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서귀포] 김정용 기자= 류승우는 8일 저녁 10시쯤 잠자리에 누웠고, 이튿날 새벽 3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깝게 골 기회를 놓친 공격수들이 흔히 시달리는 불면증이다. 류승우는 제주유나이티드의 ‘조커’로 8일 홈 경기에 교체 투입됐다. 상대는 전북현대였다. 류승우 투입 이후 공격력이 나아진 제주는 전북을 밀어붙였고, 후반 26분 류승우가 이 경기에서 가장 결정적인 슛을 날렸다. 그러나 슛은 골대에 맞고 나갔다. 이후 역습을 맞은 제주는 0-1로 졌다. 이겼다면 선두 전북을 따라잡을 수 있는 경기를 놓쳤다.

류승우에겐 K리그에서 치르는 세 번째 경기였다. 중앙대 재학 시절인 2013년 U-20 월드컵에서 주목 받은 류승우는 이듬해 제주에 잠깐 몸담았다 바로 바이엘04레버쿠젠으로 이적, 유럽 생활을 시작했다. 브라운슈바이크, 빌레펠트(이상 독일 2부, 페렌츠바로시(헝가리) 임대를 통해 활약한 뒤 3년간의 유럽 도전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제주가 첫 K리그 팀이다.

이제 시작이다. 지난 7월 제주에 합류했지만 부상 후유증으로 한동안 경기를 뛰지 못했다. 활약은 이제 갓 시작됐다. 본격적으로 제주 선수가 된 류승우에게 유럽 생활 동안 얻은 것과 제주 생활에서 얻을 것이 뭔지 물었다.

 

어제 잘 잤나요?

- 아뇨. 한 3시쯤 잤나? 10시쯤부터 누워 있었는데. 진짜 잠 못 이루는 날이었어요. 아쉽고 허무해서요.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였는데 제가 기회를 놓쳤고, 운도 안 따랐던 것 같고.

 

경기 끝나고 조성환 감독이 씻으며 바로 위로를 했다는데

- 홈 경기 끝나고 클럽 하우스 들어오면 선수들 틈에서 감독님도 같이 씻으세요. 샤워장이 하나뿐이거든요. 거기서 만나서 이야기했어요. ‘너 잠 못 자겠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그 장면 때문에 힘들어하는 걸 아시니까 빨리 털어버리라고 하셨어요. 죄송하죠. 중요한 경기에 믿고 넣어 주셨기 때문에 더요. 더 연습해 골을 넣어드리는 수밖에 없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팀으로 왔지만 지난 3년 동안은 그렇지 않았죠. 유럽에서 유독 임대도 많이 다니고 고생을 많이 했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나요?

- 겉으로 보면 유럽 생활이 화려해 보일지라도 속으론 다들 어려워해요. 자리 잡고 뛰는 형들 봐도 다들 그래요. 축구 내적, 외적으로 적응해야 할 게 많아요. 괜히 고생했다고 생각하진 않고 힘든 생활 속에서 배운 게 많았던 것 같아요. 제 경우 처음엔 먹는 게 힘들었는데 1년 정도 지나니까 많이 개선됐어요. 결국 경기에 못 나가는 게 제일 힘들었죠. 경기를 뛰려고 거기까지 간 건데 못 뛰었으니까요.

 

그런 스트레스는 뭐로 풀었어요?

- 한식으로 많이 풀었던 것 같아요. 시간 지나면서 요리도 많이 해서 먹었고. 맛있는 거 해 놓고 혼자 영화나 드라마 보면서 풀었던 것 같아요. 된장찌개, 제육볶음 많이 해 먹었어요. 제 어머니 음식을 되게 좋아하기 때문에 어머니 레시피 그대로 따라하면 그 맛이 나더라고요. 어머니는 제 몸을 위해서 조미료를 안 넣고 천연재료로만 하세요. 그리고 제가 짠 걸 싫어하기 때문에 짠 음식도 안 하세요. 온전히 저에게 맞춘 레시피죠. 그리고 건강을 위해 설탕 대신 매실 엑기스를 넣는다든지 하죠. 한식 재료는 어머니, 아버지께서 가져다주셨어요. 저 보러 오시면 두 분께서 큰 짐을 서너 개나 싸 오셔서 먹을 걸 주고 가시곤 했어요.

