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인천] 김정용 기자= 이동국의 왼쪽 눈은 실핏줄이 터져 흰자가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김영권은 “잘못했습니다”라고 사죄 기자회견을 했다. 한국 축구 대표팀의 출국 직전 분위기를 보여주는 두 장면이다.

대표팀은 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우즈베키스탄으로 출국한다. 이란과 가진 홈 경기에서 상대 선수 퇴장으로 유리한 상황을 잡고도 0-0 무승부에 그친 8월 31일 이후 만 하루가 지나지 않았다. 이날 오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비공개 회복 훈련을 가진 대표팀은 우즈벡 원정을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대표로 세 명이 기자회견을 가졌다. 가장 먼저 마이크 앞에 선 건 주장 김영권이었다. 김영권은 이번 소집 기간 동안 가장 구설수가 많았던 선수다. 말실수 때문이었다. 소집 직후 중국에서 뛰는 선수들의 좋은 활약을 다짐하려다 “중국화가 답이라는 걸 보여주겠다”는 표현이 튀어 나왔다. 더 큰 문제는 이란전 직후 불거졌다. “관중들의 함성이 크다보니 선수끼리 소통하기 힘들었다”는 말로 물의를 일으켰다. 열광적인 분위기의 경기는 실제로 선수들끼리 말로 소통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63,124명의 팬을 만족시키지 못한 경기 직후 패배의 원인을 팬들에게 돌리는 것처럼 들리는 말을 하는 건 결례였다. 팬들의 비판과 비난이 쏟아졌다.

김영권은 “나의 의도는 당연히 나쁜 뜻으로 한 것은 아니다. 경기장 안에서 선수들이 서통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뿐이다. 국민들이 경기장에 와서 응원하는 것에 대해 나쁜 마음은 전혀 없었다. 내가 만약 그런 나쁜 의도로 이야기를 했다면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먼 길을 와 주셔서 6만이 넘는 관중이 와서 응원을 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선수로서 영광된 자리에 서서 경기를 한 만큼 당연히 감사하고,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취재진이 팬들에게 사과할 의향이 있냐고 묻자 김영권은 대답을 피하지 않았다. 잠시 말을 고른 뒤 “만약 제가 말했던 부분 때문에 마음이 좋지 않거나 화가 난 분들이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해 죄송하고, 제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김영권은 팀 전체에 피해가 가지 않아야 한다며 “나 하나의 문제다. 우즈벡까지 이게 계속된다면 팀에 영향이 있을 것 같다. 우즈벡에서 본선 티켓을 따서 가지고 올 수 있도록 하겠다. 다시 믿어 주고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팬들에게 다시 지지해 줄 것을 호소했다.

신태용 감독은 김영권보다 당당한 태도였다. 대표팀이 자꾸 변명으로 일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자 “변명은 절대 하지 않는다. 인정할 부분은 인정한다. 못한 건 못한 거다. 감독 부임 후 무실점을 하겠다고 한 것은 지켰지만 득점하지 못해 승리를 못 했다. 이 점은 잘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신 감독은 김영권을 감쌌다. 자신이 김영권에게 대표팀 데뷔전을 치르는 센터백 파트너 김민재를 잘 잡아주라고 당부했다며, “내가 그런 이야기를 자꾸 하다보니 김영권이 꽉 찬 관중 속에서 옆에 말 하는 게 잘 들리지 않았던 (걸 신경쓴) 부분이 잘못 전달되지 않았나 한다”며 김영권의 말실수 뒤의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어제 6만이 꽉 찼다. 선수들 모두, 김영권도 감사한다. 전달 과정에서의 잘못은 인정한다. 오해의 소지가 없었으면 좋겠다. 마지막 우즈벡전까지 응원해졌으면 좋겠다”고 응원을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한 이동국은 왼쪽 눈이 빨개져 있었다. 경기 중 당한 부상은 아니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피곤하면 그렇게 올라올 수 있다고 안다.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동국은 전날 경기 막판에 투입돼 약 6분을 소화하는데 그쳤다. 경기로 인한 몸의 피로보다 스트레스 때문으로 짐작된다는 이야기다.

이동국은 “어제 경기는 빨리 잊어야 한다. 중요한 경기, 반드시 승리해야하는 경기다. 준비는 즐겁게 하고, 목표가 있으니 반드시 이겨서 승점 3점,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을 확보하고 돌아오자고 이야기했다”며 후배들을 추스리기 위해 나눈 이야기들을 전했다.

인터뷰와 출국 기념 사진 촬영을 마치고 대표 선수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축구 팬들이 몰려들어 스타 선수들과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았다. 선수들은 굳은 얼굴이었지만 팬들의 부탁에 대부분 선뜻 응했다. 이동국도 충혈된 눈을 굳이 가리지 않고 팬 서비스에 응했다.

우즈베키스탄 원정 경기는 한국 시간 6일 오전 0시에 열린다. 한국은 이 경기에서 승리할 경우 월드컵 본선에 자력 진출할 수 있다. 무승부를 거둘 경우 동시에 열리는 이란 대 시리아 경기 결과에 따라 본선 진출 혹은 플레이오프 진출이 갈린다. 패배할 경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거나 완전히 탈락하게 된다.

사진= 김완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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