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톈진(중국)] 김정용 기자= 아시아 축구를 찾은 수많은 스타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을 한 명만 꼽는다면 파비오 칸나바로(44)가 되어야 한다. 2006년, 이탈리아를 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칸나바로는 축구계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한국인 수비수 권경원이 칸나바로 감독 아래서 뛸 수 있게 됐을 때 흥분을 감추지 못한 것도 그럴 만했다.

‘풋볼리스트’는 톈진췐젠에서 감독 생활 중인 칸나바로를 지난 5월 28일 췐젠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칸나바로는 시즌 초반의 극심한 부진을 뚫고 팀을 막 연승 가도에 올려놓은 차였다. 인터뷰는 칸나바로의 요청에 따라 현역 시절이 아닌 감독 생활에 초점을 맞춰 진행됐지만, 한국인 선수 권경원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리고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대한 마지막 멘트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 먼저 2연승 축하한다. 어제(5월 27일) 톈진테다를 3-0으로 이긴 건 당신의 시즌 첫 연승이었고, 더비 매치였고, 시즌 첫 다득점 승리였다.

행복했다. 골을 많이 넣어서 그랬던 건 아니고, 홈에서 많은 득점 기회를 만들며 좋은 경기를 했기 때문이다. 우리 팀의 정신 자세가 좋았다. 더비라서 특별하게 준비하진 않았다. 서포터들에겐 큰 의미가 있겠지만 감독에게 더비는 평범한 경기일 뿐이다. 승점 3점이지 4점이 아니지 않나?

 

- 올해 승격한 췐젠은 상위권 도약을 목표로 했지만 한동안 고전했다. 지금은 16팀 중 6위까지 오르며 상승세다. 앞으로 목표는?

가장 기본적인 목표는 잔류다. 다만 어떤 축구로 잔류하느냐 역시 내겐 중요하다. 좋은 경기를 바탕으로 1부에 남고 싶다. 우리 팀 선수들에게 내 사고방식을 전파할 거다. 우리 팀이 뒤로 물러나서 수비만 하다가 카운터 어택을 하는 건 원하지 않는다. 어떤 상대를 만나든, 그라운드 어디에서든 ‘축구’를 하길 원한다. 좋은 축구를 바탕으로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과 우승 경쟁까지 해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기다릴 때다.

 

- 축구에 대한 철학이 확고한 것 같은데

내 철학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모든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주는 것, 모든 선수들이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하는 것, 선수들이 무분별한 롱 킥을 자제하고 두려움 없이 플레이를 하도록 만드는 사고방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 모든 철학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경기를 제어하고 이기는 것이다. 어제 경기는 내 철학에 따라 볼 때 괜찮았다. 경기를 본 사람이라면 우리가 뭘 어떻게 준비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거다.

 

- 2011년 선수로서 은퇴한 뒤 줄곧 중동과 중국에서만 지도자 생활 중이다. 미래에 대한 계획을 듣고 싶다.

물론 유럽으로 돌아갈 거다. 여길 떠날 때가 되면 다음 행선지는 유럽이다. 그 다음은 1부 리그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국가대표팀 감독직. 모든 감독의 꿈을 나도 똑같이 꾼다. 그러나 좀 더 가까운 미래의 목표는 췐젠에 있다.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가는 것이다. 3년 안에 달성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 지난해 6월 지안피에로 벤투라 감독이 이탈리아 대표팀을 맡을 때 당신이 코치로 합류한다는 예측 보도가 있었다. 벤투라 감독이 2년 정도 지도한 뒤엔 당신이 이탈리아를 맡을 거라는 전망까지 함께였다. 그러나 당신은 벤투라 감독과 거의 같은 시점에 췐젠 사령탑이 됐다.

그건 그냥 루머일 뿐이었다. 난 그 때 췐젠에 집중하고 있었다. 슈유후이 회장이 내게 말해준 프로젝트는 아주 훌륭했고 야망에 넘쳤다. 나는 제안을 수락했고, 지난 시즌 2부 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지금은 1부에서 괜찮은 순위에 있다. 올해 하반기를 통해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거다.

 

- 구단주는 야심이 있어 보였다. 여러 선수 영입을 고려하고 있던데 감독으로서 기대가 될 것 같다.

우리 팀, 유럽에서 아주 유명하다. 지난 반년 동안 우리 팀에 오고 싶어하는 선수가 얼마나 많았는지 아나? (웃음) 기사를 보면 아주 뭐 코스타에, 오바메양에. 최고 수준의 선수 한 명을 영입하고 싶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규정(6월부터 슈퍼리그 구단은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때 이적료와 같은 액수를 유소년 발전기금으로 내야 한다)이 있다. 우리 회장이 규정 도입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선수를 찾고 있다. 야심가다.

 

- 당신은 너무 유명한 선수보다 열심히 뛸 선수를 찾는다고 알려져 있다. 췐젠이 반년 전 슈퍼스타가 아니라 부지런한 공격수 니콜라 칼리니치 영입을 추진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당연하다. 이름은 그저 이름일 뿐, 선수가 최고 수준의 기량과 열심히 뛰려는 마음가짐을 모두 갖춰야 영입한다. 중국 선수들에게 모범이 될 정도의 정신 자세가 있어야 한다.

