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이탈리아세리에A는 13년 만에 한국 선수가 진출하며 다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수비 축구의 리그라는 통념과 달리 많은 골이 터지고, 치열한 전술 대결은 여전하다. 세리에A와 칼초(Calcio)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김정용 기자가 경기와 이슈를 챙긴다. 가장 빠르고 가장 특별하게. <편집자주>

유벤투스의 독주에 드디어 끝이 보인다. 단 한 번 패배했을 뿐이지만 이번 시즌 구도는 지난 6년과 달라 보인다. 유벤투스가 우승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 ‘절대 1강’에서 내려올 확률이 높다.

15일(한국시간) 이탈리아 토리노에 위치한 알리안츠 스타디움에서 ‘2017/2018 이탈리아세리에A’ 8라운드를 치른 유벤투스는 라치오에 1-2로 패배했다.

라치오의 승리보다 유벤투스의 패배에 더 관심이 가는 이유는 원체 오랜만에 당한 홈 패배라서다. 유벤투스는 알리안츠 스타디움(구 유벤투스 스타디움) 홈 경기에서 절대 강자였다. 세리에A에서만큼은 홈 패배를 거의 당하지 않았다. 지난 2015년 8월 열린 2015/2016시즌 첫 홈 경기 이후 처음이다. 무려 42경기 만이다. 지난 41경기 동안 리그 홈 정적은 38승 3무였다. 홈에서는 초현실적으로 강했다.

특히 유벤투스의 홈 수비력은 지난 두 시즌 동안 압도적이었다. 41경기 무패 행진 동안 무실점으로 막은 경기가 28회나 됐고, 1실점을 내준 경기가 13회였다. 2골 이상 내준 적은 단 하 번도 없었다. 이번 라치오전은 유벤투스가 2015년 4월 피오렌티나전 이후 처음으로 홈에서 2골 이상 내준 경기다.

경기 양상도 흥미로웠다. 라치오는 이미 지난 8월 열린 수페르코파이탈리아나에서 유벤투스에 3-2 승리를 거둔 팀이었다. 자신감을 갖고 강한 전방 압박, 적극적인 빌드업을 통해 유벤투스를 괴롭혔다. 공을 흘린 횟수가 유벤투스 16회, 라치오 10회였다. 라치오는 양팀 모두 실수를 많이 저지르더라도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경기를 원했다.

유벤투스는 평소 보여주는 차분하고 안정적인 경기 운영에 실패한 채 라치오의 의도에 끌려다녔다. 공격수 곤살로 이과인이 토마스 스트라코샤 골키퍼를 강하게 압박해 골이나 다름 없는 가로채기를 해냈으나 공이 골대에 맞고 나오는 등 운이 따르지 않았다.

라치오는 전반 23분 더글라스 코스타에게 선제골을 내줬지만 후반전 초반에 승부를 뒤집었다. 후반 2분, 라치오에서 부활하고 있는 왕년의 유망주 루이스 알베르토가 스루 패스를 했고, 치로 임모빌레가 깔끔한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후반 9분에는 임모빌레가 잔루이지 부폰 골키퍼에게 걸려 넘어지며 얻은 페널티킥을 직접 성공시켰다.

임모빌레는 페널티킥 4골을 포함해 11골을 터뜨리며 득점 선두에 올랐다. 유벤투스는 후반에도 파울로 디발라의 중거리 슛이 골대에 맞고 페널티킥이 스트라코샤에게 막히는 등 끝까지 아쉬운 경기를 했다. 디발라의 페널티킥이 들어갔다면 임모빌레와 마찬가지로 11호골을 넣을 수 있었다.

 

#전국시대가 다가온다

이번 시즌 세리에A 상위권 구도는 심상찮다. 라치오가 승리하면서 두 팀의 승점이 19점으로 같아졌고 상대전적에 따라 라치오가 3위, 유벤투스가 4위로 순위가 뒤집혔다. 그 위에 8전 전승으로 승점 24점을 따낸 나폴리, 7승 1무로 승점 22점을 따낸 인테르밀란이 있다. 5위 AS로마(승점 15)는 조금 뒤쳐져 있지만 잠재력과 경기력을 볼 때 역시 상위권 전력으로 인정받는다.

이들 5팀은 현재까지 물고 물리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뿐 6~20위 팀을 상대로는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유벤투스는 라치오에 패배했고, 라치오는 나폴리에 단 한 번 졌다. 로마가 당한 2패 상대는 인테르와 나폴리였다.

유벤투스는 그동안 로마, 나폴리, 인테르 등의 도전을 받았지만 보통 한 시즌에 한 팀 정도가 도전해 올 뿐이었다. 유벤투스는 가장 탄탄한 선수단으로 꾸준한 시즌을 보내는 힘이 있었다. 후반기 막판이 되면 결국 유벤투스가 선두에 오르곤 했다. 이번 시즌은 다르다. 유벤투스의 본격적인 경쟁자가 서너 팀이나 된다.

유벤투스는 그동안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들을 영입해 전력 격차를 벌렸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레오나르도 보누치가 오히려 AC밀란으로 떠나갔다. 세리에A 구단으로 선수가 유출되는 건 오랜만이었다. 지금 세리에A는 선두권과 최하위권의 양극화가 심하다. 유벤투스 못지않게 막강한 팀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벤투스는 리그 판세가 심상찮다는 걸 정확히 알고 있다.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감독은 “지난 토리노, 사수올로, 아탈란타전에서 이미 경보가 울렸다. 그러나 우린 그걸 무시했다. 집중력이 떨어졌고, 큰 대가를 치렀다. 베르가모(7라운드 아탈란타전) 경기와 오늘에 걸쳐 우린 승점 5점을 잃었다. 우승하려면 매일 매일이 전투라는 걸 실감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유벤투스의 앞선 6연속 우승을 모두 함께 한 안드레아 바르찰리 역시 독주 체제가 깨지는 분위기를 감지했다. “이런 일은 시즌 중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지만, 우린 오늘 경기를 분석해야 한다. 두 경기에서 승점 5점을 잃는 건 드문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르찰리는 “전처럼 증기 롤러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증기 롤러는 아스팔트 도로 공사를 할 때 땅을 눌러 다지는 장비다. 꼼꼼하게 땅을 다지듯, 상대가 추격할 빌미를 주지 않는 유벤투스 특유의 면모를 되찾아야 한다는 발언이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관련기사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FOOTBALL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