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전반전은 역대 ‘꿈의 무대’ 결승전 사상 가장 뜨거운 명승부였다. 그러나 후반전이 시작되자 유벤투스는 급격하게 무너졌고, 레알마드리드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4일(한국시간) 영국 카디프에 위치한 내셔널 스타디움에서 ‘2016/2017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결승전에서 레알이 유벤투스를 4-1로 꺾고 우승했다.
두 팀 모두 전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신 전술로 나왔다. 유벤투스는 윙어 후안 콰드라도를뺀 3-4-2-1 전형으로, 레알은 윙어 가레스 베일을 뺀 4-3-1-2 전형으로 등장했다. 양쪽 모두 전형적인 윙어 없이 공격을 일종의 프리롤로 전개한다는 점에선 마찬가지였다.
유벤투스는 잔루이지 부폰 골키퍼 앞에 조르조 키엘리니, 레오나르도 보누치, 안드레아 바르찰리로 이어지는 일명 ‘BBC’ 스리백을 모두 내보냈다. 레알 공격진은 베일이 빠져 BBC 조합이 깨졌다. 이스코가 공격형 미드필더더처럼 배치돼 프리롤로 뛰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림 벤제마 역시 프리롤 공격수로서 자유롭게 전방을 이끌었다.
미드필드 싸움은 레알이 한 명 더 많았다. 유벤투스는 미랄렘 퍄니치와 자미 케디라가 출장했다. 레알은 카세미루 위에 토니 크로스, 루카 모드리치가 배치됐다. 측면에서는 윙백들끼리 대결을 벌였다. 유벤투스는 알렉스 산드루와 다니 아우베스, 레알은 마르셀루와 다니 카르바할이 배치됐다.
유벤투스 공격은 곤살로 이과인을 최전방에 배치하고 마리오 만주키치, 파울로 디발라를 두 명의 프리롤로 2선에 뒀다. 레알은 세르히오 라모스와 라파엘 바란을 센터백으로 두고 케일러 나바스가 골문 앞에 섰다. 만주키치와 디발라는 수시로 후방까지 내려가 빌드업부터 수비진 형성까지 헌신적인 경기를 했다.
유벤투스의 앞선 경기력, 그러나 선제골은 레알
근래 UCL 결승전을 통틀어 가장 속도가 빠른 경기였다. 보통 결승전은 일반적인 리그 경기보다 조심스럽게 전개되는 경우도 있지만, 유벤투스와 레알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일반적인 경기를 1.5배속으로 재생시키는 듯 엄청난 속도로 공이 돌아갔다. 상대 압박이 엄청난 기세로 들어오기 때문에 미드필더들은 공을 잡자마자 바로 처리해야 했고, 패스는 거의 슛처럼 빨라야 했다. 패스의 달인이라는 선수들도 패스 미스를 심심찮게 범할 정도로 높은 집중력이 필요한 경기였다. 놀라운 템포로 이미 명승부가 예고돼 있었다.
경기 시작 직후 우세한 팀은 유벤투스였다. 유벤투스는 이과인의 헤딩슛과 중거리슛이 연달아 나오며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전반 6분 레알 수비수들이 멀리 걷어내지 못한 공을 퍄니치가 잡아 낮고 빠르고 정확한 중거리슛을 날렸다. 나바스의 놀라운 선방이 아니라면 선제골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경기는 양쪽 모두 풀기 힘든 양상으로 들어갔다. 두 팀에서 창의성을 맡아야 하는 디발라와 이스코가 모두 봉쇄됐기 때문에 서로 공격이 풀리지 않았다. 측면에서도 월드클래스 윙백들이 서로를 견제하느라 평소만큼의 공격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양상이 반복됐다. 산드루 대 카르바할, 아우베스 대 마르셀루의 대결이 치열했다.
그러나 레알은 경기력과 무관하게 골을 넣을 수 있는 팀이었다. 앞선 12경기에서 겨우 3골만 허용한 유벤투스지만, 레알은 단 20분 만에 수비를 열어내는데 성공했다. 크로스, 벤제마, 호날두, 카르바할로 순식간에 이어지는 패스 연결로 물흐르듯 공격을 전개한 레알은 카르바할의 땅볼 크로스를 호날두가 마무리하는데 성공했다. 슛이 레오나르도 보누치의 발을 맞고 살짝 굴절돼 잔루이지 부폰이 막을 수 없는 구석으로 들어가는, 약간의 행운이 겹쳤다.
