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신태용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은 이란전에서 조직력이 미흡했던 이유가 잔디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소집 기간이 부족했다는 사정도 토로했지만 훈련 당시 발언과 모순됐다.

8월 31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9차전을 가진 한국은 이란과 0-0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한국의 본선 직행 여부는 9월 6일(한국시간) 우즈베키스탄 원정으로 열리는 예선 최종전을 통해 결정된다. 무승부 이상을 거두면 조 2위를 지켜 본선에 오를 수 있다. 반면 패배할 경우 조 3위로 플레이오프에 떨어지거나, 다른 구장 결과에 따라 조 4위로 완전 탈락할 수 있다.

한국은 이란전에서 조직적인 플레이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신 감독이 시도한 4-4-2 포메이션은 수비라인 4명 앞에 미드필더 4명이 두 번째 저지선을 이루는 것이 수비의 기본이다. 네 명씩 두 줄로 늘어선 수비진이 상대 공격 방향과 공의 위치에 따라 유연하게 대형을 바꿔야 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4-4-2 계열 포진을 시도한 이란은 두 개의 수비 블럭을 잘 만들어낸 반면, 한국은 대열이 자주 붕괴됐다.

공격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란은 짧은 패스로 한쪽 측면을 공략하다가 긴 패스로 방향을 전환하며 한국을 흔들었다. 반면 한국은 수비형 미드필더나 풀백의 롱 패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공격은 한쪽 측면에서만 답답하게 전개되다 끊기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한국은 승리를 놓쳤다. 후반 7분부터 이란 미드필더 살리드 에자톨라히의 퇴장으로 수적 우위를 잡고서도 경기를 완벽하게 주도하지 못했다. 전반전 슈팅 횟수는 3대 2로 의미 없는 소폭 우세에 그쳤다. 후반전엔 몰아칠 기회를 놓쳐 단 2회 슛이 전부였다.

신 감독은 경기 후 조직력 부족을 지적하는 질문을 받았고,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첫 번째로 든 이유는 훈련 시간의 부족이었다. “사실 하루밖에 훈련을 못 했다. 손발 맞추는게 힘들었다. 실질적으로 공격 라인은 28일 소집해서 29일 하루 훈련했고, 30일은 시합 전날이라 30~40%만 훈련했다. 그래서 전술 훈련은 못 했다. 하루 만에 만들지 못했다.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이 발언은 훈련 당시 본인 발언과 상반된다. 신 감독은 지난 8월 21일 선수단을 조기 소집하면서 “완벽한 효과를 볼 수는 없다. (...) 16명이라도 조직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할 것이다. 수비 라인이 거의 다 모여서 훈련할 수 있다. 첫 날부터 수비 조직력을 끌어 올리겠다”고 말했다. 수비진 위주로 조기 소집의 효과를 보고, 여기에 유럽파 공격 자원을 합류시키겠다는 구상이었다. 선발 라인업 중 조기 소집에 응한 선수는 5명이었고 수비수 중 3명이 여기 해당됐다. 그러나 조기 소집 효과는 수비진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훈련 시간 부족은 세계 모든 축구팀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다. 일부라도 조기 소집을 한 건 통상적인 국가대표팀보다 나은 환경이었다. 단순한 시간 부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문제였다. 부분 전술이 부족했다.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의 재임 시절 말기에 불거진 문제가 여전히 이어졌다.

신 감독이 든 두 번째 이유는 잔디다. “개인적으론 잔디가 우릴 힘들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페르시아인들은 잔디가 밀리더라도 치고 나가는 힘이 있다. 우리 선수들은 몸이 가벼워서 잔디가 밀리면 넘어지며 볼 컨트롤이 안 된다. 앞으로 좀 더 잔디가 좋은 곳에서 경기한다면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을 거다. 물론 상암 잔디를 보식하고 많이 신경써 줬지만, 힘들었다.“

신 감독뿐 아니라 선수들 다수도 잔디 상태를 지적했다. 공을 다룰 때 실수하게 되는 것뿐 아니라 전력 질주가 힘들었고, 이를 신경쓰다보니 조직적인 대형을 갖추기 어려웠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전반 1분 만에 수비에 가담하러 달려가던 손흥민이 쭉 밀리는 잔디를 밟고 혼자 넘어졌을 정도로 경기장 상태엔 문제가 있었다.

기술뿐 아니라 위치 선정, 수비 대형 등 다양한 문제의 원인이 신 감독 말대로 잔디에 있다면 우즈벡 원정에서는 달라져야 한다. 한국은 이란전보다 더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있다. 우즈벡을 상대로 무승부 이상을 거두면 월드컵 본선에 자력 진출한다. 패배할 경우 다른 경기장 결과에 따라 플레이오프도 못 가고 완전 탈락할 수 있다. 한국은 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우즈벡으로 이동한다. 대표 감독으로 데뷔하자마자 물러설 수 없는 승부를 해야 하는 신 감독은 더 오래 발을 맞춘 선수들과 상암이 아닌 잔디에서 진짜 마지막 승부를 치른다.

사진= 김완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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