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이탈리아세리에A는 13년 만에 한국 선수가 진출하며 다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수비 축구의 리그라는 통념과 달리 많은 골이 터지고, 치열한 전술 대결은 여전하다. 세리에A와 칼초(Calcio)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김정용 기자가 경기와 이슈를 챙긴다. 가장 빠르고 가장 특별하게. <편집자주>

유벤투스는 세계에서 가장 수비가 강한 팀 중 하나였다. 그 명성은 이번 시즌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19일(한국시간) 이탈리아 제노바에 위치한 스타디오 코뮤날레 루이지 페라리스에서 ‘2017/2018 이탈리아세리에A’ 13라운드를 가진 유벤투스는 삼프도리아에 2-3으로 패배했다. 이 패배로 승점 31점에 머무르며 선두 나폴리(승점 35)와 승점차가 벌어졌다.

후반전 초반에 이미 승부가 났다. 삼프도리아는 후반 7분 혼전 중 두반 사파타의 제공권을 활용한 헤딩골로 앞서갔다. A매치 기간 동안 한국, 중국을 상대로 무득점에 그쳤던 사파타가 세리에A로 돌아오자마자 득점을 다시 시작했다. 후반 26분 최고 유망주 미드필더 루카스 토레이라가 중거리 슛으로 득점했다. 후반 34분 토레이라가 올린 프리킥이 파비오 콸리아렐라의 발을 거쳐 수비수 잔마르코 페라리의 쐐기골로 이어졌다.

유벤투스는 12골을 터뜨린 섀도 스트라이커 파울로 디발라, 8골을 터뜨린 스트라이커 이과인의 활약에 힘입어 선두 경쟁을 하고 있다. 세리에A 득점 순위에서 디발라가 2위, 이과인이 5위에 올라 있는 강력한 콤비다.

그러나 공격수들의 활약에 수비 문제가 가려져 있었다. 삼프도리아를 상대로 3실점하며 약점을 노출했다. 유벤투스가 세리에A에서 3골 이상 내주는 건 드문 일이다. 2016/2017시즌 단 두 차례였고, 2015/2016시즌엔 한 번도 없었다. 유벤투스는 최근 9경기 중 8경기에서 실점하기도 했다. 강등권 SPAL(17위), 베네벤토(20위)를 상대로도 꼬박꼬박 골을 내줬다.

삼프도리아전에서도 이과인, 디발라는 제몫을 했다. 이과인은 후반 추가시간에 페널티킥 추격골을 넣었다. 후반전에 교체 투입된 디발라도 골을 터뜨리며 유벤투스는 무승부에 대한 희망을 살렸다. 그러나 남은 시간이 없었다.

 

케디라의 수비진 보호 실패

유벤투스는 전반전에 안정적인 수비를 하다 후반에 급격하게 무너졌다. 실점 중 두 장면에 케디라가 밀접하게 연관돼 있었다. 두 번째 실점 상황에서 케디라는 가스톤 라미레스를 막으려 가다가 토레이라에게 패스가 연결되자 멀뚱 바라보며 제대로 막지 않았다. 세 번째 실점은 더 심각했다. 케디라는 문전으로 공이 투입될 때 골대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수비 중이었다. 그러나 그 급박한 상황에서 콸리아렐라의 오프사이드를 항의하다 페라리의 침투를 놓쳤다.

이번 시즌 케디라의 경기력 하락은 수치로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경기당 태클 횟수가 지난 시즌 1.4회에서 이번 시즌 0.1회로 크게 하락했다. 가로채기는 한 시즌 만에 0.9회에서 0.7회로 떨어졌다. 상대 슛을 몸으로 막아낸 횟수는 0.2회에서 0.1회로 소폭 하락했다. 경기당 패스 횟수가 45.8회에서 33.7회로 감소했다. 경기당 롱 패스는 2.5회에서 1.4회로 떨어졌다.