 

틀어놓고 보는 TV 프로그램은 뭐였어요?

- 주로 드라마! 원래 드라마를 좋아하긴 했는데 혼자 지내게 되니까 너무 재밌더라고요. 동시간대 1위는 다 봤을걸요. 제일 기억에 남는 드라마는 ‘부탁해요 엄마’ 고두심 씨 나오는 거요. 저는 그런 가족 드라마를 좋아해요. 한 세 커플 정도가 등장해서 계속 돌아가며 에피소드가 나오는 드라마요. 울면서 봤어요. 그리고 ‘보이스’ 왜 있잖아요, 장혁 씨 나온 OCN 드라마. 그리고 ‘힘쎈여자 도봉순’도 봤고요. 드라마 볼 때마다 여주인공이 이상형이에요. 이상형이 그렇게 자주 바뀔 수가 없죠. 도봉순 때는 당연히 박보영 씨였고. 근데 한국 와선 TV 자체를 켠 적이 별로 없네요.

 

각종 케이블 채널의 드라마들까지, 많이 보긴 한 것 같네요. 여배우들 못지않게 많은 도움을 받은 대상이 있다면 독일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선배들일 것 같은데요.

- (구)자철이 형의 도움을 되게 많이 받았어요. 독일 갈 때까지 에이전트만 같을 뿐 안면도 없는 형이었는데 먼저 챙겨주셨어요. 처음 와서 어려운 걸 아시기 때문에 적응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고, 만나면 친형처럼 잘 챙겨주시고. 제가 많이 의지했던 것 같아요. 제 멘토로 삼았죠.

자철이 형의 말 중 기억나는 게 있나요?

- 헝가리로 간 뒤 경기엔 투입되는데 골을 못 넣어서 힘들어하던 시기였어요. 그때 저는 경기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 자철이 형은 뮌헨 원정 경기를 하러 버스 타고 가는 길이었죠. 제가 힘든 점을 이야기했더니 자철이 형이 “네가 힘들어하는 그런 시간조차 사치다. 지금은 더 노력해서 증명해야 되는 시기니까 열심히 해보자”라고 하셨어요. 그 얘기가 유독 기억에 나네요.

 

아주 진지한데요. 굉장히 구자철 선수다운 말이네요.

- 네. 이런 이야기 들으면 ‘어우 뭐야’라고 반응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이런 이야기 좋아해요. 저도 진지충이기 때문에. 자철이 형은 생각하는 게 좀 다르신 것 같아요. 괜히 유럽에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니구나 생각하죠.

 

다른 형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았나요?

- 같은 팀(레버쿠젠)에 있었으니까 당연히 (손)흥민이 형이 많이 챙겨 주셨어요. 처음 갔을 때는 엄청 어색했는데 말 통하는 사람이 흥민이 형뿐이니까 많이 의지했죠. 형이 여가 시간에 저녁도 많이 사 주시고 집으로도 초대해 주셨어요. 형동생 사이처럼. 근데 둘이 반대쪽에 살아서 오래 보긴 힘들었어요. 흥민이 형은 쾰른, 저는 뒤셀도르프 살았는데 레버쿠젠을 기준으로 각각 반대쪽이거든요. 밥만 먹고 헤어지는 게 아쉬웠죠. 대신 팀에서 계속 봤어요.

 

유럽 축구를 접하며 느낀 건 뭔가요?

- 대학 시절엔 같은 팀끼리 훈련하니까 다칠 만한 플레이는 피해가며 적당히 운동했는데, 첫 프로 팀이었던 유럽에선 감독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전쟁 같은 훈련을 하더라고요. 팀원끼리 욕하며 싸우는 것 보며 놀랐던 것 같아요. 전 그런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점점 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욕은 잘 들리니까 배워서 써먹기도 하고. 기술적인 측면에선 훈련 이후 개인 훈련을 많이 해서 슈팅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어요.

