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서울월드컵경기장] 한준 기자= “긴장이 되네.”

FC서울과 FC안양의 ‘2017 KEB하나은행 FA컵’ 32강전 경기에 많은 취재 인파가 몰린 것은 경기가 갖는 ‘의미’가 남다르기도 하지만, 정해성 수석코치가 ‘슈틸리케호’ 합류 이후 첫 기자회견을 이 경기 전에 가졌기 때문이다.

정해성 수석코치는 18일 서울그랜드힐튼호텔에서 슈틸리케 감독과 첫 코칭스태프 회의를 가졌고, 서울과 안양의 경기는 선수 점검을 위한 관전에 동행했다.

2012년 전남드래곤즈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 취재진과 마주할 기회가 적었던 정 수석코치는 환하게 웃으며 등장했지만, 본격적으로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슈틸리케호가 위기에 직면해있고, 국민적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 속에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다. 2002 한일월드컵과 2010 남아공월드컵을 코치로 경험한 정 수석코치를 거대한 기대와 압박감 속에서 결과를 낸 경험이 있다. 그는 부담스러운 질문에 정면으로 응답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국민들이 내게 어떤 기대를 하시는 지 잘 알고 있다. 직언도 해야 한다. 어디서든 해야할 말을 못한 적은 없다. 슈틸리케 감독과 자주 만날 것이다. 일정이 없으면 낮에도 가서 만나고 친해질 것이다. 뭔가 터져야 할 말도 할 수 있다. 모든 문제를 끄집어 내놓고 이야기하겠다.”

정 수석코치에겐 독이 든 성배일 수 있다. 이미 두 번의 월드컵에 참가해 성과를 낸 정 수석코치는 굳이 가시밭길에 뛰어들 이유는 없었다. "제안을 받고 고민도 했다. 한국축구의 위기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사명감을 갖고 해야겠다는 생각에 결정했다."

자칫 자신의 존재가 슈틸리케 감독에게 불편한 상황이 될 것에 대해 우려하기도 했다. “아직 내 구체적인 역할 범위에 대해선 슈틸리케 감독과 이야기를 정확히 나누지 않았다. 1차 미팅에서는 예선 3경기를 준비하는 피지컬적인 면에 대해 대화했다. 슈틸리케 감독에게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히 지켜야 한다.”

공식적인 인터뷰를 마친 뒤 환담시간에도 정 수석코치는 “한국에서는 감독의 일이 있고 코치의 일이 따로 있다. 때론 감독에게 보고하지 않고 코치선에서 처리하는 일도 있는데, 히딩크 감독 시절에 그랬다가 크게 혼이 났었다. 이번에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보고할 것”이라고 했다. 

정 수석코치의 소통은 이미 시작됐다. 구자철이 뛰는 분데스리가 경기를 보다가 부상 사실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보이스톡을 통해 연락을 취했다. 기성용, 이청용 등 2010 남아공월드컵 당시 함께 했던 선수들, 제주유나이티드와 전남 감독 시절 함께 한 구자철, 지동원 등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과도 보이스톡을 통해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설기현 코치 등 2002 한일월드컵 멤버였던 기존 코칭스태프와도 교감을 나눴다.

황선홍 서울 감독은 “아무래도 선수가 감독과 직접 소통하기는 어렵다. 거쳐서 가는 게 편하다. 정해성 코치님이 2002년 당시에 그런 가교 역할을 아주 잘해주셨다. 농담도 잘하시고, 맏형 같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정 수석코치는 “자꾸 기강 이야기를 하는 데 내가 군기반장으로 온 것 같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엄한 이미지이지만, 대표팀 분위기를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강하게 만들 수 있는 역할이다. 정 수석코치는 ‘강하게’가 아니라 ‘유연하게’하기 위해 왔다고 강조했다. 

설기현 코치와 차두리 분석관이 선수단과 슈틸리케 감독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지만, 나이 차이가 적지 않다. 슈틸리케 감독 보다 4살 어린 정 수석코치는 설기현 코치와 차두리 분석관이 슈틸리케 감독과 사이에서 겪을 수 있는 어려운 부분을 해소해줄 수 있는 무게감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정 수석코치는 한국에서 월드컵이 갖는 의미, 대표팀이 보여야 하는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다. 한국축구의 정서를 알며, 한국 선수들의 특성도 잘 안다. 슈틸리케 감독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을 읽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더 강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인물이다. 더불어 대표 선수들을 정신적으로 더 강하게 만드는 과정에도 역할을 할 수 있다. 

“10년, 15년 전과 세대 차이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국가대표에 걸맞은 자세와 경기력을 보여줘야 하는 것은 같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선수는 팀을 통해 가치를 보여줘야 한다. 개인이 팀 보다 앞서면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팀의 중요성을 일깨울 것이다. 내부적인 일을 외부에 발설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에 동감한다. 팀 내부 결속을 다질 수 있도록 하겠다.”

정 수석코치가 감독의 역할까지 할 수는 없다. 감독과 코치로 수 많은 경험을 쌓은 정 수석코치는 자신이 해야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정 수석코치가 당장 효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은 K리그 선수에 대한 더 면밀한 파악이다.

“K리그의 모든 감독들과 만나서 대화할 예정이다. 선수 추천도 받고 선수 상황에 대해서도 파악할 것이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서 슈틸리케 감독에게 보고할 것이다. 발품을 팔겠다. 벌써 최강희 감독과는 통화를 했다.”

정 수석코치는 “슈틸리케 감독과 미팅을 하고 나서든 생각은 충분히 소통이 되는 느낌이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감독님과 더 빨리 가까워져야 한다. 그래야 잘 소통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기대감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경기 결과뿐이다. 슈틸리케 감독 유임과 정 수석코치 선임이라는 결정을 내린 축구협회의 판단이 옳았는지는 6월 카타르 원정 경기를 통해 검증될 것이다.

사진=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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