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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지법] 좋은 외국인 감독은 리그를 발전 시킨다
한준 기자 | 승인 2017.04.21 08:05
셰놀 귀네슈 전 터키 대표팀 감독은 서울에서 K리그의 르네상스를 이끈 인물이다.

[풋볼리스트] 축구는 깊다. 격렬함 속에는 치열한 고뇌가 숨어 있다. 보이지 않는 축구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다리가 필요하다. ‘풋볼리스트’가 축구에 지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마련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축구를 둘러싼 깊고, 다양한 이야기를 준비한다. <편집자주>

언젠가부터 K리그에 외국인 감독이 보이지 않는다. 2014시즌 경남FC가 일리야 페트코비치 감독을 경질하고, 브랑코 바비치 코치가 대행으로 팀을 이끈 뒤 1부리그에선 2015시즌부터 지금까지 외국이 감독이 자취를 감췄다. K리그챌린지로 범위를 확정하면 2016시즌 마틴 레니가 서울이랜드FC에서 경질됐다. 

역사적으로 봐도 K리그는 외국인 지도자의 비중이 크지 않았다. 2009시즌 K리그에 세뇰 귀네슈(서울), 세르지우 파리아스(포항), 알툴 베르날데스(제주), 일리야 페트코비치(인천) 등 4명의 감독이 동시에 활동한 것이 근 10년 간 가장 많은 수치다. 2010시즌에 서울이 귀네슈 감독 후임으로 넬송 빙가다 감독을 선임했고, 포항은 박창현, 제주는 박경훈, 인천은 허정무 등 국내 감독으로 교체했다.

2011시즌에 포항이 발데마르 레모스 감독을 선임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서울의 빙가다 감독이 떠나고 황보관 감독이 부임했다가 최용수 감독 체제가 됐다. 2012시즌에 대구가 브라질 출신 모아시르 감독을 선임했다. 그해 유일한 외국인 감독이었다. 2013시즌 K리그클래식/챌린지 체제가 구축된 첫해 최강희 감독이 국가대표팀으로 향하며 파비우 코치가 대행 역할을 했다. 

K리그는 파리아스와 귀네슈 감독이 이끌던 시기 이후 외국인 감독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줄었다. 외국인 감독 실종은 2010년 K리그 구단이 독립법인화한 시점과 맞물린다. 이는 아시아축구연맹(AFC)이 AFC챔피언스리그 참가를 위한 선결조건으로 모든 팀의 독립법인화를 설정했다. 이를 통해 프로축구단은 모 기업 의존 체제에서 벗어나 자생력을 갖춰야 하는 구조로 재편됐다.

제주와 강원을 지휘했던 알툴 베르날데스 감독

#K리그에 외국인 감독이 사라진 이유

K리그의 한 구단 관계자는 K리그에서 왜 외국인 지도자가 사라졌냐는 질문에 “결국에는 돈 문제”라고 했다. “지금 스타 선수 출신 감독들의 연봉 수준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외국인 감독을 데려오면 연봉 조건은 물론 집과 차 등 제공할 부분이 있고, 외국인 코치진도 데려와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든다.”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태와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K리그의 투자 규모가 위축됐다. 

K리그 구단들의 재정 상황이 어려워진 시점과 함께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국가대표로, K리그를 대표하는 스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수들이 은퇴하고,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10시즌 황선홍, 2011시즌 최용수, 유상철, 2012시즌 하석주, 2013시즌 서정원, 조진호, 남기일, 2015시즌 조성환, 윤정환, 노상래, 김도훈, 2016시즌 최진철, 2017시즌 손현준, 이기형 등이 정식 감독으로 데뷔했다. 

2017시즌 현재 K리그클래식 12개팀을 살펴보면 전북의 최강희, 포항의 최순호, 강원의 최윤겸 감독 등 50대인 3명이에 9개팀의 감독이 40대로 젊다. 선수 시절 높은 수준의 경기를 경험하고, 코치직을 거쳐 감독 자리에 올랐다. 

이들 상당수가 감독 데뷔 후 인상적인 성과를 내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고, 성과 없는 감독은 자리를 보전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성과는 대부분 눈앞의 성적 측면에 국한된다. 아직 감독으로 기반이 탄탄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에서 전술은 경기 접근법은 대체로 보수적이다. 성적을 내지 못하면 다시 감독직을 맡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있다. 성과를 냈다고 해도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무언가를 남기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리그 전체적으로 비슷한 연령대에, 비슷한 경험치, 비슷한 상황에 처한 감독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은 K리그가 ‘축구적으로’ 정체됐다는 지적을 받는 주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한국의 많은 지도자들에게 영향을 준 발레리 니폼니시 전 부천SK 감독

#한국 지도자들의 성장, 외국인 감독 곁에서 이뤄졌다

외국인 감독의 활약은 단지 그 자신의 성과로만 끝나지 않는다. 한국인 지도자의 성장과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당장은 국내 지도자들에겐 몇 안 되는 프로 감독 일자리를 빼앗기는 일이지만, 길게 보면 외국인 명장으로부터 배우며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더 크다. 