- 중국 축구는 팽창하고 있다. 내부자로서 느끼기엔 잘 발전하는 것 같은지

발전 중이라고 느껴 왔다. 그런데 올해 도입된 외국인 선수 엔트리 한도 축소가 문제다. 발전이 가로막혔다. 규정 때문에 인내심이 더 필요해졌다. 디에고(권경원의 별명) 같은 아시아 선수들이 뛸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도 규정이 다시 바뀌었으면 한다. 감독으로서 이상하고, 어렵다고 느낄 수박에 없는 규정이다. 우리 팀 외국인 선수가 5명인데 뛸 수 있는 자리는 3개 뿐이다. 악셀 비첼과 파투를 선발 라인업에 넣으면 나머지 한 자리를 3명이 경쟁해야 한다. 다행인 건 많이 못 뛰는 외국인 선수들이 다들 프로페셔널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요즘엔 디에고가 나오는데, 다음 경기에 또 디에고가 나오더라도 명단에서 빠진 선수들은 동기부여를 잃지 않을 것이다.

 

- 권경원, 즉 디에고는 어떤 선수인가? 한국 대표 출신이 아닌데 영입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왜 대표팀에 못 가는지 모르겠다. 퍼포먼스에 아주 만족한다. 지금은 일이 꼬였지만, 원래 선발로 쓰려고 데려온 선수다. 여러 면에서 아주 높은 수준이라고 생각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늘 자신에 차 있다는 것이다. 긍정적 에너지가 느껴진다. 언어 차이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지만 바디 랭귀지와 축구 이야기를 나누면서 불안감을 없애주고 더 편안한 기분을 갖도록 해 줬다.

디에고가 너무 수비를 쉽게 한다고 불만을 갖는 사람도 있더라. 그러나 언제나 좋은 위치, 좋은 시점에 수비하기 때문에 그래 보이는 거다. 수비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지. 디에고의 경기를 본다면 다른 선수들보다 조금 일찍 중요한 지역을 선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디에고는 발이 빠르진 않다. 대신 (이마를 가리키며) 여기가 빠르다.

 

- 권경원은 이 팀으로 이적하게 됐을 때 당신과의 만남을 가장 기대하고 있었다. 수비에 대해 잘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계속 발전 중인 선수다. 디에고가 내 팀이라 그러는 게 아니라, 그는 내가 본 한국 수비수 중 최고에 속한다. 수비수는 때로 일대일 상황에서 버텨야 하는데 디에고는 그걸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처음 영입했을 땐 일대일 수비를 조금 꺼리더라. 수비진에 혼자 남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설명해 줬다. 동료들이 전진해서 공격 중이라면 맨투맨 디펜스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고. 나도 현역 때 많이 겪었던 상황이다.

 

- 한국 수비수들의 특징을 말해줄 수 있을까? 이웃 팀인 톈진테다의 황석호를 비롯해 한국인 센터백들을 많이 접할텐데.

글쎄. 다들 특징이 다르다. 조언을 바라는 거라면 딱히 해줄 말이 없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수비를 가장 잘 하는 나라 아닌가. 한국의 수비수 육성은 아주 엄격한 것 같다.

 

- 한국에서 U-20 월드컵이 진행 중이다. 혹시 본 경기가 있나?

한국 선수가 마라도나를 겨냥한 골 세리머니를 하지 않았나. 그거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그런가?) 정확히 알고 있다. 아르헨티나전에서 카메라 보고 뭔가 이야기했는데, 그게 마라도나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다는 기사를 봤다. 재밌는 장면이었다.

 

- U-20 대표팀을 비롯해 갓 스무 살이 된 수비 유망주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나? 그 나이엔 어디에 집중해야 하나?

어려운데. 모든 사람의 특징이 다르니까 구체적인 조언은 어렵다. 수비수가 어떤 존재인지 잘 생각했으면 한다. 수비는 늘 어렵다. 경기에서 이기면 스트라이커 덕분, 지면 수비수들 탓이다. 그게 수비의 숙명이다. 그러나 난 내 선수들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왜냐면 축구는 팀으로서 하는 스포츠니까. 그러므로 이기면 모든 선수가 자기 몫을 해줬기 때문이고, 지면 스트라이커들이! 제대로 해주지 않고! 미드필더들이! 수비를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경원에 따르면, 칸나바로는 수비수들을 불러 놓고 “실점하면 공격수에게 엿 먹으라고 해라”라고 자주 이야기한다.)

 

- 마지막 질문은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대한 것이다. 당신은 유벤투스와 레알마드리드에서 모두 뛰며 두 리그 우승을 모두 경험했다. 4일(한국시간) 두 팀이 맞붙는다. 어느 쪽을 응원할 건가?

어느 쪽이 이기든 행복할 거다. 승자에 상관없이 기분이 좋아질 챔피언스리그 결승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팀 다 존중한다. 그리고 많은 친구들이 있다. 유벤투스의 부폰, 바르찰리, 키엘리니, 마르키시오. 레알의 라모스, 마르셀로, 페페까지. (수비수들만 골라서 이야기하는 것 같다) 내가 레알에 있을 때도 수비진이 저 조합이었다. 공격 쪽 선수는 다 바꿨는데 수비는 그대로다. 두 팀의 내 친구 수비수들을 모두 응원하겠다.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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