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류청 기자= “스포츠 과학자는 선수에게 지시하는 게 아니라 이해시켜야 한다.”

레스터시티와 스웨덴 대표팀에서 스포츠 과학자(혹은 퍼포먼스 매니저)로 선수 체력과 컨디션을 관리하는 폴 발섬은 계속해서 “이해”를 언급했다.

그는 세계적인 스포츠 측정 업체인 ‘캐타펄트’가 한국에서 연 워크샵에 연사로 참가했고, 8일 오전 서울에서 ‘풋볼리스트’와 만났다. 발섬은 ‘2014/2015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에서 레스터시티가 우승할 때 일조했던 인물이다. 당시 레스터시티는 시즌 내내 부상자를 가장 잘 관리해서 기적 같은 결과를 낳았다. 발섬은 10명의 동료와 함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과 선수단을 도왔다. 최근에는 스웨덴 대표팀을 도와 이탈리아를 꺾고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에 오르는 성과를 냈다.

레스터시티와 스웨덴을 오고 가며 선수단 체력과 컨디션을 관리하는 발섬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지속적인 접촉과 의사소통을 꼽았다. 그는 입버릇처럼 “과학은 중요하지만, 축구를 구성하는 한 가지 부분일 뿐이다. 결정은 사람이 한다. 과학은 도울 뿐”이라고 했다. 아무리 좋은 과학 기술과 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감독과 선수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소용 없다는 이야기다. 선수들 상태를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선수와 직접 소통하는 게 시작이라고 했다.

#소속팀 데이터 챙기고, 선수와는 소통하고

대표팀은 연속성이 떨어지기에 이런 작업을 프로팀보다 더 잘해야 한다. 발섬은 스웨덴 대표팀이 선수를 관리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선수를 구단에서 빌려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선수가 소속된 팀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게 중요하다. 지난 소집 이후에 선수가 얼마나 훈련했고 얼마나 뛰었고 어떤 상태였는지 알아야 한다. 소속팀 담당자와 긴밀하게 연락하고 자료를 주고 받는 게 중요하다. 모든 팀은 아니지만, 많은 팀 담당자와 협력 관계에 있다”고 말했다.

선수와도 연락을 유지한다. 소집 전에는 정기적으로 전화로 상태를 묻고 몸상태를 체크하는 설문지를 주고 받는다. 소집 이후에는 단계별로 상태를 점검해 경기 당일에는 모든 선수가 같은 몸상태로 뛸 수 있게 만드는 게 목표다. 발섬은 “소집 첫 날은 소속팀에서 받은 자료와 직접 소통을 통해 상태를 점검한다. 소속팀에서 많이 뛰고 온 선수도 있고 거의 뛰지 못하고 온 선수도 있다. 개인별로 알맞은 처방을 해야 한다. 많이 뛴 선수는 무조건 쉬어야 한다”라고 했다.

“목표는 3일째 되는 날 모두가 완벽한 몸으로 전술 훈련을 하는 것이다. 컨디션 관리는 그 자체로 완벽하게 축구에 도움을 주는 게 아니다. 그 당시에 필요한 전술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선수들 몸을 만들어야 한다. 전술적인 부분과 컨디션 관리가 함께 좋은 시너지를 냈을 때 팀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이탈리아전 앞두고 준 ‘작은 변화’

발섬은 이탈리아와 한 ‘2018 러시아 월드컵’ 유럽 플레이오프를 앞두고는 기존 방식을 조금 바꿨다고 고백했다. 그는 스웨덴에서 한 1차전(1-0 승리)이 끝나고 이탈리아 밀라노 원정을 갈 때 선수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대표팀은 강하고 특히 산시로에서는 한 번도 지지 않은 팀이다”라며 “결과적으로 우리는 단단하게 수비하면서 역습을 노릴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뛰어야 했기 때문에 체력 관리가 중요했다. 특히 회복이 중요했다”고 했다.

“1차전이 끝나고 2차전을 준비하며 선수들에게 직접 세 가지를 물었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회복하는지, 어떤 방법을 써서 회복하는 게 좋은지, 우리가 어떻게 회복을 도우면 좋은지. 스포츠 과학자나 퍼포먼스 매니저는 이해를 도와야 한다. 선수가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하고 데이터를 들이대면 역효과가 날 뿐이다.”

결국 스웨덴은 단단하게 뭉쳐 이탈리아를 넘었다. 2차전에서 0-0으로 비기며 월드컵 본선으로 갔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젊은 스웨덴이 해냈다. 그는 “잘 조직된 팀은 많이 뛰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 전술적인 부분과 체력적인 부분이 어우러져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라고 했다. 스웨덴을 10년 동안 이끌었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킴 쉘스트롬 그리고 안드레아스 이삭손도없이 월드컵으로 갈 수 있었던 이유다.

#스웨덴, 월드컵 준비 시작했다   

월드컵 본선 티켓을 딴 스웨덴은 발 빠르게 본선을 준비한다. 내년 1월 UAE 아부다비에서 에스토니아, 덴마크와 친선전을 한다. 이때 경기에 나가는 선수는 스웨덴이나 덴마크 등 스칸디나반도에서 뛰는 젊은 선수다. 발섬은 “1월 2경기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스칸디나반도에서 뛰는 선수들은 내년 1월에 휴식기를 갖고, 3월이면 시즌이 끝난다. 유럽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5월에야 시즌을 마친다. 선수들 간에 컨디션 격차를 줄이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스웨덴 1월 친선전은 한국이 하는 1월 전지훈련과 성격이 거의 같다. 발섬은 이를 통해 젊고 가능성 있는 선수를 발굴하고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월드컵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발섬과 스웨덴은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과 만난다. 그는 “월드컵 본선에 나가는 팀들은 모두 강하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물론 독일은 정말 강하기 때문에 예외다”라고 손을 내 저은 뒤 “우리는 즐라탄과 쉘스트롬 그리고 이삭손 없이 월드컵을 치러야 한다. 세 선수가 가진 경험은 정말 어마어마하다. 쉽지 않은 월드컵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오기 전 독일에서 열린 한 회의에 참석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발섬은 “조추첨을 하지 않은 시점이었다. 최소 40명이 넘는 분석 인원이 본선에 진출한 31개국 정보를 거의 다 조사했다고 하더라. 독일이 누구와 만나더라도 어려움이 없도록 준비한 것이다. 독일은 정말 강하고 철저하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발섬은 인터뷰를 마친 뒤 던진 “즐라탄이 대표팀에 복귀할까?”라는 질문에 “노 코멘트”라며 활짝 웃었다. 그는 “부상에서 상당히 빨리 회복해서 놀랐다. 하지만 월드컵 이야기는 아무도 모른다. 예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른 시간에도 진지하고도 유쾌하게 질문에 답한 발섬은 “월드컵에서 한국의 행운을 빌어줄 수는 없다”는 뼈 있는 농을 마지막으로 던지고 자리를 떴다.

사진=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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