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한국은 감독을 교체했지만 올해 초부터 겪고 있는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전히 조직력이 부족했다. 신태용 신임 감독이 과감하게 시도한 전술 변화는 별다른 긍정적 효과가 없었다.

31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9차전을 가진 한국은 이란과 0-0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한국의 본선 직행 여부는 9월 6일(한국시간) 우즈베키스탄 원정으로 열리는 예선 최종전을 통해 결정된다.

 

파격 4-4-2, 그러나 조직력 부재가 컸다

신태용 감독의 전술은 처음부터 파격적이었다. 최전방 공격수 황희찬 아래 권창훈을 배치했고, 좌우에 손흥민과 이재성을 뒀다. 4-2-3-1로 배치할 수도 있는 선수 구성이었지만 신 감독의 선택은 달랐다. 수비수 네 명 위에 미드필더 네 명을 세우고, 권창훈을 황희찬 아래서 자유롭게 움직이게 했다. 4-4-1-1 혹은 4-4-2로 볼 수 있는 포진이었다. 신 감독이 지난 6월 U-20 월드컵에서 탈락한 포르투갈전에서 시도했다가 쓴맛을 본 포메이션이기도 했다.

4-2-3-1이나 4-3-3은 중앙 미드필더가 셋이지만, 4-4-2는 중앙 미드필더가 둘이다. 권창훈이 최대한 전방에서 움직였기 때문에 한국은 미드필드 싸움을 벌일 숫자가 부족했다. 한국의 두 미드필더는 원래 수비수인 장현수와 원래 공격형인 구자철의 조합이었다. 둘 다 넓은 공간을 커버할 만한 에너지가 부족했다. 둘 다 상대 공격을 미리 끊겠다고 섣불리 전진했다가 돌파를 당하고, 한국의 수비 대형이 무너지는 현상이 반복됐다.

한국은 몇 가지 약속된 공격 패턴이 있었다. 김진수가 빠른 스로인도 특유의 롱 스로인으로 처리한다는 걸 미리 알고 황희찬이 배후로 침투하는 장면이 있었다. 전반전 한국의 가장 좋은 장면도 세트 피스에서 나왔다. 전반 18분 그리 좋은 프리킥이 아니었지만 손흥민이 띄워준 공을 기습적으로 전방까지 올라간 센터백 김민재가 머리로 떨어뜨렸고, 이 공을 장현수가 재차 헤딩슛으로 연결한 것이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손흥민의 직접 프리킥이 수비벽을 맞고 나간 장면 등 대부분 정적인 상황에서 득점 기회가 나왔다.

반면 황희찬, 손흥민 등 빠른 선수들을 활용한 속공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한국은 미드필더 숫자 부족을 이기지 못하고 빌드업이 계속 지연됐다. 전방 투톱을 활용한 속공을 생각했지만, 사실 속공을 하려면 공격수가 아니라 미드필더 숫자를 늘려야 했다. 한국 공격은 느리거나 부정확했다. 특히 손흥민은 불편한 자세에서 공을 받다가 계속 실수를 저질렀다. 볼 컨트롤에 실패한 건 손흥민이었지만, 계속 상대 수비를 등진 불편한 자세로 공을 받아야 했던 건 전술적 문제였다.

조직적으로 이란 선수들을 상대하지 않고 공격이든 수비든 일대일 상황을 연발한 것과 달리, 이란은 팀 플레이를 했다. 한국 공격을 막을 때 수비 대형을 차분하게 유지했다. 한국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 시절 시작된 조직력 붕괴를 개선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이란 선수 퇴장 이후에도 시원한 공격 전무

한국이 밀리던 경기는 후반 7분 이란 선수의 퇴장으로 큰 전환점을 맞았다. 사에드 에자톨라히가 김민재와 뜬 공을 따내기 위해 경합한 뒤 착지하다가 먼저 떨어져 있던 김민재의 머리를 발바닥으로 밟았다. 억울할 것 없는 퇴장 상황이었다. 한국은 홈에서 63,124명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을 받으며 수적 우세 속에 40분 정도를 보냈다. 주도권을 잡기 충분한 환경이 마련됐다.

그러나 한 명이 많은 가운데서 한국은 일방적인 공세를 퍼붓는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공을 좀 더 오래 소유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란은 퇴장 직후 교체를 통해 공격수를 한 명 줄이고 4-4-1 포메이션으로 전환, 수비 대형을 전반전과 똑같이 유지했다. 한국은 미드필더 장현수의 불안한 기술 때문에 안정적으로 공을 돌리지 못했고 후반전에도 계속 불안한 경기를 해야 했다.

한국은 후반 27분 미드필더 이재성 대신 공격수 김신욱을 투입했다. 이후 수비수를 김민재에서 김주영으로, 공격수를 지친 황희찬에서 베테랑 이동국으로 바꿔 투입하며 공격 숫자를 유지한 채 선수 구성에 변화를 줬다.

김신욱을 향한 긴 패스가 여러 번 투입됐지만, 김신욱의 196cm에 달하는 신장은 그리 힘을 쓰지 못했다. 이란 센터백 모르테자 푸랄리간지와 모함마드 안사리는 190cm가 못 되는 신장에도 불구하고 김신욱과 효과적인 몸싸움을 벌였다. 롱 패스가 너무 깊어 골키퍼에게 잡히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은 경기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까지 4-4-2 포메이션을 고수했고, 조직력이 부족한 상태로 90분을 보냈다. 후반 추가시간이 4분 주어졌지만 그 동안 효과적인 공격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동국이 후반 추가시간 자세가 무너진 상태에서 날린 중거리 슛이 골대 뒤 관중석으로 향했다. 장현수의 마지막 중거리 슛도 수비수에게 맞았다. 한국은 결국 이란을 꺾을 절호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감독은 무승부에도 불구하고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그라운드로 띠어들어가며 세리머니를 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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