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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포항] 김정용 기자= 김광석의 머리모양은 예나 지금이나 덥수룩한 스타일이다. 그러나 본인은 “예전에 훨씬 길었죠, 지금은 많이 짧아진 거예요”라며 티나지 않게 큰 변화가 있었다고 말한다. 포항스틸러스 수비수 김광석도 예나 지금이나 늘 주전인 선수지만 그 속에서 여러 변화가 있었다. 이젠 끝을 생각할 때가 됐다.

지난 18일 경북 포항시 송라면에 위치한 클럽하우스에서 김광석을 만났다. 김광석은 올해 포항 주장을 맡은 뒤 여러 번 인터뷰를 했고, 여러 번 은퇴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이번엔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정했다. 앞으로 3년, 2020년이 선수로서 마지막 해가 될 것이다. 만 37세면 충분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때까지 어린 선수들에게 포항의 유산이 뭔지 알려주고 싶다는 것이 “늘 구단에 감사한다”는 김광석의 목표다.

 

다음은 김광석과 한 인터뷰 전문.

-군 생활을 제외하면 ‘원 클럽 맨’입니다. 포항에서 처음 뛴 2002년이 지금도 생생한가요?

2001년 10월부터예요. 그때 테스트를 받으러 여기 왔으니까요. 다 기억나요. 이 클럽하우스가 2001년에 준공된 건데 당시로선 최신이었고, 저에겐 신세계였죠. 자신감은 별로 없었어요. 그리 인정받는 유망주가 아니었기 때문에 최고 명문 구단에서 받는 테스트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생각했죠. 어차피 입단은 안 될 테니 잘 배우고 가자는 생각으로 왔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여기 있게 된 거죠.

-그때도 최순호 감독이었고, 지금도 최 감독인데요.

감독님 기억은 별로 없어요. 제가 2군에만 있었기 때문에. 처음 왔을 땐 테스트를 일주일만 받고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시즌 끝날 때까지 계속 있게 됐어요. 그때도 계약할 줄은 몰랐죠. 계속 운동만 하다가 이제 집에 가겠구나 싶었는데 12월에 연습생으로 계약하자는 게 엄청 의외였고, 엄청 기뻤죠. 근데 그때까지도 1년 뒤 나갈 줄 알았어요. 전 프로에 올 실력이 아니었거든요. 당시 2군 코치로 계시던 조긍연 선생님이 늘 과제를 내주셨어요. 좋은 환경에서 좋은 훈련 받는다는 생각으로 여기서 지냈죠.

-포항의 프로 선수라는 자각은 언제 생겼나요?

반전은 군대를 다녀오면서 생겼죠. 군대 가기 전까지는 10경기 정도(2년간 9경기)밖에 못 뛰었는데, 제대한 뒤 포항에 대한 마음이 생기고 더 오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도 어차피 1군과 2군을 왔다 갔다 하는 신세였어요. 다른 팀에서 저를 원할 거라는 생각은 한 적이 없어요. 포항이 계약을 해 주면 연장하고, 또 해 주면 연장하고, 그런 식으로 지금까지 왔어요. 포항이 우선적으로 계약을 해줬다는 게 감사하죠.

-축구를 늦게 시작했고 프로에 올 땐 연습생이었지만, 지금은 K리그 최고 수준의 센터백이 됐잖아요. 남들보다 기량이 빨리 늘었다는 뜻인데요. 사실은 축구 천재였던 것 아닌가요?

무슨 말씀을. 누구나 연습을 하면 실력이 늘어요. 그게 축구죠. 연습 잘 하고 몸 관리만 잘 하면 누구든 버틸 수 있어요. 전 키도 작은 편(182cm)이고요. 재능 없이 그냥 버틴 거예요. 그렇게 15년을 왔다는 게 새삼스럽긴 해요. 와이프와도 자주 이야기하죠. 이렇게 오래 선수 생활을 할 줄 몰랐다고. 늦게 시작한 것치고 성공했다고.

-포항에서 2002년부터 뛰면서 제일 좋았던 해는 언제인가요?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요. 우승할 때는 다 좋았죠. 멤버도 좋았고. 2007년, 2012년(FA컵), 2013년이 기억에 남네요. 그중 제일 좋았던 건 용병 없이 더블 우승했던 2013년이에요. 최초 기록이니까. 2013년 후반기 때 제일 잘 나간다는 기분이 들었죠. 그땐 재밌었어요. 진다는 생각이 안 들었으니까요. 그 선수들이 지금은 저만 남기고 다른 팀에 가 있긴 하지만요. 다른 팀 애들과 경기 끝나고 종종 통화해요. 추억에 젖는거죠. ‘그때가 좋았지’라는 말을 나눠요.

