 멈춰 있다.

비를 맞아가며 훈련을 지켜보던 서포터 피에르 씨는 권창훈 이야기를 꺼내자 곧 “석현준과 경기를 하는데 현지에서도 관심이 많은 걸 알고 있냐”며 ‘덕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피에르 씨는 1월 이적 시장에서 권창훈의 독일 행 가능성이 거론됐다는 점을 들며 널리 인정받는다는 뜻 아니겠냐고 먼저 이야기했다. 권창훈이 최근 교체 출장하고 있다는 점이 화제에 오르자, 피에르 씨가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며 “미드필드는 우리 팀에서 제일 경쟁력 있는 포지션이다. 시즌 내내 주전인 선수는 없다. 요즘 벤치에 앉는다고 해서 우리 서포터들에게 권창훈이 덜 소중한 건 아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권창훈은 팀 훈련이 끝난 뒤 가장 오래 개인운동을 한 선수였다. 전력 질주를 몇 차례 반복하며 마무리 운동을 했다. 오후에는 새로 선임된 멘탈 코치와 함께 집단 상담을 받기로 되어 있었다. 권창훈의 일과는 훈련, 경기, 일주일에 두 번 하는 프랑스어 공부, 휴식의 반복으로 이뤄진다. 권창훈의 에이전트인 장민석 월스포츠 이사는 “권창훈은 원래 운동만 하고 사는 친구다. 디종의 소박한 분위기가 심심하게 느껴지는 선수도 있겠지만 권창훈과 잘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축소된 팀 내 입지는 권창훈과 아버지에게 그리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권 씨는 “창훈이가 겨울 휴식기 이후 약간 컨디션이 떨어졌다. 감독은 기본적으로 창훈이를 아끼고 신경을 많이 써 준다. 걱정할 분위기는 아니다”라고 했다. 권창훈은 “포메이션이나 공격 전술은 전과 비슷한데, 상대에 따라 선발 라인업이 바뀌는 것 같다. 내가 더 열심히 해서 주전 자리를 되찾아야 하지 않겠나”라며 원론적인 각오를 밝혔는데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디종은 11일 니스, 17일 모나코 등 어려운 상대를 연속으로 만난다. 이어 21일에는 석현준의 소속팀 트루아를 상대하는 24라운드 순연 경기가 기다리고 있다.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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