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전주] 김정용 기자= 전북현대가 K리그 클래식 우승을 조기 확정했다. 유일한 맞수 제주유나이티드와 사실상 결승전을 치른 전북은 맞대결에서 완승을 거두며 챔피언의 자격을 증명했다.

29일 전북 전주시에 위치한 전주 월드컵경기장에서 ‘KEB 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36라운드를 치른 전북이 제주에 3-0 대승을 거뒀다. 이 승리로 전북은 승점 72점이 됐고, 제주는 65점에 머물렀다. 팀당 두 경기씩 남은 가운데 승점차가 7점으로 벌어지며 역전 가능성이 차단됐다. 전북은 홈에서 2위팀을 직접 꺾고 우승 세리머니를 했다. 가장 이상적인 우승 확정 경기였다.

 

치열한 수 싸움으로 시작된 경기

경기 전 두 팀 감독 발언 중 화제를 모은 건 조성환 제주 감독의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전북 우승을 대비해) 많이 내려온 걸로 아는데, 경기 관전만 하고 돌아가도록 해 드리겠다”는 말이었다. 남의 집에서 우승 세리머니의 들러리 신세가 될 수는 없다는 각오가 담긴 말이었다.

선발 라인업부터 수 싸움이 치열했다. 전북은 최철순을 스리백의 일원으로 배치시키고 원래 윙어인 한교원을 최철순 자리에 놓는 변칙 스리백을 들고 나왔다. 제주는 평소 포메이션을 유지하되 공격 전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격수 마그노를 빼고 이은범, 진성욱 투톱을 가동했다.

조 감독은 “전북이 마그노를 잡으려고 최철순을 쓴 것 같은데 우린 마그노를 뺐다”며 수 싸움에서 일단 앞서갔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배후 침투가 특기인 진성욱과 이은범의 캐릭터가 겹치며 시너지 효과가 전혀 나지 않았다. 결국 제주는 전반 30분 가벼운 부상까지 입은 이은범을 일찌감치 빼고 마그노를 투입하며 선발 전술의 실패를 인정했다.

전반전부터 쌓인 제주의 불안요소는 경고였다. 제주 선수들은 킥오프 직후부터 심리적으로 동요하고 있었다. 평소보다 시야가 좁았고 수비하는 타이밍이 늦었다. 이은범, 박진포, 오반석의 경고가 쌓였다. 공격 전개는 두 팀 모두 전혀 되지 않았지만 전북은 김신욱의 196cm 신장을 활용한 단조로운 롱 패스로도 어느 정도 슈팅 기회를 만든 반면 제주의 전반전 슛은 단 1회에 불과했다.

 

전북의 ‘클래스’가 더 높았다

수 싸움보다 중요한 건 선수들 각자의 집중력과 침착성이었다. 전북이 결정적인 상황에서 더 강했고, 거기서 승부가 갈렸다.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전북의 우승이 성큼 다가왔다. 후반 1분 전북의 선제골이 나왔다. 일단 문전으로 올려놓고 보는 전북의 공격은 알고도 막을 수 없었다. 로페즈가 뜬 공 패스를 받아 김신욱의 머리 쪽으로 슬쩍 차 올렸다. 김신욱의 헤딩 패스를 이재성이 왼발 발리슛으로 마무리했다. 제주 수비수들은 공중볼 싸움에 집중하다 이재성을 놓쳤다.

후반 13분 박진포의 퇴장으로 제주는 더 심하게 자멸하기 시작했다. 후반 내내 강한 자신감으로 오버래핑하던 김진수가 박진포에게 가격당해 쓰러졌다. 박진포가 두 번째 경고를 받고 경기장에서 쫓겨났다. 제주는 스리백 중 김원일을 빼고 전문 풀백 배재우를 교체 투입하며 공백을 최소화해보려 했으나 선수들 각자의 경기력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전북은 후반 20분 K리그 최초 200골 고지를 노리는 이동국을 투입했고, 이동국은 투입 후 첫 볼 터치로 추가골을 만들어냈다. 이동국의 스루패스를 김신욱이 건드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렸고, 온사이드 위치에서 침투한 이승기가 단독 찬스를 맞았다. 이승기는 첫 슛이 김호준 골키퍼에게 막히자 재차 차 넣으며 골을 마무리했다. 두 골에 모두 관여한 김신욱의 영리한 플레이 역시 큰 기여를 했다.

 

이동국, 5남매와 함께 한 200호골

전북의 드라마를 완성한 인물은 K리그의 살아있는 전설 이동국이었다. K리그 통산 최다골 기록 보유자인 이동국인 이 경기 전까지 199골을 넣은 상태였다. 시즌이 끝나기 전 대기록을 세울 수 있을지 여부는 우승 경쟁 못지않게 화제거리였다. 이동국은 한 경기에서 우승과 200골을 모두 달성하며 K리그 클라이맥스의 주인공이 됐다.

교체 투입 후 전북의 우세가 굳어지는데 기여하던 이동국은 후반 33분 쐐기골을 터뜨렸다. 로페즈가 문전으로 흐르는 공을 잡은 뒤 짧은 크로스를 올렸다. 이동국이 무뎌진 제주 수비진 사이로 절묘하게 침투하며 헤딩슛을 날렸다. 프로에 데뷔하고 국가대표팀에서 화제를 모은 1998년부터 이동국의 주특기 중 하나였던 정확한 타점의 헤딩 공격이었다.

골을 넣은 이동국은 20번 유니폼을 벗어들고 서포터 앞으로 달려가 자랑스럽게 펼쳐 보였다. 자신의 득점 기록을 상징하는 숫자였다. 올해는 이동국의 K리그 데뷔 20주년이기도 했다.

국가대표팀 경기 진행도 맡고 있는 이정표 장내 아나운서는 홈 관중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며 “K리그 200호 골의 주인공은 누구?”, “대박이 아빠는 누구” 등 다양한 표현을 썼다. 관중들은 그 때마다 한 목소리로 “이동국”을 외쳤다. 아빠 못지않게 유명인사가 된 이시안 군 등 자녀들은 지정 스카이박스의 발코니에서 응원 팻말을 흔들며 이동국에게 힘을 실었다.

 

2014, 2015년에 이어 또 우승

전북은 지난 심판 매수에 대한 징계로 지난해 승점 삭감 징계를 받아 2위에 그쳤다. 올해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참가권도 박탈됐다. ACL에 불참하는 전북은 예년만큼 과감한 투자를 하지 않았고, 경기력이 다소 떨어졌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특히 시즌 전반기에는 제주와 두 차례 맞대결에서 모두 패배하며 한때 1위를 내줬다. 그러나 후반기 승부처인 33라운드, 36라운드에서 제주를 모두 꺾으며 승부처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최 감독은 국가대표팀에서 복귀해 풀타임 지휘봉을 잡은 뒤 징계를 받은 해를 제외하곤 2014, 2015, 2017년 우승에 모두 성공했다. 우승 후 서포터석인 N석뿐 아니라 E석, W석 관중드도 다수가 경기장을 떠나지 않고 우승 세리머니를 함께 했다. K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구장이라는 걸 보여주는 시상식이었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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