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는 K리그 현장으로 직접 달려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캐내고 가공해 '케시경'을 통해 독자와 만난다. 렌즈를 바짝 붙이고 관찰하는 수준을 넘어, 내시경처럼 속내까지 전달한다. 2편 주인공은 공격적이고 젊은 축구를 추구하는 포항스틸러스다. <편집자주>

[풋볼리스트=포항] 김정용 기자= 최순호 포항스틸러스 감독은 철학자, 선생님 등으로 불린다. 아무리 구체적인 질문을 해도 원론적인 대답이 돌아온다. 최 감독의 철학 때문이다. 그는 “원인이 아니라 ‘원인의 원인’을 찾아내서 개선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늘 근본으로 돌아가 사고하려는 것이 선수 시절 탁월한 감각을 발휘했던 최순호의 가치관이다.

그렇다고 해서 늘 선문답만 늘어놓지는 않았다. 지난 19일 포항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최 감독은 언젠가 포항을 떠난 스타 선수들을 다시 영입해 ‘자체 육성 올스타’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을 밝혔다. 유독 공격적인 선수 배치와 전략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도 전술적으로 잘 정리된 답을 내놓았다. 그의 이야기를 몇 가지 화두로 정리했다.

 

#1. 포지션 플레이를 강조하는 이유

최 감독은 지난해 전반기 좋은 성적을 거둘 때부터 줄곧 “포지션 플레이”를 강조했다. 최 감독은 포지션과 스위칭을 중요시한다. 팀 포메이션에 맞게 각 선수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선수 사이에 네트워크가 형성되지, 제멋대로 움직인다면 조직력이 깨지기 때문이다. 스위칭을 강조하는 것 역시 한 선수가 자리를 비우면 다른 선수가 그 위치를 메워 대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최 감독은 포지션 플레이가 축구의 기본이고, 유망주 육성을 강조하는 자신의 방침에도 잘 맞는다고 설명했다.

“한국 선수들이 받아온 훈련에는 기본적인 문제가 있다. 축구의 네 가지 요소 기술, 전술, 체력, 정신에 모두 문제가 있었다. 이걸 바꿔주고 싶다. 바꿔줄 방법을 찾았고, 그걸 훈련을 통해 선수들에게 전달해주고 있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겠다. 나는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이제 체력과 정신은 준비됐다. 기술과 전술적으로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 경기 운영을 하면 된다’라고. 서로 도와주려면 포지셔닝과 포지션 체인지가 중요하다.

기본적인 틀을 만들어주는 게 내 일이다. 그 속에서 선수들의 약속된 플레이가 나오고, 기본에 따른 플레이가 나온다. 이번 시즌에 내 철학에 따라 좋은 골 장면이 몇 번 나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선수들의 창의성이 발현될 여지를 준다. 공을 잡았을 때는 각 선수의 자율에 맡긴다. 내가 기본 틀을 만들어줘야 재능을 펼칠 수 있다.

지난 번(2000~2004년 포항 감독)에도 내 철학은 비슷했다. 다만 그땐 너무 젊었고, 내가 미숙해서 서포터의 반발을 산 측면도 있었다. 이젠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유소년과 청소년 축구를 경험했고 행정도 했다. 시야가 넓어졌다. 여러 경험을 한 게 감독으로서 내 역량에 도움이 됐다.

선수들을 성장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팬들은 오랜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빠른 속도에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중요하다. 작년에 실재로 해 보니까 8주 만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고, 시즌 초반에 좋은 경기력이 나왔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선수 변화가 많아서 걱정을 했지만 내가 만든 훈련 프로그램이 선수들에게 잘 전달됐고 각 포지션의 선수들끼리 조화도 이뤄졌다. 시간이 지나면 더 나은 축구를 할 수 있을 거다. 팬들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전보다 믿어주시는 거 아니겠나.“

 

#2. 왜 공격축구를 고수하는가

포항의 선수 구성은 K리그에서 가장 공격적이다. 좌우 측면 수비는 거의 윙어처럼 공격에 가담하는 강상우, 권완규가 맡는다. 중앙 미드필더 중 수비적인 선수는 채프먼 하나뿐이고, 나머지 두 자리는 김승대와 정원진이 맡는다. 김승대는 공격수, 정원진은 윙어로 더 알려진 선수들이다. 최 감독에게 공수 균형이 무너진 것 아니냐고 의문을 던졌다. 그는 경기 운영 능력과 공격의 마무리가 오히려 수비에 도움을 주는 거라고 이야기했다.

“팀의 균형에 대한 이야기다. 굉장히 중요하지. 그런데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가 중요하다. 나는 항상 공격에 둔다. 보통 ‘수비를 잘 하는 팀이 성과를 낸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건 토너먼트 대회 이야기다. 장기 리그 대회에서는 오히려 패스가 좋고 경기 운영이 좋은 팀일수록 성적을 내기 좋다.

그래야 수비도 편해진다. 공격이 정상적으로 잘 플레이하면 마무리가 잘 된다. 그럼 수비 부담이 줄어든다. 반면 패스 연결이 끊겨서 자꾸 속공을 당하면 수비가 엄청나게 힘들어진다. 그래서 나는 공격 시작 지점부터 잘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앙 수비수부터, 골키퍼부터 시작하는 게 공격이다. 공을 잡으면 그라운드 어디에 있든 자신이 공격을 전개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한국 선수들은 그런 사고방식을 갖지 못했다. 그걸 고쳐주는 중이다.

