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일단 이겨야 한다. 이기면 승리가 또 다른 회복제가 될 수 있다.” (황선홍 FC서울 감독)

FC서울과 수원삼성 모두 19일 저녁 '2017 하나은행 FA컵' 32강전은 딜레마이자 분수령이었다. AFC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해야 하는 타이트한 일정 속에, 리그에서의 부진이 겹쳐 로테이션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있었다.

서울의 상대는 K리그챌린지 FC안양, 수원의 상대는 K리그클래식 인천유나이티드였다. 

서울은 ‘연고이전 역사’로 얽힌 라이벌전이라는 점에서 한 수 아래 상대지만 만만히 보기 어려운 경기였다. 수원과 인천은 리그 6라운드까지 첫승을 올리지 못한 '유이'한 팀이다. FA컵 승리를 통한 반등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 경기에서 탈락할 경우 주말리그 경기에 대한 선수단의 심리적 부담이 커진다.

안양과 경기 전 만난 황선홍 서울 감독은 “안양전을 준비하던 단계부터 변화의 폭을 많이 가져갈 생각은 안 했다”고 했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절대 소홀하거나 안일하게 생각할 상황이 아니다. 특수성도 있고, 집중해서 준비했다. (체력부담은) 이겨내야 한다. 이기면 승리가 또 다른 회복제가 될 수 있다. 이기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

그런 이유로 서울은 부상 당한 박주영 대신 심우연을 원톱으로 낸 것 외에 윤일록 이상호 김치우 이석현 주세종 이규로 오스마르 황기욱 정인환 유현 등 리그 경기에서도 선발 출전하던 선수를 출격시켰다. 어린 선수나, 그동안 기회를 못 잡던 선수에게 기회를 준 선택은 없었다. 데얀을 뺀 것 정도였는데, 장신 공격수 심우연을 투입한 것은 오히려 전술적으로 상대 수비를 위협하는 효과를 냈고, 리그에도 활용할 수 있는 대안이 됐다.

서울은 후반전 교체 카드로도 곽태휘와 데얀을 투입해 최상의 전력을 유지했다. 이날 멀티골을 기록한 윤일록은 “매 경기 나가면 힘든 건 마찬가지다. 승리를 하면 기분 좋게 회복하고 다음 경기를 나갈 수 있다. 이기지 못하면 팀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익서 분위기가 많이 올라왔다”며 체력 부담 보다 승리로 인한 기쁨이 주는 긍정적 효과가 더 크다고 말했다. 

서울은 최근 리그 3경기에서 2무 1패를 기록하며 침체에 빠져있었다. AFC챔피언스리그에서도 잔여 2경기를 모두 이겨냐 16강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다. FA컵은 쉬어갈 수 있는 타이밍이었지만, 승리를 통해 분위기 반전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안양전 2-0 완승은 황 감독의 노림수가 적중한 결과가 됐다.

반등에 성공한 것은 수원도 마찬가지였다. 수원은 공격수 김종민, 미드필더 이상민 등을 선발로 내며 변화를 쥐도 했지만, 염기훈 김민우 이종성 다미르 매튜 민상지 조원희 양형모 등 1군 전력을 냈다. 이스턴SC전과 마찬가지로 김종우를 빌드업 미드필더로 배치하며 성공했던 전술적 선택을 다시 시도했다. 후반전에는 조나탄도 투입하며 총공세를 폈다. 선수들은 경기 내내 전력을 다해 뛰었다. 인천과 경기는 팽팽했는데, 주장 염기훈의 직접 프리킥 득점으로 1-0 승리를 거뒀다.

자칫 전력을 내고 이기지 못한다면 타격이 더 클 수 있었다. 서정원 감독은 “자신감을 회복하기 이해 승리가 필요해 베스트 멤버를 냈다”고 했다. 체력 부담 보다 분위기가 쳐지면서 자신감이 떨어지는 게 주말 강원FC와 리그 원정 경기에 미칠 악영향이 더 크다는 판단이다.

서 감독의 노림수도 적중했다. 염기훈에 대한 믿음이 승리로 돌아왔다. 광주와 지난 주말 리그 6라운드 경기 이후 서포터즈의 야유와 욕설, 이정수의 퇴단 선언 등으로 어수선했던 분위기는 짜릿한 승리로 봉합됐다. 염기훈은 득점 직후 관중석으로 달려가 서포터즈와 포옹하는 세리머니를 했다. 경기 종료 후에 서포터즈와 만세삼창 이후 기념사진도 오랜만에 찍었다. 

황 감독의 발언과 마찬가지로 승리야 말로 가장 큰 회복제일 수 있다. 이기는 경기가 이어지면 힘든 줄 모르고 뛸 수 있다. 물론 체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패배가 주는 정신적 타격이 때론 체력적인 어려움 보다 더 클 수 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상황이 스포츠에는 종종 드러난다. 

올 시즌 K리그의 침체와 부진은 팬이 많은 수도권의 두팀 서울과 수원의 고전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최근 K리그는 관중 감소와 경기력 저하 등 논란을 겪고 있는데, 슈퍼매치를 중심으로 리그 흥행을 주도하던 서울과 수원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지난해 FA컵 결승전에서 격돌해 슈퍼파이널로 이슈를 만들었던 두 팀이 FA컵 16강에 오른 것은 두 팀 모두에게 결코 의미가 작지 않은 성과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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