강원FC의 K리그클래식 승격을 이끈 최윤겸 감독은 “내 방식은 모두 니폼니시 감독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했다. 젊은 감독 가운데 전술적으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남기일 광주 감독의 경우 하재훈 전 감독을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데, 이들 모두 부천SK에서 니폼니시 감독의 영향권 속에 성장한 지도자들이다.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 위업을 이룬 홍명보 전 국가대표팀 감독도 거스 히딩크 감독과 딕 아드보카트 감독과 함께 생활하며 지도자로 배운 게 많다고 했다. 특히 선수로 경험한 시간이 길었던 히딩크 감독 보다 코칭 스태프 일원으로 월드컵 무대를 함께 치른 아드보카트 감독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부임 후 K리그클래식 우승과 AFC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룬 최용수 감독 역시 셰놀 귀네슈 감독의 코치로 일하며 근거리에서 영향을 받았다. 기성용과 이청용이 어린 나이에 서울에서 주축 선수로 활약할 수 있었던 배경도 귀네슈 감독이다.

K리그클래식 2회 준우승과 FA컵 우승이라는 결과를 낸 서정원 감독은 늘 과거 올림픽 대표팀을 지휘했던 크라머 감독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해왔다. 지금은 이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여건이다. 

광저우헝다와 아시아 챔피언이 된 스콜라리 전 브라질대표팀 감독

#유럽도, 아시아도 다양한 감독들이 일하고 있다

축구의 본 고장은 유럽의 사례를 보면 지도자간 교류가 활발하다. UEFA 리그 랭킹 1위를 달리는 스페인 라리가의 경우, 자국 출신 지도자 배출 부문의 성과가 가장 큰 리그임에도 20개팀 중 7개팀의 지휘봉을 외국인 감독이 잡고 있다. 디에고 시메오네, 호르헤 삼파올리, 에두아르도 베리소, 마우리시오 펠레그리노 등 아르헨티나 출신 감독들은 각자 개성을 바탕으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독일 분데스리가도 18개팀 중 8개팀에서 외국인 감독이 일하고 있다. 이들 중 절반이 29라운드 기준으로 상위 10위 이내의 팀을 지도하고 있다. 선두 바이에른뮌헨의 경우 지난시즌까지 스페인 출신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에게 팀을 맡겨 전술적 진화를 이끌었고, 지금은 이탈리아 출신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지휘 중이다.

외국인 감독 효과를 가장 극적으로 보고 있는 리그는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다. 20개팀 중 국내 감독이 6명 뿐이다. 레스터시티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미들즈브러의 아이토르 카랑카 감독이 시즌 도중 경질되면서 잉글랜드인 코치가 대행 역할을 맡게 되면서 두 명이 늘어난 수치다. 

킥 앤 러시로 대표되던 잉글랜드 축구 스타일이 다양해진 배경으로 우수 외국인 선수 영입과 더불어 우수 외국인 지도자 영입이 꼽힌다. 안토니오 콘테 감독은 첼시를 선두로 이끌며 스리백 유행을 선도하고 있다. 과르디올라, 무리뉴, 클롭, 포체티노 등이 리그 상위권 팀을 진화시키고 있다는 평가다. 1996년 부임한 아르센 벵거 감독은 아스널의 철학 자체를 바꿔 놓은 인물이다.

ACL 동아시아 지역에서 경합하는 일본, 중국, 호주 등 경쟁국 리그 역시 외국인 감독을 적극 기용해 경기력의 질적 성장과 자국 지도자의 성장에 긍정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2017시즌 J1리그에는 브라질 출신 넬시뉴 밥티스타(빗셀고베), 세르비아 출신 미하일로 페트코비치(우라와레즈), 프랑스 출신 에릭 몸바르츠(요코하마F마리노스), 이탈리아 출신 마시모 피카덴티(사간도스 등 축구선진국 출신 지도자들이 결과를 내고 있다. 우라와, 빗셀, 요코하마는 7라운드 현재 리그 4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2위 가시마앤틀러스는 1994년 J리그 출범 초기부터 지난 2015년까지 꾸준히 브라질 출신 감독들이 지휘하며 팀의 기틀을 다졌다. 