-그럼 제일 힘들었던 때는요?

그건 포항이 아니고 군대 시절. 군대를 일찍 갔기 때문에 다른 상무 선수들보다 더 본격적으로 ‘쫄따구’ 생활을 했으니까요. 더 이상 이야기해드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군인 선수 사이에서도 심부름을 한다거나 고생할 게 엄청 많습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김광석 선수는 흔히 K리그의 대표적인 커맨더라고 하잖아요.

커맨더가 뭐예요? 아, 지휘하는 수비수? 전 아니에요. 남을 지휘하지 않아요. 선수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는 스타일이죠. 저는 남을 지휘할 만한 레벨이 못돼요.

겸손이 점점 지나치기 시작하는데. 그럼 장점을 말해주시겠어요?

솔직히 없어요. 전 장점이 있는 스타일이 아니예요. 운이 좋은 선수죠.

-그동안 많은 파트너들이 거쳐 갔죠. 김형일, 김원일 선수가 있었고 지금은 배슬기, 하창래 선수가 있고.

황재원 형도 있어요. 아, 맨 처음은 김성근 형이었죠. 조성환도 있었고, 형들에게는 여러 가지를 배웠어요. 이 형이 어떻게 경기를 뛰는 선수가 됐을까 궁금했죠. 그 장점을 흡수하려 했어요. 성근이 형은 저와 키가 비슷하거든요. 그걸 극복하는 법을 배웠고요. 패스와 어떤 위치에 서야 하는지 배웠죠. 재원이 형에게는 헤딩의 타점을, 성환이에게는 어떻게 해야 공격수가 싫어하는지 배웠죠. 그리고 김형일을 비롯한 후배들에겐 제가 맞춰가는 거예요. 애들이 주목받아서 더 큰 무대로 가면 뿌듯해요. 내가 잘 받쳐줬다는 거니까. 저는 포항에 있는 걸 만족하고요. 이 정도면 부족하지 않은 돈인데 더 욕심 부리기도 그렇고.

-그렇게 많이 흡수했으면 이제 기량이 완성된 것 아닌가요? 스스로 못한다는 말 좀 그만 하고 본인 자랑도 좀.

에효. 이제 나이가 단점이죠. 더 배우고 싶은데 몸이 안 받쳐주잖아요. 재작년에 발목수술하고 나서 순간 스피드가 느려졌다는 걸 느꼈어요. 나이가 들수록 예전만큼 스피드가 안 나오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딱히 기량이 떨어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던데요. 꼭 은퇴를 염두에 둔 사람처럼 이야기하시네요.

더는 신체조건이나 재능이 (이)동국이 형처럼 좋지 않잖아요. 솔직히 포항과의 계약이 내년까지예요. 그럼 서른일곱이죠. 전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 서른여덟에 은퇴할 거예요. 34살 때 세운 목표가 딱 4년만 더 하자는 거였어요. 포항에서 은퇴하고 싶어요. 설령 제 뜻과 다른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더도 덜도 아닌 후년까지 하고 은퇴할 겁니다. 이 나이까지 축구를 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해요. 후회는 남지 않을 것 같아요.

-머리 모양이 늘 비슷한데 그 머리를 고수하는 건가요?

점점 짧아지고 있는 건데요? 제 나름대로는 큰 변화가 있는 건데. 사실 짧게 자른 머리가 잘 안 어울려요. 미용실을 자주 가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다보니 이 머리가 된 거죠.

-포항이 다른 팀과 다른 점, 특별한 점은 뭔가요?

저는 포항에만 있었으니까 잘 모르죠. 다른 팀에서 온 선수들 말론 우리 팀이 착하대요. 운동을 떠나서도 사람들이 좋고, 서로 친절하고요. ‘내가 대단한 선수인데’ 하는 생각을 가진 선수가 없고 서로를 받쳐주고 남을 돋보이게 해 주는 팀이죠.

-아까 말한 김광석 선수 자신의 장점과 똑같잖아요. 결국 김광석 스타일이 팀에 퍼졌다는 말을 하고 싶으신 것 아닌가요?

아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애들이 착해서 그래요.

사진= 픗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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