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칠레의 ‘2018 러시아월드컵’ 예선 탈락은 우발적인 이변이 아니다.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비슷한 멤버와 철학을 고집하느라 약점이 점점 커졌다. ‘비엘시스타’들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지난 11일(한국시간) 칠레는 월드컵 남미예선 최종전에서 브라질에 0-3으로 패배했다. 남미 10팀 중 5위까지 본선행 가능성이 있는데, 브라질전을 앞두고 3위였던 칠레는 곧바로 아르헨티나 등 3팀에 추월당해 6위까지 떨어졌다. 충격적인 결과였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중이었기에 칠레의 추락은 더 뜻밖이다. 칠레는 최근 두 차례 월드컵 모두 인상적인 경기력으로 16강에 올랐다. 남미 최대 대회인 코파아메리카는 2015년과 2016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남미의 맹주로 떠올랐다. 올해 열린 컨데더레이션스컵은 준우승을 차지했다.

본선행에 실패하자마자 간판 스타 아르투로 비달이 30세 젊은 나이에 대표 은퇴를 암시했다. 브라질을 상대한 칠레 멤버는 비달이 빠졌을 뿐 알렉시스 산체스(아스널), 에두아르도 바르가스(UNAL), 가리 메델(베식타쉬), 마우리시오 이슬라(페네르바체), 곤살로 하라(우니베르시다드데칠레), 클라우디오 브라보(맨체스터시티) 등 기존 멤버 위주였다.

칠레의 전성기는 2007년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이 부임하며 시작됐다. 그때까지 칠레는 월드컵 16강 진출이 단 1회(1998)에 불과하고, 2002년과 2006년 대회 모두 예선도 통과하지 못한 팀이었다. 코파아메리카에서도 2004년 대회 조별리그 탈락, 2007년 대회 8강 등 평범한 성적에 그쳤다.

비엘사 감독은 칠레에 독특한 전술을 이식했다. 엄청난 활동량과 정교한 역할 배분을 바탕으로 경기 내내 압박을 시도하는 축구 방식이 칠레의 젊은 스타들과 조화를 이뤘다. 산체스, 비달, 메델, 이슬라 등 에너지 넘치는 선수들이 비엘사 감독의 주문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면서 전성기가 열렸다. 2010년 당시 산체스와 이슬라는 22세, 비달과 메델은 23세에 불과했다. 대회 내내 맹렬하게 뛰어도 지치지 않았다.

후임자들도 비슷한 축구를 유지했다. 클라우디오 보르기 감독을 거쳐 2012년 선임한 호르헤 삼파올리 감독은 비엘사 시절보다 약간 강도를 낮췄지만 전방 압박 위주로 물러서지 않는 축구 기조를 유지했다. 후안 안토니오 피치 현 감독도 비슷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고착된 축구 스타일과 주전 멤버는 그만큼 흔들리기 쉬웠다. 컨페더컵 준우승 이후 월드컵 예선에서 1승 3패에 그쳤다. 파라과이, 볼리비아, 브라질에 당한 패배 모두 무득점이었다. 칠레의 공격적인 이미지와 달리 무기력한 패배들이 이어졌다.

많이 뛰는 축구로 10년 넘는 세월을 보낸 칠레의 간판 스타들은 과거만큼 강력한 장악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A매치 100경기 안팎을 소화한 황금 세대 이슬라, 메델, 하라, 장 보세주르(우니베르시다드데칠레), 호르헤 발디비아(콜로콜로), 산체스, 비달 등은 경험이 쌓인 대신 과거만큼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한다. 게다가 브라질전에서는 비달과 마르셀로 디아스(UNAM)가 빠져 중앙 미드필더 조직이 깨졌다.

비달과 디아스가 없을 때 이들을 대체한 선수들을 보면 칠레 대표팀이 얼마나 고착화된 멤버로 오랜 시간을 보내 왔는지 알 수 있다. 후계자를 발굴하지 못한 칠레는 오히려 더 나이가 많은 후보 선수들을 선발로 세워 브라질을 상대했다. 발디비아는 34세, 호세 푸엔잘리다는 32세였다.

칠레의 이번 2연전 소집 멤버 중 23세 이하는 단 5명(엔트리 포함 선수는 4명)이었고, 그중 2명이 교체로 출장한 것이 전부였다. 선발 멤버 대부분이 2010년부터 지금까지 유지됐다. 칠레의 다음 메이저 대회는 2019년 브라질에서 열리는 코파다. 2년 뒤에는 산체스를 비롯한 주축 멤버 대부분이 30대다. 상당수가 그 전에 은퇴할 수도 있다.

칠레의 전성기는 저물어가고 있다. 전성기 동안 얻은 건 성적만이 아니었다. 용감하면서도 조직력이 뛰어난 팀 컬러를 통해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러시아월드컵은 용감무쌍한 칠레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대회였다. 칠레의 황금세대는 제대로 된 고별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황급하게 전성기를 마무리해야 한다. 그 뒤엔 혹독한 세대교체가 따를 것이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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