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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포항] 김완주 기자= 달리기가 싫어 골키퍼 장갑을 꼈던 12세 소년은 K리그에서 가장 주목 받는 젊은 골키퍼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포항스틸러스 골키퍼 강현무는 힘든 시간을 이겨내며 주전으로 올라섰고, 이제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지난 18일 경북 포항시 송라면에 위치한 클럽하우스에서 강현무를 만났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다 내려온 강현무는 인터뷰가 익숙지 않은 듯 “경기장 말고 다른 곳에서 인터뷰하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무슨 말 해야 되는 거에요?”라며 쑥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4년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포항에 입단해 벌써 프로 5년차를 맞았지만 지난 해 처음 주목 받기 시작한 터라 신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4년의 기다림 끝에 프로에 데뷔한 강현무는 지난 해 포항의 골문을 지키며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알렸다. 평소와 다른 마음가짐으로 시즌을 준비했다는 강현무는 2018년에 이루고 싶은 게 많다.

 

긴 기다림 끝에 찾아온 기회, 놓치지 않았다

2017년 3월 12일, 포항 스틸야드의 선발명단에 생소한 이름의 골키퍼가 이름을 올렸다. 주인공은 강현무. 1, 2순위 골키퍼였던 노동건과 김진영의 부상으로 얼떨결에 데뷔전을 치르게 된 강현무는 광주의 유효 슈팅 4개를 모두 막아내며 만원관중이 모인 홈 개막전에서 무실점 경기를 펼쳤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강현무는 눈물을 쏟았다. 강현무에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강현무는 2014년 포항제철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프로에 입단했다. 스스로 “고등학교 3학년 때 잘하긴 했지만 바로 프로에 올라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라고 표현할 만큼 깜짝 입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강현무는 부모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축구를 하게 된 케이스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는데 운동장 5바퀴를 뛰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축구를 그만두고 싶었는데 부모님은 절대 못 그만두게 하셨어요. 감독님도 마찬가지였고요. 원래는 수비형 미드필더나 공격수를 봤는데 경기 중에 뛸 일이 없는 골키퍼가 정말 쉬워 보여서 사정사정해서 골키퍼가 됐어요. 그런데 골키퍼도 훈련 때 똑같이 뛰더라고요. 골키퍼 시켜달라고 해서 골키퍼가 됐는데 또 힘들다고 하면 혼날까봐 할 수 없이 계속 골키퍼를 했죠.”

어쩔 수 없이 유지한 선수 경력이지만 제법 소질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때 150cm 초반이던 키가 중학교 1학년 때 20cm 이상 자랐다. 중학교에서 공을 잘 막다 보니 포항 유소념팀인 포항제철고로 진학하게 됐다. 1, 2학년 때는 기회가 없었지만 3학년이 되자 다시 눈에 띄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전 마지막 대회에서는 골키퍼 상을 받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아무리 잘했다고 해도 프로는 완전히 다른 무대였다. 게다가 그의 앞에는 당시 K리그 최고 골키퍼로 꼽히던 신화용을 비롯해 김다솔, 이진형 등 수준급 형들이 버티고 있었다. 강현무도 욕심 내지 않았다. 1년차에는 동계훈련 때 연습경기 45분을 뛴 게 전부였고, 2년차에도 연습경기에만 몇 번 나설 뿐 1군 데뷔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강현무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냥 배운다는 마인드로 운동을 해서 힘든 게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3년차 때부터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솔직히 2년차까지는 할 만 했어요. 3년차가 되니까 욕심도 나고 자신이 생기면서 기다리는 게 엄청 힘들더라고요. 인천유나이티드에서 게임을 뛰는 친구 (이)태희를 보면서 ‘나도 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도 들고 많이 부러웠죠. 부모님께 힘든 내색을 하면 돌아오는 답은 ‘경기 뛰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까 포항에 있으면서 운동만 열심히 해라’였어요. 축구 아니면 잘못된 길로 빠질까봐 걱정이 많으셨던 것 같아요.”

 

그렇게 3년을 버틴 강현무에게 갑자기 기회가 찾아왔다. 골키퍼 2명이 부상을 당하며 선발로 나가게 된 것이다. 강현무는 처음 선발 출전 소식을 듣고 경기장에 이동하면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실수하면 안 되는데 어쩌지’라는 생각만 반복했다고 설명했다.