 

유럽에 있을 때부터 제주 복귀를 조금씩 준비했다고 들었어요.

- 관심 있게 경기를 지켜봤죠. 그런데 TV로는 알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이 팀의 일원이 돼야 감독님이 뭘 요구하시는지 알 수 있죠. 적응은 팀에 온 뒤에 시작됐어요. 감독님이 헝가리에 오신 적이 있어요. 작년 말이었을 거예요. 저를 보러 오신 건 아닌데 부다페스트에 오신다기에 인사드리러 제가 찾아뵀죠. 레버쿠젠 오기 전 잠시 제주에서 훈련하며 인연이 있었거든요. 제 경기를 보고 축구 얘기를 해주셨고, 제가 외로운 걸 아셔서 그랬는지 농담도 많이 해 주셨어요.

 

제주 이야기를 해 볼게요. 시즌 중간에 합류했기 때문에 팀 스타일이 더 잘 보일 것 같아요. 류승우가 파악한 제주는 어떤 팀이었나요?

- 팀이 하나로 잘 움직이고 조직적으로 잘 짜여 있는 팀이죠. 활동량이 많으니까 공수 간격이 넓지 않고, 선수들이 서로 근처에 있고, 공수 밸런스 유지가 좋은 것 같아요. 공격수부터 수비 가담을 적극적으로 해 줘야 되고. 팀 전체가 하나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제가 못 따라가서 조직력을 깨지 않도록 밖에서 볼 때도 많이 연구했어요.

 

선발로 한 번, 교체로 두 번 뛰었는데 지금 보여주는 경기력은 류승우의 몇 퍼센트인가요?

- 이제 적응하고 있다 생각하고요. 공백기가 길었기 때문에 경기를 보는 시야, 감각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긴 해요. 그래도 어제 경기 뛰면서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느꼈어요. 체력, 경기 따라가는 스피드도 많이 적응을 한 것 같고. 나머지는 경기를 소화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돌아오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가진 단기적인 목표와 장기적인 목표가 있다면?

- 처음 왔을 때부터 제주에서 우승해보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골을 많이 넣는 것, 많이 뛰는 것보다 우승이 더 먼저에요. 그 목표만 보고 시즌을 치르고 있어요. 장기적으로는 제주에서 주전경쟁을 하고, 증명해 내고, 여기서 자리 잡은 뒤 대표선수를 목표로 해야죠. 지금은 제주가 이기는 것만 생각하려고 해요. 대표는 나중 일인 것 같아요.

 

노력을 통해 여기까지 온 선수라는 평가를 받곤 하는데요. 거꾸로 말하면 천재적인 재능은 많이 갖지 못했다는 뜻도 되는데.

- 저는 절대 타고난 선수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개인적인 연습과 노력으로 자신감을 얻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제가 훈련한 것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거기서 자신감이 나와요. 훈련 준비를 제대로 안 하고 놀러 다니다 경기장에 가면 영 자신이 없어요. 계속 노력해야 하는 선수예요. 저 자신을 피곤하게 만드는 스타일인 거죠. 노력을 통해 발전하고 싶은 부분이 크고요.

 

지금은 뭘 개선하기 위해 중점적으로 노력을 하고 있나요?

- 공격할 때 더 위협적인 선수가 되고 싶어요. 상대 골대 근처에서 공을 잡았을 때 기대감을 갖게 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슈팅 하나도 위협적으로 때리고 싶고. 그래서 슈팅 연습을 많이 하죠. 훈련할 때 공격적인 상황이 나면 과감한 걸 더 적극적으로 해 보고요. 골대 근처까지 가면 쉬운 패스보다 돌파를 시도한다든지. 훈련에서 더 시도해야 결국 경기장에서 나오는 거거든요.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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