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서귀포] 김정용 기자= 선발 멤버를 과감하게 대거 교체하는 제주유나이티드의 승부수가 선두 전북현대를 잡아먹었다. 하락세에 있던 제주는 거칠 것 없이 질주하던 전북을 전략과 패기로 꺾었다.

12일 제주도 서귀포시에 위치한 제주 월드컵경기장에서 ‘KEB 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20라운드를 치른 제주가 전북을 2-1로 꺾었다. 제주는 지난 5월 전북 원정에서 4-0 승리를 거둔데 이어 올해 가진 두 차례 대결에서 전북을 모두 꺾었다.

 

제주의 과감한 선택, 전북 상대로 신인 투입

제주는 이틀 전 수원삼성 원정을 다녀온 선발 멤버에서 7명이나 바꿨다. 새로 들어온 선수 중엔 골키퍼 김호준, 수비수 김원일, 미드필더 이창민 등 주전급 선수도 있지만 의외인 이름들도 있었다. K리그 클래식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했던 프로 2년차 미드필더 이동수, 올해 신인으로 앞서 5경기를 소화한 공격수 이은범 등이었다. 수비수가 한 명 더 투입되며 포메이션도 바뀌었다. 최근 주로 쓴 포백 대신 시즌 초반의 스리백으로 돌아갔다.

반면 전북은 사흘 전 울산현대를 4-0으로 대파한 멤버가 거의 그대로 나왔다. 센터백 김민재가 경고 누적으로 빠진 것 외엔 완전히 똑같았다. 기세가 더 좋은 멤버였고, 제주보다 휴식 시간도 하루가 더 길었다. 최강희 전북 감독은 큰 변화를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경기 전 태도도 최 감독이 훨씬 여유만만했다. 최 감독은 제주의 대대적인 변화를 예상했다며 “나도 이런 적이 많다. 두 경기를 동시에 준비한 것”이라고 했다. 수원전과 전북전 사이에 휴식 시간이 이틀뿐이니, 더블 스쿼드를 갖춰 놓은 제주가 별도의 선수단을 운용하는 것도 그럴 만하다는 것이다. 최 감독은 주전급 미드필더 신형민, 원톱 이동국 등 충분히 바꿀 수 있는 멤버들조차 변화를 주지 않고 울산전 멤버를 완전히 신뢰했다.

반면 조성환 제주 감독은 경기 전부터 각오에 차 있었다. “제주의 승리 키워드는 자신감, 열정, 패기다. 전략도 중요하지만 우리 팀에 제일 결여된 자신감을 되찾아야 한다. 오늘 선수 구성이 실패할 수도 있지만 장기 레이스까지 감안했다. 권순형과 멘디 등은 휴식이 필요했다. 전북은 시간과 공간을 주면 안 되는 팀이다. 우린 콤팩트한 대형을 유지하며, 전북이 솔로 플레이를 못 하게 해야 한다.”

 

이동수 기용한 제주 MF, ‘최강’ 전북보다 한 수 위

제주의 전략은 전반전 초반에 완벽하게 적중했다. “전북이 솔로 플레이를 못 하게 만들겠다”는 조 감독의 전략은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K리그에서 가장 돌파력이 좋은 로페즈는 아예 돌파를 시작할 공간 자체를 찾지 못했다. 안현범은 원래 공격적인 선수지만, 이날 로페즈를 틀어막는데 많은 에너지를 썼다.

제주 미드필더들의 활동량과 집중력이 한 수 위였다. 이재성, 정혁, 장윤호에 윙어로 배치된 이승기까지 가세하면 전북의 중원 장악 능력은 K리그 최고다. 그러나 전북의 장악력은 평소보다 떨어졌다. 제주 미드필더들은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후방에서 안정적인 빌드업을 해 냈고, 전북 압박의 빈틈을 찾아 공을 받아냈다. 윤빛가람은 지난 수원전보다 후방에서 활동하며 더 안정적으로 패스를 뿌렸고, 이동수는 제주 1군 데뷔전을 치르는 선수라기엔 기대 이상으로 뛰어난 ‘패스 앤드 무브’를 보여줬다. 이창민은 중원 장악과 공격수 수준의 공격력을 동시에 보여주며 맹활약했다.

제주 플레이를 완성한 건 전방의 진성욱과 이은범이었다. 두 공격수 모두 외국인 공격진에게 밀려 각각 시즌 1골에 그친 상태지만, 조 감독은 둘에게 기회를 줬다. 에너지가 넘치고 속공 능력이 있는 두 선수는 끝없이 전북 수비수들의 배후를 노렸고, 적극적인 전방 압박으로 실수를 유발하려 했다. 덥고 습한 서귀포에서 열리는 주중 경기는 집중력 싸움의 성격이 강했다. 제주는 집중력에서 앞서가고 있었다.

