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전주] 김정용 기자= 제주유나이티드는 올해 K리그에서 가장 강한 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손에 쥔 트로피는 없다.

제주는 29일 전북현대와 가진 'KEB 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36라운드에서 0-3으로 대패했다. 이 경기에서 승리해야 역전 가능성을 살릴 수 있었던 제주는 패배와 함께 전북에 우승을 내줬다. 남은 두 경기 동안 2위를 지키는 것이 마지막 목표다.

제주는 최근 K리그에서 가장 분명하게 성장한 팀이다. 조성환 감독이 부임한 2015년부터 매 시즌 상위 스플릿을 유지하며 6위, 3위, 2위(현재 진행중)로 순위를 끌어올려 왔다. 올해 3월부터 5월까지 1위를 여러 차례 차지하며 우승 후보로 거론됐다. 올해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에서는 K리그팀 중 유일하게 16강에 진출했다. 경기력과 승률 모두 K리그 정상급 강호로 자리매김했다. 최강희 전북 감독도 여러 차례 제주의 경기력을 인정했다. 전북은 최 감독 부임 이후 처음인 0-4 대패를 전북에 안기기도 했다.

그러나 기복이 크고, 무너질 땐 퇴장 선수까지 나오며 속절없이 무너진다. 36라운드 전북전이 단적인 예다. 제주는 전북전 전까지 클래식 최소실점(전북과 공동, 당시 31실점) 팀이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3골을 내리 내줬다. 박진포가 경고 누적 퇴장을 당하며 역전으로 가는 길이 일찌감치 차단됐다.

제주는 퇴장이 많은 팀이 아니다. 클래식에서 총 3회 퇴장이 나왔다. 평범한 수치다.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에서도 문제의 우라와레즈전에 앞선 7경기에서 한 명도 퇴장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팀의 운명이 걸린 중요한 경기에서 압박감이 심해지면 유독 플레이가 과격해지고 퇴장이 많이 나온다. 제주는 전북전에서 7장이나 무더기 경고를 받았다. 대부분이 불필요한 상황에서 팔꿈치를 쓰며 거칠게 수비하거나 뒤늦게 태클이 들어가 받은 경고였다. 그중 두 장을 박진포가 받으며 퇴장 당했다.

지난 5월 31일 우라와를 상대한 ACL 16강 2차전은 제주의 국제적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혔다. 제주는 경고만 7장을 받았고 그중 두 장을 조용형이 받아 퇴장 당했다. 연장전에서 이미 패배가 확실시된 시점에 권한진, 벤치에서 달려나와 몸싸움에 가담한 백동규까지 3명이나 무더기 퇴장을 당했다. 조용형과 백동규는 K리그까지 출장 정지가 이어지는 중징계를 받았다. 제주의 시즌 운영까지 타격을 입힌 징계였다.

퇴장이 많은 건 기본적으로 압박감이 심한 원정 경기에서 경기력이 뚝 떨어지는 현상 때문이다. 우라와전 당시 제주 선수단은 전반적으로 허둥댔다. 월드컵 본선까지 경험한 베테랑 조용형조차 수비 실수를 반복하다 경고 누적 퇴장을 당했다. 전북전도 마찬가지였다. 제주는 평소보다 몸이 무거웠고 패스가 잘 돌지 않았다. 이창민 정도를 제외하면 부지런하게 공을 받으러 다니며 순환시키는 선수가 없었다. 후방 빌드업과 미드필드의 패스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와 달리 전북전에선 패스 미스가 잦았다. 몸싸움에서도 한 발 늦게 들어간 제주 선수들은 여러 차례 뒤늦은 태클을 했고, 공중볼을 다툴 때 팔꿈치를 썼다.

선수들이 전반적으로 허둥댈 때 경기장 안팎에서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 줄 리더십이 제주의 가장 큰 약점이다. 조 감독의 리더십은 제주 선수단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경기 중 위기에 처하면 특별한 카드로 반전을 꾀하기보다 지켜보는 경우가 많다. 전반전부터 이어진 아슬아슬한 반칙이 후반전에 개선되지 않았고, 제주는 대가를 치렀다.

결국 제주는 승부처에 약했다. 조 감독도 이런 점을 알고 있었다. 전북전을 앞두고 “우라와전처럼 퇴장이 또 나오면 이적 시장에서 내보내버려야 한다”는 농담을 했다. 물론 퇴장 때문에 박진포를 방출할 일은 없다. 선수들이 우라와전을 통해 한 단계 성장했으니 전북전에선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조 감독의 자신감은 통하지 않았다.

이런 면모는 시즌 초중반에 고전하다가 승부처에서 힘을 낸 전북과 대조적이다. 최 감독은 제주전 직전 경기인 강원전에서 김신욱이 경고 누적으로 결장하자 “제주전을 따로 준비하라”는 특명을 주고 제주 대비 개인훈련을 시켰다. 그 결과 김신욱은 제주전 선제골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제주 역시 전북처럼 더블 스쿼드에 가까운 선수단을 갖고 있지만, 조 감독의 전북전 승부수였던 이은범, 권순형, 조용형 카드는 모두 빗나갔다.

조 감독은 우승을 놓친 뒤 “이기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의도대로 되질 않는다. 내가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 반복되는 상황에 대해 감독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승부처에 약한 면모에 대한 해명이나 변명보다는 책임을 인정하는 자세에 중점을 뒀다.

다만 조 감독은 제주의 기복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압박이 심한 경기에서도 꾸준한 승률을 유지하는 전북처럼 강팀의 면모를 지니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조 감독은 “2015년보다 2016년, 2016년보다 2017년에 기복이 더 적었다. 내년에 더 줄여야 할 것 같다. 우라와 1차전 2-1로 이기고 2차전 원정에서 0-3으로 지는 기복. 그런 걸 줄인다면 내년에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정상권에서 경쟁하는 경험을 쌓아가는 만큼 내년의 제주는 더 꾸준하고, 결승전이나 다름없는 경기에서 흔들리지 않는 팀이 될 거라는 기대감이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관련기사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FOOTBALL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