과감한 투자가 이뤄지는 중국슈퍼리그의 경우 2017시즌 현재 16개 팀 중 중국인 감독이 둘 뿐이다. 루이즈 펠리피 스콜라리, 마누엘 펠레그리니, 펠릭스 마가트,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 구스타보 포옛 등 유럽 빅리그를 지휘한 명장들이 팀 수준을 높이고 ACL 무대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2016/2017시즌 파이널 시리즈를 진행 중인 호주 A리그의 경우 10개 팀 중 기예르 아모르(스페인, 애들레이드유나이티드), 케니 로위(잉글랜드, 퍼스글로리), 데스 버킹엄(잉글랜드, 웰링턴피니스) 등 세 명의 외국인 감독이 활동 중이다. 몇 년전에는 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감독이 절반 이상의 팀을 이끌며 리그 스타일을 더 다양하게 만든 바 있다.

한국과 호주에서 모두 지도자로 일해본 제라드 누스 라요바예카노 부단장은 과거 ‘풋볼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리그 발전을 위해선 각 팀의 감독 역량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제 세계 축구는 열렸고, 한국도 그렇다. 새장 안에 갇혀 있지 않다. 문이 열렸고 모두가 오고 가고 교류할 수 있는 시대다. 한국도 선진 축구를 활발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 오래된 한국 스타일을 고수하는 감독들도 다양한 축구를 받아들이고 더 좋은 축구를 할 수 있도록 발전해야 한다. 세계 최고의 축구 문화를 배우기 위해 열린 자세로 보고 배워야 한다. 변해야 산다. 지도자 연수를 위해 몇 개월 유럽을 다녀오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첫 걸음을 뗀 수준이다. 꾸준하게 이들과 교류하고 함께 일하고 배우는 것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외국에 나가서 일을 하면서 이렇게 배울 수 없다면 이들을 한국에 불러서 생활하면서 배워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지도자와 선수들을 초빙해야 한다.”

우라와를 이끌고 ACL에서 꾸준히 모습을 보이고 있는 페트코비치 감독

#다양한 감독간의 교류가 축구 발전의 근간이다

구단의 재정적 현실이 어렵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면 외국인 선수 영입에 드는 비용을 외국인 감독 영입에 투자하는 게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물론, 외국인 감독이라고 모두 성공할 수는 없다. 누스역시 단지 국적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지금 K리그에는 국제적으로 풍부한 경험을 갖춘, 지도력이 검증된 지도자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외국의 어느 나라에서 온 것이 아니라 매우 뛰어난 감독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감독들이 매일 같이 한국 팀을 훈련시켜야 그 팀이 배우고 발전할 수 있다. 그런 감독과 스태프, 선수들이 K리그에 와서 활동을 해야 한다. 국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능력을 갖춘 뛰어난 감독인가가 중요하다. 잉글랜드 출신이라, 브라질 출신이라서가 아니라 뛰어난 지도자여야 한다. 뛰어난 지도자들을 영입해서 리그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런 이들이 와서 경기력을 좋게 하고 이기면 팬들이 찾아오고 리그는 더 발전할 수 있다. 그들의 방식을 복사하고 따라하면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누스는 감독이 리그 순위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지만, 서로 전술적 발전과 훈련법 개발을 위해 더 많은 교류를 해서 리그 전체의 발전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얘기도 전했다. “감독들은 더 많이 서로 교류해야 한다. 유럽은 그런 포럼도 많고 활발하게 의견을 주고받는다. 한국 감독들도 협회 차원에서나 서로 간에 더 많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전술적으로나 팀 운영에 대해 발전할 수 있도록 소통하고 토론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코치진과 선수들과 의견을 나눠야 한다.”

현대 축구에서 전술적으로 가장 혁신적인 인물로 평가 받은 과르디올라 감독의 경우 경기를 치른 뒤 적장과 사적을 자리를 갖고 전술 토론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유럽축구연맹 차원의 엘리트 감독 포럼은 이미 유명한 감독간 교류의 장이다. 이러한 교류 효과가 극대화되기 위해선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다양한 개성과 경험, 다양한 나이대의 감독이 있어야 한다. 

외국인 감독은 외국인 감독 나름의 특징이 있고, 노장 감독은 노장 감독 나름의 노하우가 있으며, 국내 젊은 감독들 역시 그들만의 강점이 있다. 단지 지금 활동하는 K리그의 감독들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K리그의 경직성과 전술적 정체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이 K리그 지도자들의 경쟁력을 더 높일 수 있는 길이다. 

K리그의 경기력 문제를 선수 유출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같은 선수라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K리그에 또 하나 중요한 과제는 지도자 풀의 확대와 발전이다. 국가대표팀의 경기력과 성적 마저 도마 위에 오른 한국축구 전체는 지금 총체적 위기론을 겪고 있다. K리그의 감독 구성 문제 역시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 

글=한준 기자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한준 기자  holaz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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