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대표팀 감독은 한국전의 진정한 승자였다. 손흥민 유니폼까지 받아들고 온갖 미사여구로 한국을 칭찬한 건 다 본인이 승자라는 여유에서 나왔다.

31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9차전을 가진 한국은 이란과 0-0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한국의 본선 직행 여부는 9월 6일(한국시간) 우즈베키스탄 원정으로 열리는 예선 최종전을 통해 결정된다. 반면 이란은 경기 전부터 조 1위가 확정돼 있었다. 6승 3무를 기록한 이란은 9경기 무실점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이어갔다.

이란은 후반 7분 사에드 에자톨라히가 퇴장당한 뒤 수세에 몰렸다. 케이로스 감독은 현실적이었다. 이때부터 승리보다 무승부에 초점을 맞췄다. 선발 포메이션 4-4-1-1에서 공격수 한 명을 빼고 4-4-1로 전환, 수비 포진을 유지했다. 한국은 김신욱과 이동국을 교체로 투입하며 결승골을 노렸지만 결국 실패했다.

경기가 끝나는 순간, 양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드러누운 위로 케이로스 감독이 달려 나가 춤을 췄다. 감독을 따라 벤치에 있던 스태프, 후보 선수들도 함께 달려 나왔다. 우승이라도 한 것 같은 분위기였다.

케이로스 감독은 감독 인생 최초로 상대 선수의 유니폼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좋은 팀이다. 좋은 팀과 경기할 수 있어 영광스럽다. 내 감독 인생에서 유일하게 선수에게 유니폼을 달라고 한 경기”라며 “손흥민 유니폼을 받았다. 손흥민이야말로 세계 축구팬들이 월드컵에서 보고 싶어 하는 선수”라고 립 서비스를 했다.

케이로스 감독은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코치, 레알마드리드와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을 거쳤다. 세계 최고 스타들을 지휘한 경험도, 맞서 싸운 경험도 많다. 손흥민은 아시아 최고 스타지만 케이로스 감독에게 개인적인 의미가 있을 정도로 대단한 스타는 아니었다.

그보단 한 명 적은 가운데서 무실점 기록을 이어간 경기 내용이 케이로스 감독을 기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손흥민 유니폼을 가져간 건 아시아 최고 공격수를 상대로도 역시 실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념하기 위한 걸로 해석할 수 있다.

케이로스 감독은 경기 전후로 계속 한국을 칭찬했고, 칭찬은 본인이 승자라는 여유에서 나왔다. 경기 이틀 전인 29일부터 굳이 숙소로 한국 기자들을 불러 한국 언론, 팬, 축구 수준을 칭찬하기 바빴다. 경기 전날 기자회견, 종료 후 기자회견 모두 마찬가지였다.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던 시기에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던 것과 완전히 상반된 태도였다.

“모든 선수들이 최고의 경기, 재밌는 경기를 했다. 예선임에도 수준이 높았다. 내 축구 인생에서 이렇게 힘든 경기는 처음이었다. 한국은 좋은 팀이다. 좋은 팀과 경기할 수 있어 영광스럽다.”

불만 섞인 메시지는 한국이 아니라 이란을 향하고 있었다. 축구 대표팀에 대한 지원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지원을 에둘러 표현했다. “자국에서 관심이 부족하고, 시설이 열악하고, 친선경기를 많이 못 하는데도 젊은 선수들이 이렇게 실력을 유지한다. 자국을 넘어 세계의 팬들이 이란을 더 알아주고 격려해줬으면 한다.”

케이로스 감독은 경기 과정에 대체로 만족한 반면, 한국은 신태용 감독부터 선수들까지 잔디 상태에 대한 불만을 여러 차례 밝혔다. 이란은 여유가 넘쳤다. 결과는 동등한 무승부지만, 만족할 수 없었던 한국과 사정이 달랐다.

사진= 김완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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