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황일수는 국내 최고 스피드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여전히 배워나가는 중이다.

황일수는 대구FC, 제주유나이티드, 지난 2년간 다녀온 상주상무까지 세 팀을 거치며 K리그에서 가장 빠른 윙어로 통했다. 그러나 올해 제주는 윙어 없는 전술을 자주 쓰고, 황일수는 중앙에서 자신의 스피드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익혀야 한다. 새 포지션에 조금씩 적응해가는 황일수는 제주의 K리그 1위 등극과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16강 진출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30세에 여전히 성장 중인 황일수의 현재를 직접 물었다. (편집자주 : 지난 4월 인터뷰한 내용을 17일 전화 인터뷰로 보충했다.)

 

이젠 스트라이커도 자신 있다

황일수는 K리그 클래식을 대표하는 윙어 중 하나였다. 특히 2012년부터 파괴력이 확 늘어 3년 연속으로 공격포인트를 10개 이상 기록했다. 상주상무에서 눈에 보이는 기록은 줄어들었지만 공격의 한 축으로 여전히 좋은 활약을 했다. 측면에 공간만 주어진다면 황일수의 스피드와 킥은 막강한 무기였다. 그런데 군복무를 마치고 올해 제주에서 ‘프로 2막’을 열려는 황일수에게 난관이 생겼다.

“상주 있을때까지는 제 포지션인 윙어에서 뛰었어요. 그런데 올해 제주는 윙이 없는 축구를 많이 해요. 전 스트라이커가 됐고요. 스트라이커는 어렸을 때만 해 봤지 대학교 시절부터 계속 윙이었어요. 처음엔 낯설고 제 옷을 입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강했죠. 그래도 감독님이 원하는 전술이 있으니까 선수가 맞춰가는 건 당연한 거고, 최대한 맞추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어요.”

조성환 감독은 지난해부터 제주에 도입한 스리백을 정착시키면서 3-5-2나 3-4-2-1 등 윙어 없는 포메이션을 주로 썼다. 황일수는 시즌 첫 경기였던 장쑤쑤닝전부터 중앙 공격수로 기용됐다. 출장 기회가 없는 것보단 나았지만, 자기 포지션이 아니었다. 황일수는 헤매다 나오는 경기가 너무 많다고 느꼈다.

“감독님과 가끔 미팅을 가지면서 이 문제를 이야기했어요. 저는 제 포지션이 아니라서 힘들어했고, 제가 할 수 있는 플레이를 못 보여주는 부분이 있다고 말씀드렸죠. 감독님은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지금 자리에서 잘 하길 원하시던데요. 또 3-5-2 포메이션을 일 년 내내 쓰는 것도 아니고, 포백을 쓸 때는 윙이 있을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선수가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었죠. 제 스스로 플레이에 만족을 못 했어요. 시간이 지나야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변화가 생긴 건 지난 3일 전북현대 원정에서 4-0 승리를 거둘 때부터였다. 황일수는 특기인 오른발 중거리슛으로 마르셀로의 선제골에 간접적인 도움을 줬다. 일단 전북 수비라인이 앞으로 끌려나온 뒤엔 배후를 집요하게 노렸고, 결국 1도움을 기록했다. 이 경기로 제주가 1위에 올랐다. 9일 ACL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감바오사카전을 섀도 스트라이커처럼 시작했다가 중간에 윙어로 자리를 바꿨다. 후반 21분 황일수를 위한 상황이 왔다. 번개 같은 속공에 이어 오른발 대각선 강슛을 날려 쐐기골을 넣었다.

“그때 우리 팀이 전방 압박보다 카운터 위주의 전략을 짰는데 그게 잘 먹혔어요. 상대가 빌드업할 때 공을 빼앗으면 바로 공격으로 나갔는데, 수비가 정돈되지 않으니까 제가 이용할 공간이 많고 스피드를 살릴 수 있었어요. 감독님이 주문한 것도 그거였거든요. 시간이 지나면서 중앙에서도 많이 편해졌어요.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 것 같아요.”

황일수는 윙어가 따로 없는 제주 전술에서 자유롭게 측면으로 돌아다니며 공을 받고 속공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상대 수비가 후퇴해 있어서 공간이 나지 않더라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깨달아가고 있다. 골과 도움을 기록하면서 오른발 킥에 대한 자신감도 늘었다. 가장 잘 하는 플레이를 보여줬던 감바전에서는 특히 기분이 좋았다.

