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강원의 창보다 성남의 방패가 강했다. 성남은 최근 공식전 3연속 무실점 수비를 이끈 수비수 마린 오르슐리치가 득점까지 기록하며 FA컵 8강 진출에 성공했다. K리그챌린지 1차 라운드에서 고전했던 박경훈 성남 감독은 실리적인 축구로 이변을 연출했다.

8강전에서 목포시청을 만나는 대진표를 받은 강원과 성남은 이 경기에 대한 동기부여가 강했다. 강원은 AFC챔피언스리그 진출을 목표로 삼고 승격 이후 대대적인 투자를 했다. 승강제 실시 이후 가장 강한 전력을 갖춘 승격팀으로 꼽힌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리그 3위를 노리기는 쉽지 않다. 경쟁이 치열하다. 단판 승부인 FA컵에서 우승하는 것이 오히려 수월하다.

최윤겸 강원 감독도 그 점에 동의했다. 성남과 경기에 강원은 골키퍼 이범영을 포함해 주력 선수를 선발 명단에 총출동시켰다. “송유걸 등 골키퍼들에게 오히려 리그에서 기회를 주겠다”며 FA컵 총력 체제로 임하겠다고 했다. 강원은 성남전에 디에고 이근호 김승용을 스리톱으로 배치했다. 부상에서 회복한 정조국도 후반 출격을 위해 대기했다.

#공격 준비한 강원, 수비 준비한 성남

미드필드진은 황진성 오범석 쯔엉, 포백은 박선주 김오규 강지용 백종환이 자리했다. FA컵에는 23세 이하 선수 의무 출전 규정이 없는 만큼 베테랑 선수를 모두 내보냈다. 베트남 대표 미드필더 쯔엉에 올 시즌 데뷔전 기회를 준 것 정도가 이례적이었다. 대전코레일과 32강전에 결승골을 넣은 문창진은 벤치에서 대기했다.

승격이 당면 과제인 K리그챌린지 팀들에게 ACL 진출권은 현실적인 떨어지는 목표다. 그래서 FA컵에는 주로 후보 선수를 냈다. A매치 기간에도 쉬지 않는 K리그챌린지는 일정이 타이트하다. 컵대회 병행이 가능한 두터운 스쿼드를 갖추기에 재정적으로도 쉽지 않다. 하지만 성남은 주말 대전시티즌과 중대한 리그 경기를 앞두고도 강원 원정에 주력 선수를 냈다.

박 감독은 “부상자가 많아 돌릴 선수가 없다”며 웃었지만, 실제론 강원전에 갖는 특별한 의미가 있기에 맹렬하게 승리를 추구했다. “우리가 강원과 경기를 통해 강등이 됐고, 많은 팬들이 아픔을 겪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강원과 승강 플레이오프로 비롯됐다. 리그 경기도 중요하지만 FA컵 경기에서도 승리를 통해 자신감을 회복해야 한다.” 

2016시즌 11월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만났던 강원FC와 성남FC의 처지는 7개월 여 만에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강원은 사력을 다해 성남의 공세를 저지했고, 성남은 강원의 강력한 정신력에 원정골을 내주며 강등됐다. 이제는 성남이 강원의 화력을 버텨야 하는 상황이 됐다. 최 감독이 “90분 안에 끝내겠다. 승부차기는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고 한 반면, 박 감독은 “그쪽은 클래식팀이고 우리는 챌린지니까. 승부차기까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감정의 앙금이 남은 팀은 강등된 성남이다. 성남의 선발 명단에는 황의초 김두현 이창훈 안상현 등 승강 플레이오프 당시 성남 소속이던 선수들이 절반가량 있었지만, 강원의 경우 남은 선수가 없었다. 황진성이 유일하게 승강 플레이오프에 출전한 선수였는데, 당시엔 성남 소속이었다. 주장 백종환은 당시 경기에 부상으로 뛰지 못했다. 최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런 정신적인 부분에서 밀렸다고 했다. 성남은 악착 같은 수비와 코너킥 공격으로 1-0 승리를 챙겼다.

박 감독이 준비한 4-2-3-1 포메이션은 수비적이었다. 이지민 연제운 오르슐리치 이태희로 구성된 포백 앞을 안상현과 이후권이 보호했다. 공격 성향이 짙은 이지민과 이태희는 최대한 오버래핑을 자제하며 수비 진영을 지켰다. 안상현과 이후권은 터프한 중원 수비에 집중했다. 공격은 원톱 박성호 뒤에 황의조 김두현 이창훈이 배치됐다. 이창훈은 미드필더에 가깝게 뛰었고, 황의조는 전방 진입을 추구했으나 볼 소유권을 많이 가져가지 못하며 대체로 고립됐다.

