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이탈리아세리에A는 여전히 아시아 선수들이 진출하기도, 활약하기도 쉽지 않은 곳이다. 이승우가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을 떠나 엘라스베로나에 입단한 건 한국 축구 역사상 겨우 두 번째다.

 

아시아 선수 탐색에 시큰둥했던 이탈리아 축구

세리에A의 한국 선수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페루자에서 뛴 안정환 이후 이승우가 두 번째다. 한국 선수뿐 아니라 아시아 선수들에게 이탈리아는 유독 진출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일본 선수들이 역대 10명 진출해 그나마 많은 숫자를 기록했지만 독일과 잉글랜드에서 거둔 성공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그밖에 한국과 이란 선수가 역대 2명 진출했다. 이라크, 북한, 우즈베키스탄 선수가 각 1명씩 진출했다. 현역은 일본의 나가토모 유토(인테르밀란), 이라크의 알리 아드난(우디네세), 그리고 이승우뿐이다. 북한의 한광성은 칼리아리에서 세리에B(2부)의 페루자로 임대돼 있다.

이탈리아 팀들이 선수 수급 범위를 넓히는데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일부러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리그를 먼저 찾아갔던 ‘문어발식 스카우트’ 전략의 우디네세 정도를 제외하면, 이탈리아 팀들은 2000년대 전성기 시절에도 새 시장을 개척할 의지가 적은 편이었다. 다른 빅 리그 구단들이 시장 개척을 위해서라도 중국, 일본 선수를 영입했던 것과 달리 이탈리아는 수입 구조를 다변화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

잉글랜드에서 박지성, 독일에서 가가와 신지가 했던 것처럼 ‘이 나라 선수들은 싸고 뛰어나다’는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줄 만한 성공 사례가 부족했던 것도 문제였다. 나카타 히데토시가 AS로마, 피오렌티나 등 명문팀들을 옮겨 다니며 뛰어난 활약을 하긴 했지만 한 팀에서 오래 정착하지 못했고 몸값이 비싼 편이었다. ‘제2의 나카타’를 꿈꾸며 일본 대표급 선수들이 뒤이어 건너갔지만 성공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2000년대 초 아시아 선수를 적극 영입한 팀은 페루자였다. 페루자는 나카타, 안정환을 비롯해 이란 선수도 2명 영입했다. 그러나 팀 자체가 추락하며 아시아 선수를 더는 영입하기 힘들어졌다. 올해 세리에B에서 한광성을 임대 영입하며 모처럼 친(親)아시아 전통을 부활시켰다.

 

이승우에게 도박을 거는 베로나

한국 선수들은 이승우 이전에도 이탈리아 구단들의 스카우트 범위에 들어 있었다. 엘라스베로나는 전에도 국제 청소년 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한 한국인 수비수를 주시한 적이 있다. 한국 대표급 K리거가 유럽 진출을 타진할 때면 이탈리아 팀들과도 원론적인 교섭을 벌이곤 한다. AS 로마와 같은 명문팀들도 한국 선수의 포트폴리오와 하이라이트 영상을 받아들고 영입을 검토한 적이 있다.

그러나 한국 선수는 일본 선수들보다 대체로 비싼 편이다. 일본 구단들은 여전히 ‘대승적 차원’에서 유럽 진출을 돕겠다는 문화가 남아 있다. 2010년 가가와가 보루시아도르트문트로 이적할 때 세레소오사카는 육성 보상금 수준의 이적료만 받았다. 가가와가 우승팀의 핵심 멤버로 성장하며 일본 선수들의 가치가 전반적으로 상승하자, 5년 뒤 요시노리 무토가 마인츠로 이적할 때는 35억 원 정도의 이적료를 기록할 수 있었다.

한국 유망주들은 축구 변방에서 수급할 수 있는 다른 유망주들보다 비싼 편이다. 이적료 없이 연봉 수천만 원에 계약할 수 있는 아프리카 선수들과 달리, 유럽 1부 진출을 바로 노릴 정도의 유망주들은 이적료가 발생하고 연봉도 1억 원 이상인 경우가 많다. 유럽 축구계에서 일하는 한 축구 관계자는 “한국 선수를 이적시키려 해 봤지만 구단 입장에선 비슷한 기대치에 더 싼 선수를 찾기 마련”이라고 전했다.

아시아 선수는 돈 없는 승격팀이 도박성으로 영입하는 경우가 많다. 2002년 레지나가 나카무라 순스케를 영입할 때도, 2010년 체세나가 나가토모를 임대 영입할 때도 갓 승격한 처지였다. 궁핍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아시아에서 대표급으로 인정받은 선수를 영입해 ‘한 방’을 노렸다. 체세나는 나가토모를 1년 간 활용하고 완전 영입 후 인테르밀란으로 다시 보내며 차액을 벌었다. 그런데 전 소속팀 FC도쿄에 줘야 하는 이적료 전액을 체납한 것이 나중에 드러나기도 했다. 이탈리아 하위권 구단 재정이 얼마나 빡빡한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승우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받은 징계 때문에 성장이 정체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지만, 한때 동년배 중 가장 큰 기대를 받는 선수였고 올해 U-20 월드컵에서도 가능성을 보여줬다. 더 비싼 선수를 살 수 없는 베로나 입장에선 도박을 걸어 볼만한 선수다. 기존 아시아 선수들과 달리 현지 적응이 수월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언어와 문화가 비슷한 스페인에서 오래 생활했고, 가족과 함께하기 때문에 향수병에 시달릴 걱정은 덜었다.

사진= 유튜브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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