 

스피드 라이벌 안현범, 같은 팀이라 다행

황일수는 자신의 100미터 달리기 기록을 모른다. 당연히 11초대는 나온다고 알고 있지만 측쟁해본지 너무 오래 됐다고 한다. 다만 어느 선수와 붙어도 뒤쳐지지 않을 자신은 있다. 스스로 K리그에서 가장 빠른 선수라고 말할 때는 자부심도 없이 당연한 사실처럼 이야기했다. 조 감독은 ‘단거리는 일수가, 중장거리는 안현범이 빠를 것’이라고 말했는데 황일수도 안현범의 스피드는 인정한다.“ 상대팀 윙어와 직접 부딪칠 일은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속도 경쟁을 해 본 기억이 없어요. 제일 껄끄러운 풀백들은 최철순, 신광훈, 이제 같은 팀이 된 박진포인데 다들 저보다 빠르다기보다 수비를 잘 하는 선수들이죠. 진짜 빠르다고 느꼈던 선수는 레오나르도(전 전북) 정도? 레오는 같은 경기장에 있을 때 정말 빠르다는 느낌을 주는 선수였죠. 그 외에도 많겠지만 당장 생각나는 건 현범이. 같은 팀이라 다행이죠.”

스피드스터에겐 중장거리 패스를 정확히 내주는 미드필더가 필요하다. 수비수들을 끌고 다니며 공간을 창출해주는 공격수도 있으면 좋다. 황일수는 제주 동료들의 수준이 높아 스피드를 활용하기 편하다고 했다.

“(권)순형이 형, (이)창민이처럼 패스 좋은 선수가 우리 팀에 많잖아요. 공간으로 좋은 패스가 들어오기 때문에 좋아요. 공격수는 멘디와 함께 뛸 때가 편한 것 같아요. 멘디가 제공권도 좋고 상대 수비수들과 싸울 일이 많기 때문에, 흘려주는 공으로 제가 할 수 있는 게 많이 생겨요. 동료들은 다 좋아요. 저만 스트라이커 자리에 잘 적응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제주는 K리그 클래식 11라운드 현재 2위다. 선두 전북현대에 승점 1점 뒤쳐져 있다. 초반부터 선두권으로 올라선 제주는 우승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황일수는 다른 팀의 친한 선수들이 경계하는 걸 느낀다.

“다른 팀보다 조직력이 좋다고 생각해요. 잘 하는 선수들이 모여 있으면 개인 플레이를 많이 할 수도 있는데, 우린 다들 팀을 먼저 생각하거든요. 좋은 성적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독님도 늘 강조하시고요. 지금 멤버 구성상으로 충분히 우승할 수 있다고 봐요. 더블 스쿼드가 나오잖아요. 결장하는 선수가 있어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어요. 기대가 크죠.”

눈 앞의 과제는 ACL 8강 진출이다. 24일에 우라와레즈와 16강 1차전을 치른다. 황일수는 첫 ACL을 치르고 있다. 생존한 K리그 구단이 제주뿐이라 더 특별한 시즌이다.

“조별리그를 우리만 통과했기 때문에 한국 대표라는 책임감이 들어요. K리그가 강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고, 특히 돈 많이 쓰는 중국팀들을 만나서 또 이기고 싶어요. 다들 최대한 좋은 성적을 내겠다는 의욕으로 준비하고 있죠. 16강 상대 우라와레즈는 개인적으로 별 인연이 없지만, J리그를 대표하는 최고 명문팀이잖아요. 일본 대표라고 생각하니 더욱 이기고 싶더라고요.”

황일수가 감바를 상대로 득점하는 걸 울리 슈틸리케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켜봤다. 대표팀 경험이 유니버시아드 뿐인 황일수는 태극마크에 대한 꿈을 꾸지만, 당장 큰 기대는 없다. 한두 경기 반짝 활약이 아니라 시즌 내내 좋은 플레이를 해야 대표팀에 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제주에서 선발이든 조커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최선의 플레이를 할 생각이라고 했다.

사진= 풋볼리스트,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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