유벤투스에서 응답한 선수는 만주키치였다. 전반 27분 산드루의 크로스가 레알 문전으로 들어간 뒤, 두 선수의 아름다운 묘기가 연출됐다. 일단 이과인이 크로스를 받아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패스를 내줬다. 만주키치도 공중에서 해결했다. 가슴으로 공을 받은 뒤 오버헤드킥을 날렸고, 약간 빗맞은 슛이 오히려 골문 구석으로 절묘하게 빨려들어갔다. 레알의 골이 속도에서 나왔다면, 유벤투스의 골은 기술에서 나왔다.
호날두의 멋진 오버헤드킥이 산드루의 블로킹에 막힌 뒤, 전반전 남은 시간은 유벤투스가 주도했다. 그러나 유벤투스도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만들지는 못했다. 레알은 거친 수비로 유벤투스를 막았고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카르바할과 라모스가 경고를 받았다. 유벤투스는 전반 초반 디발라가 경고를 한 장 받은 상태로 후반전에 돌입했다.
급격하게 몰락한 유벤투스, 농락에 가까운 후반전
전반전을 지배한 팀은 유벤투스지만,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경기 양상은 급격하게 바뀌었다. 유벤투스는 전반전만큼 격렬한 리듬과 높은 집중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약간의 빈틈을 노출하기 시작했다. 반면 시즌 내내 더 많은 로테이션 시스템이 가동됐고 평균 연령도 더 어린 레알마드리드가 지배력을 회복했다. 더 불리할 때도 골을 넣을 줄 아는 레알이 경기력까지 앞서기 시작하자 승부의 추가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다.
유벤투스는 밀리는 와중에도 최종수비의 힘으로 무실점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후반 16분 또 굴절된 슛이 골문으로 날아갔다. 레알이 계속 슛을 날리는 흐름이었기 때문에 한 번은 일어날 것이 예고된 상황이었다. 유벤투스 수비진이 크로스의 슛은 잘 막아냈지만, 뒤로 흐른 공에 달려든 카세미루가 강슛을 날렸을 때 케디라의 뒤꿈치에 공이 스치며 부폰이 예상하지 못한 골대 구석으로 절묘하게 빨려들었다.
유벤투스는 본격적으로 흔들렸고, 3분 뒤 레알은 유벤투스 수비가 노출한 쟉은 빈틈을 또 공략했다. 유벤투스가 수비한 공을 다시 따낸 레알이 재빨리 오른쪽으로 침투하는 모드리치에게 공을 보냈다. 모드리치의 낮고 빠른 크로스를 호날두가 니어포스트 쪽으로 달려들며 발을 툭 대 잘라 먹었다. 호날두가 대회 12골로 득점왕에 오르는 순간이기도 했다.
유벤투스는 세 번째 골을 내준 뒤 퍄니치, 산드루가 연속으로 경고를 받았다. 순발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계속 한 발 늦은 거친 태클이 들어갔다.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감독은 선수 교체로 경기를 뒤집어보려 했다. 후반 21분 바르찰리가 빠지고 윙어 후안 콰드라도가 투입되며 포메이션은 4-2-3-1로 전환됐다. 후반 70분 흔들리던 퍄니치가 빠지고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가 경기장에 들어섰다. 콰드라도는 투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역시 경고를 받았다.
유벤투스가 제대로 압박하지 못한다는 걸 간파한 레알은 충분히 여유 있게 공을 돌리며 어느 쪽도 득점하지 못하는 양상으로 경기를 몰아갔다. 그러면서도 순식간에 역습을 전개해 유벤투스의 배후 공간을 계속 노렸다. 후반 32분 벤제마 대신 베일, 잠시 후 이스코 대신 마르코 아센시오를 투입해 역습의 속도와 수비 가담 능력을 모두 유지했다.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 디발라는 후반 33분 마리오 레미나와 교체됐지만, 레미나는 이 상황에서 차이를 만들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다.
역전 가능성은 후반 39분 콰드라도가 두 번째 경고로 퇴장 당하며 아예 사라졌다. 태클 이후 넘어져 있는 라모스를 향해 보복 행위를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이후 유벤투스는 완전히 무기력해졌다. 2년 전 유벤투스 소속으로 결승에서 뛰었던 알바로 모라타가 후반 44분 크로스와 교체돼 투입됐다.
레알은 후반 추가시간이 시작되자마자 쐐기골을 넣으며 이미 승리 세리머니를 시작했다. 호날두의 프리킥이 굴절된 공을 마르셀루가 주워 완벽한 드리블 후 골대 바로 앞에서 내줬고, 아센시오가 간단하게 마무리했다.
레알은 대회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팀이다. 자체 기록을 11회에서 12회로 늘렸다. 지네딘 지단 감독은 감독 데뷔 후 두 시즌 연속으로 UCL에서 우승하는 사상 초유의 감독 경력을 달성했다. 2회 연속 우승은 대회 출범 이후 처음이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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