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이탈리아세리에A는 13년 만에 한국 선수가 진출하며 다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수비 축구의 리그라는 통념과 달리 많은 골이 터지고, 치열한 전술 대결은 여전하다. 세리에A와 칼초(Calcio)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김정용 기자가 경기와 이슈를 챙긴다. 가장 빠르고 가장 특별하게. <편집자주>

인테르밀란이 드디어 1위에 올랐다. ‘2017/2018 이탈리아세리에A’ 시즌 초반부터 좋은 흐름을 이어 오던 인테르는 3일(한국시간) 열린 키에보베로나와의 15라운드 홈 경기에서 5-0 대승을 거뒀다. 기존 선두인 나폴리가 15라운드에서 유벤투스에 0-1로 패배하며 선두가 바뀌었다.

현재 세리에A 무패 팀은 12승 3무로 순항 중인 인테르(승점 39)뿐이다. 15라운드 승점 39점은 인테르가 우승했던 2006/2007시즌 이후 역사상 두 번째다. 그 뒤를 나폴리(승점 38), 유벤투스(승점 37), AS로마(승점 34) 등이 따르고 있다.

키에보전은 인테르에 있어 고비였다. 핵심 선수들이 대거 결장했기 때문이다. 중앙 수비수 주앙 미란다와 수비형 미드필더 로베르트 갈리아르디니가 징계로 전력에서 제외됐다. 미드필더 마티아스 베시노는 부상으로 인해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가장 선수층이 얇은 중앙 수비, 중앙 미드필더에 집중적으로 결원이 발생했다.

얇은 선수층은 이번 시즌 인테르의 대표적인 약점이다. 유럽대항전에 불참하기 때문에 한정된 멤버로도 시즌을 보내기에 체력 부담은 없다. 그러나 전술이 단조로워지고, 결원이 생길 경우 크게 흔들릴 우려가 있었다.

주전이 다수 빠진 상태에서도 키에보전을 훌륭하게 치렀다는 건 인테르에 의미가 크다. 특히 한때 주장이었지만 지난 시즌 헐시티로 임대되는 등 하락세가 완연했던 센터백 안드레아 라노키아는 시즌 첫 선발 경기에서 무난한 수비로 풀타임을 소화했다.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도태된 상태였던 주앙 마리우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보직을 바꿔 약 2개월 반만에 선발 출장을 했고, 역시 무난한 경기력을 보였다.

왼쪽 윙어 이반 페리시치의 해트트릭이 돋보인 경기였다. 전반 23분 다비데 산톤의 슛이 골키퍼 선방에 막히자 흘러나온 공을 냉큼 차 넣으며 페리시치의 득점이 시작됐다. 후반 12분 페리시치가 간결한 드리블 돌파에 이어 왼발 강슛으로 골을 터뜨리며 양발을 모두 잘 쓴다는 장점을 보여줬다. 후반 추가시간 주앙 마리우의 슛이 문전에서 굴절되자 페리시치가 재빨리 마무리하며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주포 마우로 이카르디는 전반 38분 골문이 너무 작게 보이는 각도까지 공을 치고 간 뒤 특유의 정교한 슛으로 골을 뽑아냈다. 후반 15분에는 장신 수비수 밀란 스크리니야르가 기습적으로 속공에 가담, 안토니오 칸드레바의 크로스를 다이빙 헤딩슛으로 마무리했다.

이번 시즌 인테르의 전술은 그리 새울 것이 없다. 4-2-3-1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평범한 축구다. 특별한 건 2000년대 중반부터 세리에A에서 가장 뛰어난 ‘4-2-3-1 장인’이었던 루치아노 스팔레티 감독의 팀 운영이다.

인테르 선수들은 역할 분담이 잘 돼 있다. 이카르디가 최전방에서 득점을, 왼쪽 윙어 페리시치는 문전 침투를 통한 득점 지원을 주로 담당한다. 오른쪽 윙어 칸드레바는 측면 돌파와 크로스를 통해 공격 기회를 창출한다. 보르하 발레로가 수비형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를 오가며 패스를 뿌리고 경기를 지휘한다. 다른 미드필더들이 전술에 따라 발레로와 호흡을 맞춰 중원을 장악한다.

키에보는 좁게 뭉쳐 선 수비진으로 버텨보려 했으나 인테르가 경기장을 넓게 쓰며 흔들자 쉽게 기회를 내줬다. 인테르는 슛 시도 횟수에서 39회 대 7회를 기록, 압도적인 주도권을 득점 기회로 치환하는데 성공했다. 유효슛만 해도 13회 대 4회였다.

승승장구하는 인테르는 팀 사기도 최고조에 올라 있다. 페리시치는 해트트릭 후 가진 인터뷰에서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영입 제안이 왔을 때) 잔류를 결정하는데 스팔레티 감독이 큰 영향을 미쳤다”며 감독에게 공을 돌렸다. 라노키아는 “인테르에서 수년 동안 뛰어 봤지만 지금처럼 단합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사미르 한다노비치 골키퍼가 2021년까지 계약을 연장했고, 이카르디가 “인테르에서 쫓겨나지 않는다면 선수 생활 내내 여기서 뛰고 싶다”고 말한 것이 알려지는 등 좋은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1위에 올랐지만 인테르는 갈 길이 멀다. 4위와 승점차가 5점에 불과할 정도로 선두권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한두 경기만 놓치면 바로 순위가 3, 4개씩 급락할 수 있다. 전술적으로 민감한 세리에A 감독들이 후반기로 들어가는 20라운드부터 인테르 파훼법을 들고 나올 가능성도 있다. 주전 선수가 부상당했을 경우 다른 팀보다 큰 타격이 예상된다.

인테르는 큰 돈 들이지 않고 선수층을 보강하기 위해 내년 1월 장쑤쑤닝 소속 하미레스를 임대 영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인테르행이 확정적이라고 알려졌던 하미레스의 상항은 최근 다시 변했다.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에 따르면 장쑤 측이 하미레스를 쉽게 놔주고 싶어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구단은 중국의 쑤닝 그룹을 모기업으로 하는 ‘계열사’ 관계다. 하미레스 이적 여부는 그룹 내 역학 관계와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테르가 우승에 근접했던 마지막 시즌은 2010/2011시즌이다. 역사적인 3관왕 바로 다음 시즌이었고, 이때 2위를 차지했다. 그 뒤로 6시즌 동안 4위에서 9위 사이를 오가며 중상위권 성적에 그쳤다. 이번 시즌은 달라졌다. 지난 3년간의 집중 투자가 명장 스팔레티 감독을 만나 마침내 결실을 맺는 중이다. 인테르는 우승의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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