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스페셜 원’이 오랜만에 이름값을 했다. 주제 무리뉴 감독은 올 시즌 두 번이나 뼈아픈 패배를 안긴 ‘친정’ 첼시와 ‘숙적’ 안토니오 콘테 감독을 상대로 '전술적' 승리를 거뒀다.

무리뉴 감독은 현지시간으로 16일 영국 맨체스터 올드트라포드에서 열린 ‘2016/2017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 33라운드 경기에서 거둔 2-0 승리로 첼시에서 겪은 경질, 맨체스터유나이티드 부임 이후 전반기에 보인 실망스런 모습을 만회했다.

스리백 전술의 세계적 유행을 이끈 콘테 감독은, 핵심 윙백 마르코스 알론소의 부상 이탈에도 같은 방식으로 맨유 전에 임했다. 맨유와 전반기 리그 경기에서 4-0 승리, 불과 한 달 전에 있었던 FA컵 맞대결에서 1-0 승리를 거둔 콘테 감독의 입장에선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전술에 손을 댈 필요가 없었다.

능동적으로 대응한 쪽은 설욕을 위해 벼르고 벼른 무리뉴 감독이다. 선발 명단을 통해 무리뉴 감독이 얼마나 용감한 인물인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무리뉴가 이브라히모비치를 벤치에 남긴 이유

무리뉴 감독은 자신의 그라운드 위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벤치에 대기시켰다. 2선의 창조자 헨리크 미키타리안도 대기 명단에 빠졌다. 앙토니 마르샬과 웨인 루니 등은 아예 명단에도 들지 못했다. 무리뉴 감독이 공격 선봉에 세운 선수는 이브라히모비치가 징계로 빠진 기간에 선발 출격 기회를 잡았던 마커스 래시포드였다.

결과론적으로 본다면 전술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이다. 그러나 킥오프전으로 시계를 돌려보면, 올 시즌 전체 공식 경기에서 무려 28골을 넣은, 그 동안 꾸준히 선발로 뛰며 계속 공격 포인트를 만들어온, 팀내 가장 화려한 스타를 벤치에 대기시키는 선택을 내리기는 어렵다.

더구나 그에 대한 대안으로 아직 만 20세에 불과한 유망주를 ‘빅매치’에 선발로 내세우는 것은 쉽게 내릴 수 있는 선택이 아니다. 무리뉴 감독이 큰 심장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단이며, 그런 과감한 시도만 극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정이다.

무리뉴 감독은 첼시를 괴롭히기 위해선 공을 쥐고, 공을 통해 마법을 부리는 선수보다, 공이 없을 때 부지런한 움직임, 그리고 빠른 스피드로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기술자 보다 노동자가 필요한 경기였다. 무리뉴 감독도 경기 후 인터뷰에서 "첼시 스리백 보다 빠른 선수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대인방어 시도, 에레라가 아자르를 막은 이유

무리뉴 감독의 선발 명단에서 용기를 읽었다면, 경기가 시작된 이후에는 그의 창의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맨유의 명단을 보고 예상할 수 있는 포진은 4-2-3-1 포메이션이었다. 다비드 데헤아가 골문을 지키고 마테오 다르미안-마르코스 로호-에릭 바이-안토니오 발렌시아가 포백, 안데르 에레라와 마루안 펠라이니가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로 서고, 애슐리 영-폴 포그바-제시 린가드가 래시퍼드를 지원하는 2선 미드필더로 배치될 줄 알았다.

무리뉴 감독의 전략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보기에 따라 3-5-2와 4-4-2로 해석할 수 있는 첼시에 특화된 대응 전술을 준비했다. 현대 축구에선 자취를 감춘 것으로 보였던 ‘대인 방어’를 전격 시도했다. 맨유 선수들은 지역이 아닌 사람을 기준으로 포지션을 설정했다.

센터백 로호와 바이는 첼시의 묵직한 원톱 디에구 코스타를 상대했다. 레프트백 다르미안은 우측면 공격수 페드로 로드리게스를 막았다. 왼쪽 측면 공격수 아자르를 막은 선수는 라이트백 발렌시아가 아니었다. 미드필더 에레라가 아자르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이 부분에서 무리뉴 감독의 창의적 해법을 찾을 수 있다.

무리뉴 감독이 준비한 ‘대인 방어’는 동네 축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순한 일대일 마크가 아니다. 빠른 스피드를 갖춘 발렌시아를 더 높은 위치에 두면서 역습 상황의 속도감을 살리고 상대 레프트백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의 전진을 제어했다. 에덴 아자르와 아스필리쿠에타 사이의 간격이 벌어진 이유다. 아자르는 외로운 경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들 사이에 펠라이니가 배치되어 네마냐 마티치의 전진을 몸으로 부딪치며 막았다. 