케디라는 미드필더 파트너 미랄렘 퍄니치의 단점을 가려주는 것이 가장 큰 임무다. 정확한 킥과 패스 능력이 있지만 체구가 작은 퍄니치 옆에서 안정적인 수비 위치 선정으로 수비 불안을 최소화하고, 끊임없이 공을 주고받으며 패스 경로를 열어주는 것이 지난 시즌 케디라의 역할이었다. 이번 시즌엔 두 가지 다 안 되고 있다. 유일하게 상승한 건 공격력이다. 7경기 만에 3골을 넣으며 31경기 5골 4도움이었던 지난 시즌보다 득점 생산력이 좋아졌다. 그러나 본분에 충실하지 못했다.

‘감독들이 사랑하는 선수’ 케디라에겐 낯선 상황이다. 케디라는 기술적인 능력이 평범한 대신 탁월한 판단력과 전술 소화 능력, 성실한 움직임으로 팀에 공헌하는 선수다. 그러나 삼프도리아전을 비롯해 이번 시즌엔 집중력이 다소 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빌드업 문제가 장악력, 집중력 부족으로 이어져

유벤투스가 이번 시즌 핵심 수비수 두 명을 잃었지만 우려를 산 건 수비력보다 공격력이었다. 파리생제르맹으로 간 라이트백 다니 아우베스, AC밀란으로 간 센터백 레오나르도 보누치 모두 공격 전개에 큰 도움을 주던 뛰어난 패서였다. 수비적으로는 안드레아 바르찰리, 마티아 데실리오, 베네딕트 회베데스 등이 충분히 대체할 수 있었다. 삼프도리아전 중앙 수비는 조르조 키엘리니와 다니엘레 루가니가 맡았다. 골문은 잔루이지 부폰 대신 보이치에흐 슈쳉스니가 맡았다. 기량은 뛰어난 선수들이다.

문제는 단순한 수비력, 공격력에 국한되지 않고 복합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아우베스와 보누치의 공백으로 빌드업이 약해지면서 전체적인 경기 지배력이 떨어졌다. 기존 수비진의 롱 패스 능력과 맞물려 좋은 활약을 하던 왼쪽 윙어 마리오 만주키치, 아우베스의 부족한 에너지를 보완하던 오른쪽 윙어 후안 콰드라도 모두 경기력의 효율이 하락했다.

A매치 직후라 좌우 풀백 모두 후보 선수가 나온 삼프도리아전은 문제가 더 컸다. 풀백인 콰도 아사모아, 스테판 리히슈타이너 모두 공격에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미드필드 조직력이 좋은 삼프도리아가 부지런히 압박하자 빌드업이 되지 않았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디발라 대신 출장한 페데리코 베르나르데스키는 편한 상황에서 공을 받지 못하고 헤맸다.

전체적인 경기 장악력이 약해지면서 케디라가 할 일이 늘어났다. 지난 시즌 수비진 앞을 단단하게 지키며 패스 순환에 참여하면 대강 할 일이 끝났던 케디라는 이번 시즌 불안정한 경기 운영 속에서 개인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났다. 케디라는 갑자기 높아진 ‘업무 난이도’에 적응하느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벤투스는 새 미드필더로 로드리고 벤탄쿠르, 블래즈 마튀디를 영입했다. 벤탄쿠르는 플레이메이커 성향이 강한 선수라 퍄니치의 로테이션 멤버다. 케디라는 마튀디와 주전 경쟁을 벌이는 와중에도 꾸준히 출장하고 있다. 시즌 중 전술 실험과 가벼운 부상으로 자리를 비웠지만, 최근 세리에A 6경기 중 5경기를 선발로 소화하며 다시 주전 자리를 되찾았다.

문제는 지난 시즌 미드필더와 공격진을 고스란히 투입한다고 해서 같은 경기력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벤투스는 23일 바르셀로나와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홈 경기를 치른다. 지난 9월 원정 경기에서 0-3으로 대패한 상대다. 27일 크로토네전에 이어 12월 2일에는 선두 나폴리와 ‘6점 경기’를 한다. 중요한 시점을 앞두고 경기력 회복이 필요하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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