한 차례 실수는 있었다. 골문을 비우고 나온 강현무는 높이 날아오는 공을 머리로 한번 튕긴 뒤 손으로 잡았다.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한 장면이었다. 강현무 눈에도 아직도 그날의 그 장면이 생생하다.

“손 안 쓰고도 공을 잡을 수 있겠다는 자신이 있었어요. 원래는 가슴으로 공을 잡아놓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높게 날아오더라고요. ‘아 이거 큰일났다’ 생각했는데 손이 올라가기엔 이미 늦은 상황이라 헤딩을 했죠. 그전에는 머리로 공을 받아본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끝나고 감독님은 ‘헤딩을 할거면 3~4번은 하고 잡아야지 왜 한번에 잡았냐’며 웃으며 농담을 하셨어요. 골키퍼 코치님한테는 살짝 혼났죠.”

강렬한 데뷔전을 치른 강현무는 이후에도 안정적인 선방 능력을 보이며 골문을 지켰다. 프로에서 3번째 경기를 치른 후부터는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겨 편한 마음으로 경기장에 나섰다. 그렇게 4년을 기다린 어린 골키퍼는 포항의 주전이 됐다.

 

0점대 방어율, 그리고 아시안게임

2018년은 강현무에게 중요한 해다. 늘 도전자로 시즌을 준비하다가 도전을 받는 입장을 처음 경험했다. 노동건이 수원삼성으로 임대 복귀한 자리에 부천FC1995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류원우가 합류했다. 초반에는 다시 경쟁을 해야 한다는 걱정도 있었지만 경쟁에서 지더라도 예전에 하던 대로 열심히 준비하며 기다리자고 다짐했다. 현재까지는 강현무가 경쟁에서 앞서있다.

프로 경험이 쌓이며 예전엔 안보이던 것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강현무는 지난 달 11일 전남드래곤즈전에서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페널티킥을 선방했다. 자신의 파울로 내준 실점 위기를 스스로 막았다. 선수들이 어릴 때는 골키퍼를 속이기 위해 공을 찰 방향과 반대되는 곳을 쳐다보는 데, 프로에 와보니 미리 공을 찰 방향을 보고 그쪽으로 찬다는 게 강현무가 경험을 통해 얻은 노하우다. 이날도 강현무는 하태균의 킥 방향을 미리 예측했다.

15일 경남FC 김효기의 바이시클킥 명장면에 등장한 '명품 조연'도 강현무였다. 강현무는 당시를 회상하며 “거기서 슈팅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김효기가 공을 잡아 놓거나 뒤에 있는 선수에게 흘릴 거라고 생각하고 자리를 잡았는데 갑자기 공이 날아왔다. 뒤늦게 손을 뻗었는데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올 시즌 강현무는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하나는 0점대 방어율이다. 지난 해 강현무는 리그 26경기에 나서 33실점을 했다. 나쁘지 않은 기록이지만 강현무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런데 계획과 달리 초반 흐름이 좋지 않다. 벌써 9경기에서 12골을 내줬다.

“작년에 무실점이 6경기인가 7경기 밖에 없어요. 올해는 무실점 10경기를 목표로 잡았는데 벌써부터 이러니 큰일이에요. 바짝 몰아서 해야겠어요. 시상식 욕심도 있어요. 그래서 0점대 방어율을 하고 싶어요. 남은 경기에서 무실점 경기를 많이 해야 해요. 그러면 팀도 지지는 않고, 팬들도 좋아할 테니까요.”

 

다른 목표 하나는 올해 여름 열리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는 것이다. 강현무는 지난 1월 U-23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로 나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대표팀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경기 내용과 성적을 보여줬지만 강현무만큼은 제 몫을 했다고 평가 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주전 자리를 장담할 수 없다. 전북의 송범근이 연일 무실점 경기를 펼치며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아시안게임에 대한 욕심은 당연히 있어요. 이번 중국 대회가 대표팀 주전으로 뛴 첫 대회였어요. 사람들은 잘했다고 평가하는데 골을 너무 많이 먹었어요. 6경기 9실점이면 골키퍼는 할말 없죠. 범근이가 견제 안 된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죠. 그런 건 신경 안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내가 할 것만 열심히 하면 기회가 오겠죠.”

“올해 그리고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0점대 방어율로 시상식장에 가는 거에요. 둘 다 꼭 이루고 싶어요. 작년보다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사진=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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