정원진을 왜 중앙 미드필더로 쓰냐고 물어보는데, 나는 선수의 자질을 판단하기 위해 과거를 먼저 알아본다. 원진이는 대학 때부터 축구를 깊이 해 온 친구다. 처음엔 지금 위치를 어색해 했지만 갈수록 잘 하고 있다. 이제 원진이가 개인적으로 해 줘야 하는 것들만 잘 해주면 된다. 더 정확한 패스, 더 정확한 슈팅 같은 건 내가 대신 해줄 수 없는 거다. 원진이는 그런 능력이 있다.“

#3. 포항은 한국 축구의 베이스캠프, 그렇다고 선수를 내주기만 할 순 없다

선수 시절부터 팀의 ‘레전드’였던 최 감독은 포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지난 2016년 포항 감독으로 돌아온 뒤 했던 일 중 하나는 포항 출신 선수들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K리그 여러 팀에서 뛰고 있는 스타 선수들부터 해외파까지, 포항은 수많은 대표급 선수를 배출해 온 명문 구단이다. 최 감독은 이들에게 ‘포항 출신이라는 걸 잊지 말라’는 편지에 자필 서명을 담아 우편으로 부치기도 했다.

“다시 포항에 오면서 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준비한 모든 걸 축구의 고향 포항에서 다 풀어놓겠다고. 우린 포스코라는 큰 그룹에서 지원을 받기 때문에 포스코의 이념과 맞춰야 한다. 포스코는 포항제철 때부터 대한민국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는 회사다. 철강은 기간산업이니까. 축구팀 역시 모기업의 이념에 맞게 대한민국 축구의 베이스캠프 노릇을 해 왔다. 우린 최초 외국인 선수 영입, 전용 구장 건립, 클럽하우스 건립, 유소년 시스템 등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다. 또 많은 대표 선수를 배출한 팀이다.

그동안 키운 선수들이 여러 팀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것 때무에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전북현대와 경기할 때는 대표적인 포항 출신 선수 이동국, 손준호에게 실점했다. 서울과 경기할 때는 신진호가 우리를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런 유스 출신 선수들을 상대로 어려움을 겪는다. 포스코와 포항스틸러스는 그들을 육성했다는 자부심이 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한국 축구를 위해 선수를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여건을 조성해서 포항 출신 선수들을 모으고 싶다. 내 계획이 그렇고 구단도 알고 있다.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포항 출신이 굉장히 많지 않나. 어떤 선수는 나이가 들어서 올 수도 있을 거다. 비용 측면에서도 준비를 해서, 가능한 빨리 포항 시민들, 우리를 오래 응원해주신 팬들께 그런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여건만 된다면 우리 출신 선수들을 모을 수 있고 그러면 굉장히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포스코가 지난 4년 동안 구조조정을 하느라 스틸러스에 지원을 많이 못 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가능한 일이다. 우리 포항시가 얼마전 지진 등 어려 문제로 침체되고 있다. 축구팀 운영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우리 역할을 하고 어려워하는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드러야 한다.“

#4. 훈련이 아닐 때도 선수들과 교감할 방법을 생각한다

전술을 짜는 코치라기보다 ‘큰 그림’을 그리는 경영자에 가깝다는 것이 가까이에서 최 감독을 보는 구단 직원의 평가다. 최 감독은 선수들에게 다가갈 때도 축구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한달에 한 권씩 독서 모임을 가졌다. 작년에는 ‘마시멜로 이야기’ 등 읽기 쉬운 자기계발서 위주였다. 올해는 난이도가 좀 올랐다. 이어령의 ‘젊음의 탄생’이 가장 최근 독서 모임 대상 도서였다.

“책도 다 교감이다. 읽은 뒤 반드시 미팅을 한다. 내가 선수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책에 담겨 있다. 그런 책을 고른다. 내가 붙잡고 직접 이야기하면 잔소리가 된다. 대신 같은 책을 읽으면 어느 정도 같은 내용을 생각할 테니 공감이 된다. 커뮤니케이션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운동하는 사람들이라 공부하는 시간이 적었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다른 학생들과 달리 오전수업만 받고 운동하는 삶을 살았다. 우리가 육체적으로는 강한데 지적인 면에서는 떨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책을 읽도록 한다. 책을 닮아갈 수도 있으니까. 육체와 지성의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는 문제도 있다. 지적인 면을 향상시켜야 다른 차원의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번 책은 좀 어렵다. 단어를 찾아가며 읽으면 재미는 있을텐데 선수들에게 익숙한 일은 아니다. 최근에 한국프로축구연맹 주관으로 이어령 선생과 감독들이 만났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 아들이 추천하길래 이 책을 골라봤다. 이번 달엔 방법을 좀 바꿔보려 한다. 독서 모임 대신 각자 좋아하는 시를 한 편씩 뽑아오라고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5월은 가정의 달 아닌가. 그래서 우리 선수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한 가지 시켜보려고 한다. 가족에게 편지쓰기다. 요즘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어차피 훈련 스케줄은 프리 시즌부터 많이 준비해줬기 때문에 그날그날 새로 만들 필요는 없다. 아까 샤워하면서 편지쓰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 방, 내가 2004년에 쓰던 방과 똑같은데, 여기가 클럽하우스 1층이다. 여기 있으면 선수들의 소리가 문 너머로 언뜻 들린다. 요즘 웃음소리가 참 많이 들리는데 그게 마음에 든다. 선수들이 밝고 젊은 분위기를 유지해줘서 나도 기분이 좋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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