첼시를 지휘하던 시절 아자르를 총애했던 무리뉴 감독의 1차 미션은 아자르를 철저히 고립시키는 것이었다. 아자르가 힘을 쓰지 못하면 두 명의 센터백의 밀착 방어를 당한 코스타도 덩달아 고립되고, 페드로 역시 다르미안의 그림자 수비에 막히면서 이들의 장기인 공간을 활용한 콤비네이션 플레이가 구현될 수 없다. 첼시의 강점은 좌우 윙백의 직선적인 움직임과 간결한 플레이인데, 아스필리쿠에타가 전진하지 못하자, 빅터 모지스 역시 공을 소유했을 때 표류했고, 영의 밀착 수비를 따돌리지 못했다. 

맨유 선수들은 더 많이 뛰고, 더 집중해서 움직이며 첼시의 플레이를 못하도록 했다. 무리뉴 감독은 상대가 잘 하는 것을 못하도록 하는 수비 전략을 만드는 데 귀재다. 미드필드진 맨 뒤에서 빌드업의 기점 역할은 물론, 가장 부지런한 움직임을 보이는 은골로 캉테 마저도 포그바의 전진 압박과 공격 전개 시 대인 방어에 당황했다. 맨유는 첼시 선수가 어느 한 명도 빈 공간에서 홀로 움직일 수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첼시 스리백의 허점을 찾고, 공략하다

공격진 구성도 첼시의 스리백을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래시포드와 린가드가 투톱을 이뤘다고 말했지만, 일반적인 형태의 투톱이 아니다. 첼시 수비는 수적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오히려 스리백이 잉여 상태가 되는 상황이 자주 벌어졌다. 래시포드가 원톱처럼 전방 꼭짓점에 자리해 세 명의 수비수 중에 한 명은 크게 할 일이 없어졌다. 

래시포드는 좌우 측면으로 넓게 움직이며 전방 압박과 침투 플레이를 통해 두 명의 센터백 사이에서 고립되는 일이 없었다. 래시포드가 워낙 활발하게 이동하며 움직여 스리백 수비진은 막을 선수 없이 서 있다가 배후에서 들어오는 상대 습격에 노출되는 일이 잦았다. 래시포드의 공격 파트너 린가드의 출발 포지션은 우측면이었다. 래시포드와 보조를 맞춰 투톱 자리로 가기도 했지만, 왼쪽 측면으로 깊게 이동하기도 했고, 2선 지역에 자주 머물러 스리백의 커버 범위 밖에 있었다. 

첼시 미드필드진은 이미 맨유가 배치한 5명의 중원 선수들에 일대일로 대응되었기 때문에 스리백과 협업이 어려웠고, 결국 맨유가 공을 쥐고 역습으로 전개하는 찰나의 순간에는 기습적으로 튀어 올라와 이뤄지는 공간 습격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전반 7분 에레라의 스루 패스에 이은 래시퍼드의 배후 침투, 그리고 득점 과정은 올 시즌 첼시에서 장점만 발휘하던 캉테와 루이즈를 무용지물로 보이게 했다.

이른 시간 선제골이 맨유 선수단에 자신감을 불어넣었고, 이 자신감이 체력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경기 집중력을 높여줬다. 플랜A가 성공하기 위한 중요한 재료는 빠른 선제골이다. 

맨유의 밀착 개인 방어를 풀기 위해 첼시는 사이드 체인지를 대응법으로 시도했다. 모지스와 아스필리쿠에타가 자리를 바꿔봤고, 아자르도 반대편으로 건너가 봤다. 맨유 수비는 이에 현혹되지 않았다. 에레라는 아자르의 동선을 그대로 따라갔다. 모지스와 아스필리쿠에타는 그정도로 쫓아가지 않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위치에서 각자의 개성이 반감됐다. 영과 발렌시아의 끈질긴 움직임은 분절된 모지스와 아스필리쿠에타를 쉽게 차단했다.

맨유의 전략은 대성공이었다. 유럽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한 명으로 평가되는 아자르는 90분간 단 한 차례의 돌파도 성공하지 못했다. 코스타가 침묵한 것은 물론, 첼시는 90분 동안 단 하나의 유효 슈팅도 기록하지 못했다. 