전반 19분 제주의 선제골은 두 공격수의 합작품이었다. 속공 상황에서 이은범의 패스를 받은 진성욱이 전속력을 유지하면서 팬텀 드리블을 하는 놀라운 운동능력을 보여줬고, 헐레벌떡 백업 수비를 하러 온 김진수가 드리블에 당해 넘어졌다. 진성욱의 마무리 슛은 재빨리 달려 나온 홍정남 골키퍼에게 막혔지만 옆으로 흐른 공을 이은범이 재빨리 차 넣었다. 슈팅 과정에서 파울이 있었는지 비디오 판독 시스템(VAR)로 확인하는 절차에 이어 제주의 골이 선언됐다.

전반 41분 전북의 집중력 문제가 마침내 추가 실점으로 이어졌다. 홍정남 골키퍼의 패스가 수비수 임종은을 향하지 않고 빗나가는 큰 실수가 나왔다. 이 공을 냉큼 주운 이창민이 찰 듯 말 듯한 드리블로 임종은이 달라붙지 못하게 한 뒤 재빨리 낮고 빠른 슛을 날렸고, 임종은과 홍정남 모두 자신들의 실수를 수습하는데 실패했다.

전북은 전반 43분 만회골로 늦게 전에 희망을 살렸다. 왼쪽 측면에서 전반 내내 봉쇄돼 있던 로페즈는 지공 상황에서 중앙으로 이동, 이재성 및 이승기와 원터치 패스를 주고받으며 제주 수비수들의 봉쇄에서 벗어났다. 슈팅 타이밍을 잡은 로페즈가 강력한 슛으로 득점했다.

 

지키는 집중력까지 보여준 제주

후반전에 경기 양상은 전북의 일방적인 공세와 제주의 간헐적인 역습으로 바뀌었다. 전북은 후반 12분 이승기와 장윤호를 빼고 이동국과 신형민을 투입, 포메이션을 3-4-1-2로 바꾸며 승부를 걸었다. 제주는 이은범을 빼고 윙백 배재우를 투입하는 수비적인 교체로 대응했다. 전북이 양쪽 윙백을 최대한 올리고 롱볼을 띄우기 시작하자 제주는 그저 버텨야 하는 처지가 됐다.

제주가 고질적으로 승부처에 약하다는 걸 감안하면 쉽지 않은 양상이었다. 그러나 제주는 후반 내내 집중력을 유지하는 수비로 다시 한 번 조 감독의 선택이 옳았다는 걸 증명했다. 로페즈는 전반전보다 더 위협적인 드리블을 했지만 권한진과 오반석이 끈질긴 슬라이딩 태클로, 그걸로 안 되면 아슬아슬하게 파울이 되지 않을 정도로 손을 써 가며 어떻게든 수비했다. 김신욱을 향한 롱볼도 여러 차례 막아냈다. 전북이 기어코 날린 슛들은 아슬아슬하게 골대를 빗나갔다. 전북은 에델까지 투입해봤지만 효과가 적었고, 제주는 쥐가 난 이창민과 지친 안현범을 차례로 빼고 문상윤과 멘디를 넣으며 선수들의 체력을 보전하려 했다.

후반 추가시간, 활동량이 적다는 편견이 있는 윤빛가람이 신형민의 롱킥에 달려들어 몸으로 블로킹해낸 건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김신욱이 날린 최후의 슛은 골대를 살짝 빗나갔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경기장에 쓰러진 선수들을 향해 벤치에 있던 이창근이 다가가 한 명씩 격려를 했다.

 

제주는 소득이 큰 승리를 거뒀다

“선수들의 자신감, 경기 전 미팅에서 주문했던 열정과 패기를 끝까지 보여줬다.”

조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기대한 투지가 마침내 발휘돼 만족스럽다고 했다. 후반 막판에 일방적으로 밀린 건 개선해야겠지만, 이날 같은 집중력을 진작 발휘했다면 하락세를 겪지 않았을 거란 아쉬움도 있었다. 최 감독도 “제주 스리백에겐 볼 소유를 주더라도 미드필더를 압박하라고 주문했는데 그게 잘 안 돼서 실점으로 이어졌다”며 중원 장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걸 인정했다.

제주는 이은범, 이동수를 완전히 주전급 멤버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어려운 전북을 잡았을뿐 아니라 주전급 선수단을 확충하는 효과까지 봤다. 공격수 마르셀로, 윙어 황일수가 이적해 나간 자리를 메울 수 있는 인재들을 찾았다는 점 역시 소득이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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