#풀백 올라오지 않은 성남, 쯔엉 무력했던 강원

성남은 박성호가 부지런히 움직이며 공간을 만들려 했다. 하지만 공을 투입되지 못해 별다른 기회를 만들기 어려웠다. 강원은 황진성과 쯔엉을 공격적으로 배치하고, 스리톱의 좌우로 박선주 백종환 등도 적극 전진해 라인을 끌어올렸다. 구조적으로 김두현과 안상현-이후권 사이 간격이 벌어졌고, 김두현에게 공이 전달되지 못하니 전방에 배치된 세 명의 선수들이 기회를 만들기 어려웠다. 

풀백의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성남 공격은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상황을 자주 맞았다. 박 감독은 “강원은 요소 요소에 좋은 선수가 많아 우리가 섣불리 덤벼선 안된다”고 했다. 박 감독이 원한 것은 주도권이 아니라 승리였다. 

강원은 공격적인 경기를 했지만 김오규와 강지용 등 대인 방어에 능한 두 센터백을 배치하고, 수비형 미드필더 오범석이 배후를 커버하며 스리백을 혼용해 수비 안정감을 확보했다. 오범석은 김두현의 동선을 점유해 성남 공격의 볼 주리도 제어했다. 최 감독은 조직 수비로 나설 성남을 상대로 일대일 상황을 자주 연출해 무너트리겠다고 했다. 선수 개개 능력이 앞서는 점을 활용하겠다는 의지였다.

실제로 디에고와 이근호가 부지런히 움직이며 개인 돌파 상황을 만들려했으나 성남이 워낙 단단한 수비를 펼쳐 힘을 쓰지 못했다. 특히 오르슐리치는 높이와 태클, 몸싸움, 지능적 수비와 라인 리딩 능력을 두루 선보였다. 골키퍼 김동준이 할 일이 많지 않도록 수비 전체를 이끌었다. 강원은 성남의 밀집 수비에 고전하고, 성남은 역습시 공격 숫자가 부족해 지루한 경기가 이어졌다.

강원의 패착은 마음 먹고 기회를 준 쯔엉의 부진이었다. 시즌 초 부상을 입고, 주전 경쟁의 어려움 속에 R리그 경기 위주로 나선 쯔엉은 경기 감각이 떨어져 있었다. 강원 데뷔전에 대한 긴장과 부담도 있었다.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 전반전에 성남의 압박 수비를 흔들지 못해 성남 선수단의 사기를 높였다. 

#백종환 부상이 부른 전략 차질, 성남 오르슐리치 압도적 활약

강원은 설상가상으로 전반 41분경 라이트백 백종환이 부상으로 쓰러졌다. 벤치에 라이트백 자원을 준비하지 않았던 강원은 스트라이커 정조국을 조기 투입하고 김승용을 라이트백 자리로 내렸다. 김승용은 리그 경기에서도 공세 상황에서 라이트백을 맡은 바 있지만, 수비 부담이 가중되면서 본래 가진 장점이 발휘되기 어려운 경기를 했다. 이날은 라이트백 자리에서 황의조의 습격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 속에 힘을 쓸 수 없었다.

강원은 후반전 시작과 함께 쯔엉을 빼고 문창진을 투입했다. 문창진 투입 이후 공세가 살아나는 듯 했지만 성남 수비는 흔들리지 않았다. 양 팀 모두 체력적으로 힘들어진 후반 중반에 성남이 득점했다. 후반 22분 이창훈의 코너킥을 196센티미터의 장신 수비수 오르슐리치가 압도적 높이로 해결했다.

강원은 수원삼성과 리그 경기 당시에도 두 골을 모두 코너킥 상황에 수비수 매튜의 헤더로 내줬다. 성남전까지 최근 치른 경기에서 번번이 세트피스로 실점하는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오르슐리치의 헤더 득점 이후 성남은 굳히기에 들어갔다. 김두현을 빼고 김영신, 이창훈을 빼고 조재철을 투입해 중원 수비 기동력을 높였다. 마지막 교체 카드로 안상현을 빼고 수비수 문지환을 투입해 5백을 구축했다.

강원은 라이트백 자리로 내려간 이후 공수 앙면에 걸쳐 힘을 쓰지 못한 김승용을 빼고 김경중을 투입했지만 원톱 박성호를 제외하고 전원 수비에 나선 성남의 벽을 넘지 못했다. 특히 오르슐리치는 문전으로 투입되는 모든 공을 차단했다. 골키퍼 김동준이 할 일이 많지 않았다. 오르슐리치는 경기 최우수 선수가 되기 합당한 경기를 보였다. 

부상 회복 이후 3경기 연속 무실점 수비를 이끌며 성남의 에이스로 떠올랐다. 박 감독은 “우선 수비를 탄탄히 하고 전략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일단 많이 뛰고 부딪히고 싸워야 한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싸울 수 있는 팀이 되고 난 이후에 내 축구철학을 입힐 것”이라고 했다. 

성남은 최근 3경기서 무실점 무패를 기록했으나 여전히 공격진은 숙제가 있다. “네코와 파울로가 부상 중”이라는 박 감독은 둘의 회복이 늦어져 고민이 많다고 했다. 최근 기세를 후반기 돌풍으로 연결하기 위해선 여름 이적 시장에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수도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그래픽=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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