#교체 전략도 무리뉴가 이겼다

후반전 초반 맨유는 공격 상황에서 더 용감하게 전진했고, 영의 돌파 시도에 이어 흐른 볼을 에레라가 과감한 슈팅으로 연결해 추가 득점에 성공했다. 하프타임에 사기를 회복하고 나온 첼시 선수들을 심리적으로 더욱 몰아붙인 골이었다. 아자르의 동선을 따라다니던 에레라는 어느 새 영이 돌파를 시도하던 왼쪽 지역으로 침투해 첼시의 수비 범위를 완전히 벗어나 자유롭게 슈팅했다. 공격 전개 상황에서 맨유 선수들은 첼시 수비의 시선을 벗어나는 영리한 위치 설정으로 날카로운 모습을 보였다.

맨유는 전술적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선수들이 골 맛을 봤다. 묵직한 이브라히모비치 대신 왕성함을 무기로 선발 자리를 꿰찬 래시포드가 아주 중요한 선제골을 넣었다. 공격 재능이 뛰어나지만 아자르 봉쇄라는 수비적 임무를 200% 수행한 에레라는 래시포드의 선제골을 예리한 스루패스로 도운 것에 이어 후반전도 맨유가 분위기를 장악할 수 있게 했던 두 번째 골을 넣었다. 1득점 1도움을 올린 에레라는 이날 맨유의 모든 선수들이 제 몫을 다하며 만점 활약을 했지만, 자신이 그 중에서도 군계일학이라는 것을 기록으로 입증했다. 

콘테 감독은 후반 9분 모지스를 빼고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투입해 맨유의 대인 방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옵션을 투입했다. 장악당한 측면 대신 중앙 지역 공략에 나섰다. 후반 21분에는 마티치를 빼고 윌리안을 투입했다. 윌리안이 측면으로 가고, 아자르가 중앙 지역으로 이동해 에레라의 대인 방어에서 벗어나보려 했다. 

무리뉴 감독은 후반 15분 투톱 중 한 명인 린가드를 빼고 마이클 캐릭을 투입해 중원을 강화했다. 맨유는 발렌시아를 뒤로 내리고 다르미안을 벌려 포백으로 전환하고, 그 앞에 캐릭을 세워 위험 지역 공간을 봉쇄했다. 영-포그바-펠라이니-에레라가 라인을 맞춰 4-1-4-1 포메이션을 이뤄 타이트한 두 줄 수비를 구축하고, 라인 사이로 빠져나오는 선수를 커버할 추가 자원 하나를 둬서 수비 균형을 유지했다. 

첼시는 우측 센터백 커트 주마를 라이트백 자리로 이동시켜 포백으로 전환했다. 캉테와 루이즈, 케이힐 등 세 명의 선수를 제외한 전원을 공격에 가담시켰으나 맨유가 자기 진영을 완전히 잠그고 역습 기회를 도모하며 시간을 보냈다. 후반 2분 만에 2-0으로 달아난 맨유는 급할 게 없었고, 자신감이 떨어진 첼시는 해법을 찾지 못했다. 

첼시는 후반 38분 주마를 빼고 로프터스치크를 투입해 공격 숫자를 더 늘렸고, 맨유는 래시포드를 빼고 이브라히모비치를 투입해 첼시 수비진의 뒤통수를 가렵게 만들었다. 무리뉴 감독은 후반 추가 시간에 영을 빼고 포수멘사를 투입하며 첼시 선수들의 마음을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무리뉴 감독이 원하는 대로 시간이 잘 흘렀고, 맨유는 2-0 승리로 지난 두 번의 첼시 원정에서 당한 ‘영패’를 갚아줬다. 

여러 논란 속에도 맨유는 리그 22연속 무패를 달리며 4위 이내 진입 희망을 높였다. 이는 올 시즌 유럽 주요 5대리그에서 최장기 무패 기록이다. 맨유는 전반기 첼시전 0-4 패배 이후지지 않고 있다. 무리뉴 감독의 힘이 드러나고 있다. 

프리미어리그는 33라운드까지 진행됐지만 맨유는 다른 팀 보다 두 경기를 덜 치른 가운데 승점 60점에 도달했다. 4위 맨체스터시티와 승점 4점 차이. 덜 치른 경기를 치르면 추월의 가능성이 생긴다. 우승을 예약한 것으로 보였던 첼시(75점)는 2위 토트넘홋스퍼(71점)에 4점 차로 쫓기게 됐다. 마지막에 웃어야 진짜 승자다. 맨유가 리그 타이틀을 탈환할 가능성은 적지만, 맨유는 올 시즌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는 희망과, 2017/2018시즌에는 리그 우승에 도전할 수 있다는 실마리를 찾았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래픽=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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